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자 조경호, 이기숙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가정은 탈북과 강제북송, 재 탈북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족이 헤어졌다가 지난해 베트남을 통해 남매가 남한에 입국하면서 2년 여만에 상봉을 하고 현재 서울의 남쪽에 위치한 평택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조경호, 이기숙 가족을 서울에 있는 이진서 기자가 찾아가 봤습니다.
서울에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나 전철을 타고 1시간 남짓 넘어가면 평택이란 도시가 있습니다. 탈북자 조경호, 이기숙 부부는 지난해 베트남을 통해 남한에 입국한 큰 딸 은경이와 아들 혁이, 그리고 남한에 도착해서 낳은 막내 은나와 함께 새로운 둥지를 튼 것입니다. 기자가 이들 가족을 방문했을 때 부부는 북한에서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보여줬습니다.

이기숙 조경호: 작년 엄마 8갑을 했습니다. 시어머니인데 이것이 북한에서 건너온 사진입니다. 이 분이 조카, 조카 딸...우리가 2002년에 재 탈북 했을 때 따라 나오지 못해서 속상해 했는데요. 이 사진의 음식은 배, 게, 돼지갈비네요.
조경호 씨의 어머니가 80순 생일을 맞아 북에 있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에는 온갖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지만 먹기 위한 것들이 아니라고 조 씨 부부는 말합니다.
이기숙 조경호: 그날 사진 촬영하느라고 그렇게 해놓은 겁니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그렇게 못 먹어요. 상표 있는 병을 얻어다가 보통 술을 넣어 놓고 한겁니다. 결혼식 사진도 그런 식으로 찍는 것이 많습니다. 이제는 북한에서 그런 식으로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음식을 돌려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기숙 씨는 남한에서 식품회사에 다니며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북한 가족들의 생각이 날 때면 속상하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이기숙 조경호: 중국에서 글 써서 봉투에 넣어 보낼 수 있죠. 필체를 다 기억하니까. 우리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정착하는데 괜찮은 겁니다. 자기 집 식구는 전부 왔으니까. 아이들도 오고 부부도 갈라지지 않고 왔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식구들 때문에 속상해 하고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사실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커서 시집장가가면 자기 부부가 최고, 자기 자식이 최고지 우리는 식구를 다 챙겨 갖고 왔으니까.
최근에는 북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취하려고도 했습니다. 결국 전화통화를 하는 대신 돈을 보내 도움을 주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이기숙 조경호: 여기서 돈이 얼마나 나갔는지 몰라요. 서울에서 북한에 전화 한 통화 하자면 중국 사람들이 핸드폰을 사서 이북에 내보내잖아요. 조카 때문에 이북에 전화하려고 했는데 한국 돈으로 50만원을 달라고 합니다. 시간제한은 없이 계속 할 수 있는데. 그 돈을 보내주면 북한에서 몇 년을 살겠는데, 안 하겠다고 하니까 30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올해 40대 초반인 이들 탈북자 부부가 남한 생활을 한 것은 채 2년이 안됩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고 합니다.
이기숙 조경호: 한국에 입국한 것이 어제 같은데 2003년 5월 입국해서 인천 공항에 내려서 버스 타고 오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니까 그때 벼를 막 심더라고요. 그리고 2004년도 봄날은 아이들이 중국에서 못 왔으니까 아이들 생각 때문에 계절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정착금이란 것이 3만원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하나원 나올 때 1천7백만원 가지고 나왔는데 브로커한테 1천 4백만원 중국에 보내주고 우리고 집 보증금 내고 먹고 살아야 하잖아요.
점심때가 됐을 땐 두부와 호박을 썰어 넣은 된장국과 하얀 쌀밥을 먹었습니다. 식사 도중에도 이들 가족의 대화는 계속 됐습니다.
이기숙 조경호: 한국 사람들은 태권도, 피아노 배워주고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요...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회사를 다니느라고 은경이가 집안일 다해요. 왜 김치를 안 꺼내 놨어? 반찬이 하나도 없네. 왜 그런지 한국에 오니까 호박도 이북에서 먹던 것 보다 맛이 없어요. 이상하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한국 사람들이 날 나쁘다고 하겠지? 우리 은나 먹다가 버리는 밥만 해도 이북에서 우리 은나 같은 또래 하나 먹고 크겠다.
열명의 탈북자들 가운데 한명만 잘못해도 탈북자 전체가 욕을 먹는다면서 남한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들 부부는 말합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헤어져 2년 만에 다시 만난 아들과 딸이 앞으로 열심히 남한 사회에 적응하고 잘살아 주기를 조경호 이기숙 부부는 무엇보다도 바랬습니다.
이기숙 조경호: 아이들한테 집사주고 죽는 것이 소원이에요. 그런데 사람이란 것이 못살던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잘살던 것은 오래 기억한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힘들게 고생하던 것은 잊고, 자기들이 하고픈 것만 생각을 하지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이 없어요.
현재 이기숙 씨는 식품회사인 오뚜기 식품에 근무하고 조경호 씨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다 다른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딸 은경이는 대학입학을 위한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둘째 혁이는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