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케네디 의원] 북 인권문제 부각 주역

지난 25일 타계한 미국 정치계의 거목이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 의원은 미국 의회에서 최초로 탈북자 청문회를 개최한 것을 비롯해 북한의 인권 문제가 알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0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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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기자가 보도합니다.

에드워드 케네디 미국 상원 의원이 뇌암으로 향년 77세의 삶을 마감하자 미국 전역이 추모 물결로 가득합니다.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관공서는 케네디 의원을 추모하며 성조기를 조기로 걸었습니다.

미국의 언론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위대한 정치인’을 잃었다며 케네디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사를 보도했고 저명인사들의 추모도 줄을 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 시대 최고의 상원 의원을 잃었다”고 애도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케네디 의원이 유엔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면서 여러 현안을 놓고 그와 의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미국의 정치명문가인 케네디 가문의 막내였던 케네디 의원은 맏형인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케네디와 법무장관을 지낸 둘째 형 로버드 케네디와 나란히 국립묘지에 안장됩니다.

미국 역사상 40년 이상 상원 의원직을 역임한 6명 중 한 명이었던 케네디 의원은 ‘상원의 사자(the lion of the Senate)’라는 별명처럼 미국 의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1964년의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을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하면서 인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습니다.

케네디 의원은1975년 인권을 침해하는 정권에 미군의 지원을 금지하는 법과 국무부 내 인권차관보를 신설해 전 세계의 인권 상황을 매년 보고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고, 이 영향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휴먼 라이트 워치(Human Right Watch), 휴먼 라이트 퍼스트 (Human Right First), 인권을 위한 의사회(Physicians for Human Right) 등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들이 발족했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미국 의회 역사상 최초로 탈북자 관련 청문회를 열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인권단체인 디펜스포럼의 수잔 숄티 대표는 케네디 의원이 2002년 굶주리는 북한 주민의 실상을 그린 탈북소년 장길수 군의 그림전시회를 의회에 개최한 것이 미국 내 주요 인권단체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끌게 한 주요 계기가 됐다고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전화통화에서 말했습니다.

수잔 숄티 “케네디 의원이 주관했던 의회 청문회를 계기로 미국 내 주요 인권단체가 중국 내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케네디 의원은 2002년 6월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의원과 ‘외교공관의 불가침성 보장과 탈북자 강제 송환을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하는 의원 결의’를 공동 발의해 상원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 가결을 이끌어 냈고 2003년에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향상, 탈북자의 미국 내 수용 등을 포괄적으로 담은 ‘한반도 안보와 자유법안’을 공동 제출했습니다.

인권 수호자로 불리던 케네디 의원의 장례식은 29일 그의 고향인 미국 동북부 보스턴에서 열리고 케네디 의원의 시신은 장례식 후 수도 워싱턴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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