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송배전부, 사상 처음 인민반과 전기공급 계약
2023.08.02
앵커: 최근 북한 일부 도시에서 시 송배전부가 중앙의 지시로 주민행정 말단조직인 인민반과 구두 계약을 하고 각 세대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원하는 주민들에게 합의제(시장) 가격을 받고 일정 시간 이상 매일 전기를 공급한다는 설명인데요. 북한 내부소식, 손혜민 기자의 보도입니다.
북한에는 내각 전력공업성 산하 송배전부가 각 시, 군마다 자리하고 있어 기업과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합니다. 하지만 1990년 경제난 이후 산업용 전기가 부족하다 보니 주민용 전기는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고, 돈이 있는 주민들은 송배전부와 군수공장 등에 뒷돈을 주고 국가 전기를 몰래 사용했습니다.
함경남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하지만 지난달부터 단천에서는 불법전기 사용자를 단속하는 동시에 (시)송배전부가 인민반장과 공식적으로 전기 공급 관련 (구두)계약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계약 내용은 매달 인민반장이 각 주민세대로부터 내화 3만원(미화 $3.6) 씩을 모아 송배전부에 바치면 하루 5시간 이상 주민세대에 국가전기를 공급한다는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인민반 규모는 도시와 농촌에 따라 10~35세대이며 30~85개 인민반이 동과 리로 편성돼 있습니다. 단천시의 1개 인민반을 평균 20세대로 가정해보면 매달 1개 인민반이 시 송배전부에 60만원(미화 $72)을, 1개 동에 평균 50개 인민반이 있다고 보면 각 동마다 내화 3천만원(미화 $3,614)의 전기사용료를 국가에 바치는 셈입니다.
결국 30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단천시의 경우 시 송배전부가 인민반을 통해 매달 합의제(시장) 가격으로 징수하는 전기요금이 적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소식통은 상부의 허가로 각 시 송배전부가 합의제(시장) 가격을 자체 정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국가기관이 시장가격을 정하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내가 사는 인민반에서도 반장이 주민세대를 돌아다니며 한달에 3만원(미화 $3.6) 내고 5시간 전기를 보는 것에 좋다는 의견을 모아 송배전부와 전기를 공급받겠다고 계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약이 완료된 인민반에는 송배전부가 직접 인민반 세대의 월 전기사용량을 종합적으로 계산하기 위한 전력적산계를 하나씩 달아놓았다”며 “전력적산계는 미화 50달러로, 이 가격은 별도로 각 세대별로 분담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 날 평안남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지난 7월부터 덕천에서는 송배전부 간부가 인민반장을 만나 한달에 2만($2.4)~3만원($3.6)을 배전부에 내면 하루 5~7시간 전기를 공급해 준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역마다 자리한 발전소 규모와 전기생산량이 달라 시 송배전부가 제시하고 있는 전기공급 시간과 전기요금 적용이 다르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국가 송배전부가 공식적으로 주민행정 말단조직 인민반과 직접 국가전기를 합의제(시장)가격으로 공급하겠다고 나선 사례는 처음입니다.
사회주의제도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은 지금까지 주민용 전기는 국정가격으로 공급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전기가 부족해 주민세대에는 명절날 정도에만 공급하고 있지만 전기사용요금은 반드시 징수하는 데, 1세대에 조명 3개로 계산하여 한달에 내화 30~50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명 외 냉장기, 텔례비죤, 선풍기 등 가전제품이 있을 경우 각각 1천원씩 추가 부과됩니다. 보통 주민 가정이 조명 3개와 가전제품 2개를 사용할 경우 월 2천50월 정도를 전기요금으로 낸 셈입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합의제(시장)가격의 전기 사용요금을 지급하면 국가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시, 군 송배전부의 조치는 내각 전력공업성 산하 국가전력감독부서의 승인을 받고 시행되고 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소식통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야매돈을 내고 전기를 공급받는 것에 집집마다 의견이 다르다”며 “하지만 저 집은 보는데(전기를 공급 받는데) 난 왜 못보냐는 게 자존심이 센 아파트 사람들의 정서라 다들 인민반장에게 돈을 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이어 “송배전부가 인민반마다 설치해주는 전력적산계는 평양에서 개인집에 설치한 자그마한 전력적산계가 아니라 인민반세대별 전기사용량이 통합적으로 기록되는 새로운 전력적산계”라며 “한달에 전기사용 한도가 지나면(넘으면) 송배전부에 기본요금 2~3만원 외 누진세가 부과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지난해 7월 17일,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력공업성 전력정보연구소에서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전력계약과 사용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체계와 전력공급과 소비 등의 정형을 지역별, 주민세대별 파악하고 통계를 자동적으로 계산하는 ‘주민세대전력계약체계’를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북한의 전력 생산량은 2019년 기준 238억㎾로, 한국의 5천630억㎾의 4%에 불과합니다.
한국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에서 북한 전력법과 에너지 부문을 연구하고 있는 황수민 연구원은 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국가 송배전부와 개인 간 불법 거래되던 전기사용요금을 공적 영역으로 흡수하려는 의도는 북한 당국이 심각한 전력난을 인식하고 국가가 직접 전기사용요금을 합의제가격으로 흡수해 국가 수입을 증대함으로써 전력난 문제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고 밝혔습니다.
황 연구원은 이어 “2021년 북한이 개정한 전력법에서는 전력을 비법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세분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021년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756호로 수정 보충한 전력법 제90조에는 “정당한 이유없이 전력계량수단을 설치 또는 이용하지 않았거나 결선을 바로하지 않고 전력을 몰래 훔쳐 썻을 경우 기관, 기업소, 단체에는 150만원, 공민에게는 1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명시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