[단독] 북, 추석에도 국경통제 유지…“부모 묘소도 못 가"

앵커: 북한 당국이 올 추석 명절에도 국경지역 접근 차단 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서, 고향의 부모 묘소를 찾지 못하게 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함경북도와 양강도 현지 소식통을 통해 교차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7월 시작된 국경통제 조치가 추석까지 이어지면서 통행증 발급이 전면 거부되고 있습니다. 김지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경지역 통행증 발급 전면 거부...“성묘조차 못 가게 됐다”

신변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최근 RFA에 “이번 추석에 고향 부모님 묘소를 찾으려 했으나 끝내 갈 수 없게 되었다”며 “당국이 국경지역 접근 차단 조치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추석을 앞두고 기업소에 통행증 발급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며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가능하지만, 국경지역 접근은 여전히 막혀 있어 성묘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소식통은 이어 “추석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기라 국경 통제가 더욱 심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며 “1년에 한 번뿐인 추석에 성묘를 계기로 부모 형제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당국의 국경 차단 조치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이달 들어 공장과 기업소, 주민 회의를 통해 국경지역 이동 금지 지시가 내려졌다”며 “이에 따라 외지에서 국경지역으로 향하는 통행증 발급은 전면 불가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경지역에서 태어나 결혼이나 근무지 이동으로 다른 도에 거주하게 된 주민들이 이번 조치에 특히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그는 “특히 외아들임에도 부모 묘소를 돌보지 못하게 된 주민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와 달라…성묘용 통행증마저 사라져”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을 요구한 양강도의 또 다른 주민 소식통도 최근 RFA에 “이번 추석에는 외지에 사는 형제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며 “지난 7월 시작된 국경 접근 차단 조치가 추석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당국이 중국과의 밀수와 탈북을 이유로 국경 차단을 시작했지만, 민속 명절인 추석에도 이를 해제하지 않아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추석 성묘를 계기로 고향을 찾으려던 계획이 무산된 주민들은 강한 유감을 표출하고 있다”며 “부모 묘소조차 찾지 못하게 한 조치를 두고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라며 비난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부모의 묘소를 확인한 뒤 통행증을 발급해 주는 절차가 있었지만, 올해는 외지에서 국경 지역으로 접근하는 통행증 발급 자체를 막아 놓아 국경 접근 통제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다만 이번 통제가 함경북도와 양강도를 넘어 자강도, 평안북도 등 다른 국경 인접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는 RFA 취재 결과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4월, 북한 당국이 국경 지역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발표한 지시문. 내용에 따르면 불법 월경과 밀수 행위를 비롯한 국경 질서 위반 현상은 당과 조국을 배반하는 대역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함경북도 소식통 제공
North-Korea-holiday-crackdown-2 2024년 4월, 북한 당국이 국경 지역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발표한 지시문. 내용에 따르면 불법 월경과 밀수 행위를 비롯한 국경 질서 위반 현상은 당과 조국을 배반하는 대역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함경북도 소식통 제공 (RFA)

추석 성묘객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는 단지 올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2023년에는 타지에 묘소가 있는 주민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 사법기관의 확인을 거쳐 여행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이동이 가능했고, 2020년에는 추석 명절 기간에 주민 이동과 가족 모임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9년에는 탈북 방지와 불법 전화 단속을 이유로 북한 당국이 국경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여행증명서 발급을 불허해 추석 성묘를 못 하는 주민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회 이동 적발 시 처벌 우려도

추석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한민족의 고유한 명절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국경 통제를 이유로 주민들의 성묘 길을 가로막고 있으며, 통행증 없이 산길 등을 이용해 몰래 이동하다 적발될 경우 강제노동에 처해질 수 있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의 행정처벌법에 근거하는데, 이는 직장 무단결근, 불법 월경 등 비교적 경미한 위반행위에 대해 노동을 통한 교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한 탈북민 면담 183건을 포함해 여러 출처에서 확보한 정보를 바탕으로 2024년에 발표한 강제노동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처벌법’ 제18조에 따라 5일에서 최대 6개월까지 노동을 통한 교양 처분을 내릴 수 있으며, 재판이나 사법적 감독 없이 노동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실제 보고서에도 직장 무단결근, 불법 월경, 비공식 경제 활동 등으로 노동단련대에 수감돼 강제노동을 했던 구체적인 사례들이 소개됐습니다.

한편, 일부 주민은 부모 성묘를 하지 못하게 되자 친척이나 지인에게 대신 성묘를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으며, 부탁할 지인이 없는 경우 성묘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1년에 단 한 번뿐인 추석에 부모 묘소조차 찾지 못하게 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며 민족의 전통마저 외면한 당국의 조치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한국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공원에서 추석을 맞아 북한에 있는 가족과 조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차례상 앞에서 참배객들이 절하고 있다.
North-Korea-holiday-crackdown-3 한국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공원에서 추석을 맞아 북한에 있는 가족과 조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차례상 앞에서 참배객들이 절하고 있다. (AFP)

함경북도 온성 출신으로 2010년 탈북한 이영주 씨는 22일 RFA에 이번 조치로 당국이 통제에는 성공할 수 있겠지만, 주민들의 내부 반발은 오히려 커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영주 씨] 체제가 요구하니까 북한 사람들은 숙명으로 여기고, 불평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겉보기에는 결속처럼 보이겠죠. 그런데 내부에서는 반발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강제 동원 같은 건 어쩔 수 없이 하지만, 부모 성묘는 다른 영역이잖아요.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인데요.

두만강을 마주한 온성에서 나고 자란 이 씨는 청진에 사는 동생 역시 이번 추석에 고향의 부모 묘소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추석 성묘길까지 막아서며 국경 통제를 조이는 진짜 이유로 탈북 방지와 함께 ‘외부 정보 유입 차단’을 꼽습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파병과 무기 수출의 실상이 내부로 퍼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렉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회장은 22일 RFA에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수백 명의 북한 군인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며, 국경 인근 주민들이 친척을 통해 이 같은 실상을 파악하는 상황을 정권이 몹시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스칼라튜 회장] 북한 정권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자신들의 인권 탄압과 불안정, 폭력의 수출 사이에 얽힌 연결고리를 주민들이 알게 되는 겁니다. 정권은 이런 무기, 죽음의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국내외에서 자국민을 착취하고 억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게 두려워서 이전보다 훨씬 더 가혹한 이동 제한 조치를 내놓는 겁니다.

에디터 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