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현지취재2] 탈북자들 달라져 정책 변화 필요해


2007.05.15

탈북자들에게 자유는 이들의 가장 큰 탈북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탈북은 돈 없이는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의 탈북자들처럼 못 먹고 헐벗어서 자유를 위해 탈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요즘 탈북자들의 공통점입니다. 과거와 달리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도 달라서 이런 변화에 맞는 탈북자 정책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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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단둥쪽 강가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오후 한 때를 즐기는 시민들. 뒤에는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중조우의교가 보인다 - RFA PHOTO/박성우

>>중국단둥 슬라이드 쇼(2)

오후 늦은 시간 < 중조우의교>를 찾았습니다. 단둥 중심가에서 멀지않은 이 다리 주변은 이제는 한가로운 산책로로 쓰일 정도로 단둥 시민들이 즐겨 찾습니다.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 단둥시내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북한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자유라는 가치가 가져다주는 혜택의 크기를 절로 느끼게 됩니다. 단둥 시내에서 어렵게 만난 탈북자 이 씨도 그 자유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씨: 우린 추방지역으로 갑니다. 말 잘못 하면... 여기는 자유가 있으니까 좋단 말입니다. 말 하고픈 데로 말하고...

자유는 예나 지금이다 탈북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북한 땅을 떠난 한결 같은 이유였습니다. 한 가족을 다 데리고 탈출한 20년 전의 김만철씨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김만철: 제가 여기 와서 생각하게 된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우선 먹을 것 입을 것 따라서 또 자유가 있어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단둥에서 만난 탈북자 이 씨도 앞서 자유를 내세웠지만 그도 생활인이기 때문에 자유라는 가치 속에 숨겨놓은 개인적인 고민은 있었습니다.

이씨: 세대주와 솔직히 관계가 좋지 않단 말입니다. 그래서 안 살겠다고 했는데도 세대주는 죽어도 이혼 안시켜 주겠다는 데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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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압록강 하구언에서 신의주를 구경하는 관광객들 - RFA PHOTO/박성우

이 씨와 같은 가정적인 문제 그리고 사회적으로 내각 포고령 위반 같은 사연을 탈북자들은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많다와 적다를 가늠할 수 있는 조사 자료는 없지만 요즘의 탈북은 지난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파서 북한을 탈출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데 대해서는 탈북자들 스스로도 그리고 탈북자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동의합니다.

단둥에 있는 몇몇 조선족들도 요즘은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북한을 도망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더라며 자신들이 만난 탈북자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단둥에서 만난 또 다른 탈북자 김씨. 그는 지난 10월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김씨는 앞서 만난 이씨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생활수준을 북한에서 누렸습니다. 평양 출신인 김씨는 부모가 출신성분이 좋아서 어릴 때부터 구라파를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는 말로 탈북 동기를 설명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 등지에서 김 씨는 북한과 너무 다른 서유럽 국가의 모습 때문에 북한 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어릴 때부터 느낀 바가 컸다고 말합니다.

김씨: 어릴 때였지만 구라파 같은 데 나가서 보면 전혀 우리가 교육받아 온 거하고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단 말입니다. 야... 우리 북한은 왜 이렇게 세계에 따라가지 못하고 이러나...

김 씨도 평양에 있을 때 중고 물품을 파는 상점을 차려 장사를 했고 돈도 꽤 모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시련이 닥쳤습니다. 정부로부터 재산을 몰수당한 것입니다.

김씨: 세 번을 당하고 나니까 솔직히... (화가나서?) 밸이 좀 나고... 앞에... 솔직히 장사를 해야지 살아가는 건 뻔한데... 희망이 없더라고요.

왜 몰수당했는지에 대해선 말끝을 흐린 채 김 씨는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도 돌아가셔서 의지할 곳이 없게 되자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김 씨와 이 씨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이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생존의 방법을 잘 알고 있고 체제에 대한 불만 보다는 자신에 대한 불이익을 참지 못해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입니다. 탈북자 면접조사에 근거해 북한사회를 연구하는 경남대 < 극동문제연구소> 최봉대 교수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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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둥 압록강 하구언에서 철조망 너머로 본 북한군 병사. 관광객들이 주변을 서성이면 병사는 사진에 찍히지 않기위해 등을 돌려버린다. - RFA PHOTO/박성우

최봉대: 90년대 말처럼 너무 살기 힘겨워서 물리적인 생존의 위기에 내몰려서 나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제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연이 이렇다보니 단순히 자유를 얻었다는 것만으로 이들은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유는 이들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도 남한에서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탈북 목적이 달라진 만큼 이들에 대한 남한의 정책은 아직 그리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내 탈북자 단체인 < 북한민주화위원회> 손정훈 사무국장의 설명입니다.

손정훈: 정부나 사회에 기대한다는 건 이제 거리가 멀다고 저도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열 명 중 세 명이 실업자고 월소득 100만원, 즉 천 달러를 채 못 버는 탈북자가 78 퍼센트에 이르는 현실이 탈북자들의 불만인 겁니다. 최봉대 교수도 이런 현실을 인정합니다.

최봉대: 탈북자 수용정책의 핵을 이루고 있는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과 재교육, 재취업 문제 같은 것은 사실 고민할 부분이 많죠. 그런데 우리 정부가 아직까지는 그런 데 여유를 둘만한 그럴만한 여유는 아직까지 가지지 못한 거 같네요.

최근 탈북자들은 남한의 통일부에 대해 탈북자라는 용어 대신 사용하도록 한 새터민이란 단어를 쓰지 말도록 요청했고 통일부는 이를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새터민이란 단어가 옹색하고 마치 화전민처럼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못사는 사람들과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탈북자들이 거부한 이유였습니다. 말하자면 이들도 이제는 남한 사회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떳떳한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둥에서 만난 이 씨와 김 씨도 이 같은 정체성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들의 정체성은 남한 국민들과의 공정한 경쟁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즉 탈북자들을 남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대하면서 남한 국민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하면서 스스로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변화된 탈북자들에게는 필요하다는 지적을 이곳 단둥에서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단둥-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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