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중국의 개혁, 개방이 주는 북한에 대한 교훈”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아홉 번째 시간으로 중국이 대외무역체제를 개혁하고 외국자본의 도입에 나선 배경 등에 대해 알아봅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더 이상 폐쇄정책을 통한 자력갱생에 한계를 느껴 개혁, 개방에 나섰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의 집권 이전 마오저뚱이 이끌던 중국은 자급자족적 경제를 추구한 나머지 대외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개혁의 아버지로 불리는 덩샤오핑은 이러한 폐쇄적인 정책으로는 낙후된 중국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은 중국 내의 농업분야 등 경제개혁 정책과 더불어 중국의 대외무역체제를 개혁하고 또 선전과 샤먼 등에 경제특구를 설치해 화교자본을 포함한 외국자본과 기술을 적극 유치하고 나섭니다.
지난 1978년 중국의 해외 무역액은 고작 200억 달러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 상대국은 대개 공산주의 국가들이었고 중국 경제에서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약 10% 정도였습니다. 중국 경제개혁 관련 전문가인 남한 인천대학교의 박정동 교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박정동: 기본적으로 중국은 78년 이전까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지 않는 자력갱생 체제였다. 무역도 중국 내 현상유지를 위한 석유나 식량 등 최소한의 필요 자원의 수입을 위해 수출을 하는 소극적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후 적극적으로 원료를 수입해서 값싸게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 외화를 버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했다. 과거 해외 직접투자와 관련해서도 외국자본의 중국 투자는 제국주의 독점 자본주의의 중국 인민들에 대한 착취라고 생각했지만 이러한 생각에도 변화가 왔다.
이 후 적극적인 무역체제 개혁으로 중국은 90년대 중반에 대외 무역액이 2,000억 달러까지 늘어났고 중국의 대외 무역의존도도 40%에 육박하게 됩니다. 결국 중국은 2004년 일본을 제치고 독일과 미국에 이어 아시아의 최대 무역국이 됐습니다. 또 지난 2001년에 중국은 WTO 즉, 세계무역기구에까지 가입하기에 이릅니다. 세계무역기구는 지난 95년 발족한 기구로 이 기구에 가입하면 다른 가입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교역상의 편의를 누리며 수출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지난 2003년 말 현재 전 세계 143개 나라가 이 기구에 가입해 있습니다.
경제 개혁과 개방에 나서기 이전 중국의 대외무역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야기됐습니다. 인천대학교 박정동 교수의 말입니다.
박정동: 국가에 의한 대외무역의 독점은 일부 관료주의를 조장한다.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수출입업무를 행하는 지방의 권한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업의 수출확대 의욕이 저하됐다. 생산부문은 생산만 신경 쓰면 됐기 때문에 해외시장 동향, 제품의 품질향상, 대외무역의 손익 등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수출과 관련해 손해가 나면 이를 국가가 보전해 주었기 때문에 생산기업이나 사용자, 무역공사 등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제시장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격심한 무역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 당국은 대외무역의 경영권을 중앙에서 하부기관으로 대폭 이양하는 한편, 행정과 기업을 분리하고 또 공업과 무역, 기술과 무역의 결합을 추진하고 나섭니다. 또 무역과 관련한 환율과 관세, 세금 등 관련 경제조절수단을 정비했습니다. 결국 중국은 90년대 들어와 국가보조금에 계속 의존해 왔던 중국의 무역회사가 실질적으로 국제시장에서 경쟁에 참여하도록 제도를 고쳐 나갑니다.
한편, 북한도 중국의 뒤를 따라 80년대 들어와 대외 무역정책에 대한 본격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됩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대외무역을 자체 경제기반 구축의 보조적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60년대 들어 중국과 소련의 대북 원조가 급감했고 이에 따라 70년대 북한의 외채난도 심각해졌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외국기업과 북한기업 등이 합영기업을 창설하는 데 필요한 제도적 장치로 84년 합영법을 제정하고 또 91년 나진-선봉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등 대외무역과 외국자본 유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나갑니다. 박정동 교수의 설명입니다.
박정동: 합영법을 제정해서 재일교포를 위시한 해외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특히 90년대 들어와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후 무역제일주의 방침이 설정되고 91년도 말에 북한도 경제특구 관련 법규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흐름에서 기본적으로 80년대 들어와서 중국이 취한 대외무역관련 개혁조치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제특구 설치 노력 등과 관련해 북한도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에 비해 해외 투자자들에 주는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크게 떨어질 뿐 아니라 90년대 중반부터 불거진 북한의 핵개발 문제 등으로 인해 투자에 필수적인 정치, 외교적 안정성도 매우 낮았습니다. 박정동 교수의 설명입니다.
박정동: 정치, 외교적 안정을 투자요건의 제1항목으로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투자가 매우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 등으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 고조 또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북한의 반응 등은 해외 투자자들을 극히 냉담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북한 지도부는 경제 개혁과 개방에 대해 중국 지도부만큼의 열정이 없었고 따라서 개혁과 개방이 동시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경제관리 출신 김태산 씨도 북한 당국이 일부 경제관련 제도개혁 노력을 기울이긴 했지만 그에 걸맞는 ‘개방’이 뒤따르지 않아 성과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김태산: 개혁과 개방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개방이라는 것은 경제 관리를 하는 사람을 놔줘야 하는 것이다. 자유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7.1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일부 제도를 개혁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말뚝에 묶어 놓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공장의 사장에게 마음대로 외국에 드나들면서 투자를 받아들여 자본을 들여오고 또 교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북한 내에서 조차 북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래서는 북한의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
중국 개혁, 개방이 주는 북한에 대한 교훈. 오늘은 중국과 북한이 대외개방에 나선 배경과 이들의 무역체제개혁 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해외자본 유치를 위한 중국과 북한의 경제특구 정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양성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