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단체 “재일교포 북송은 ‘강제이주’...유엔서 조사해야”
2020.11.09
앵커: 지난 1959년부터 이뤄져 온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북한 정부가 기획한 사실상의 강제이주였다는 주장이 한 북한인권단체로부터 제기됐습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북한과 일본이 맺은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보낸 이른바 북송사업.
북한 측은 9만3천여 명의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이주시킨 이 사업이 자발적인 이주에 따른 인도주의적 목적의 ‘귀국사업’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은 9일 외신들을 대상으로 연 기자설명회를 통해 북송사업은 북한 정부가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 사실상 강제이주였고 속임수와 강압, 위협, 폭력을 통해 이뤄진 국제법상의 ‘노예화(enslavement)’였다고 주장하며 유엔 산하기관 등 국제사회의 조사를 촉구했습니다.
김소희 북한인권시민연합 선임간사: 재일교포 북송사업은 허위정보의 주입, 기망, 협박, 사회적 압력, 꾸며낸 동의, 일본 내 재일조선인의 처우에 관한 주의의무의 의도적 결여 등과 같은 외부 영향으로 인해 재일교포의 자발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따라서 재일교포의 북송은 강제이주, 노예화, 또는 현대적 개념의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북송사업을 주도한 조총련이 “북한 정부와 정보기관의 지시를 받아 조작된 거짓 정보로 대규모 선전활동을 벌였다”며 사실상 북한의 정보기관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재일교포들을 개별적으로 방문하며 북송사업을 선전했는데, 총천연색 북한 잡지와 신문 등을 갖고 다니면서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거짓 정보를 주입해 이들을 현혹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 겪는 차별과 문화 차이 등으로 인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재일교포들은 이들의 선전활동에 쉽게 설득당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하지만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이렇게 이주한 재일교포들이 북한에 도착한 순간부터 당국의 조직적인 감시 대상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북송 재일교포들이 한국 출신이었고 일본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경험하는 등 북한 내에서 좋은 ‘출신 성분’을 받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광산이나 농장, 건설장 등 육체노동이 필요한 곳이나 낙후 지역에 주로 배치되는 등 북한 내에서도 고정적인 차별과 강제 노동의 피해자가 됐다는 설명입니다.
김소희 북한인권시민연합 선임간사: 대부분 북송자들이 한국 출신이며 일본에서 자본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 성분제도 하에서 적대세력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기에 차별과 착취당하는 삶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북한 사회에서 출세에 필수적 사항인 군복무와 입당에도 큰 제약을 받았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지난 1970년대 북한의 독재체제 강화와 정권세습 과정에서 이른바 ‘성분체계’가 더욱 공고화되고 북한 내에서 정치범 개념과 구금시설이 체계를 갖추면서 북송 재일교포들이 정치범으로 몰려 실종되거나 구금되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북송 재일교포들이 당시 북한 내에서 정치범으로 처벌받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른 채 언론과 종교, 집회와 결사, 직업 선택, 거주 이전 등 기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한 상황에 대해 당국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탈북을 시도했던 것도 강제실종과 강제구금의 피해자가 된 이유로 들었습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인권서울사무소, 북한인권특별보고관, 강제실종실무그룹 등이 북송사업을 북한 정권이 저지른 반인도 범죄의 일환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국제형사사법체계를 통해 범죄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어 재일교포 북송사업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은 북한 뿐 아니라 일본 정부와 구소련 정부, 일본 적십자사와 국제적십자위원회 등의 도움과 방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들에 대한 조사와 규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