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시간입니다. 오늘은 탈북여성 이태옥 씨의 이야기입니다. 올해 65세로 함경북도 온성 출신인 이태옥 할머니는 지난해 베트남을 통해 남한에 입국한 후 10여년 만에 이미 남한정착 생활을 하고 있던 딸을 만나 해후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이진서 기자가 이태옥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북한에서 60년 넘게 살았는데 남한에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이태옥: 남한은 살기 좋고 우리 딸 전화 받고 걱정 없이 산다고 하고, 딸 보고 싶어서 왔지. 10년 만에 만났는데...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 왔을 때 전화통화하고 막 울었지. 막내 손녀는 떨어져 있다보니 어떻게 하면 만나보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우리 영감이 41세에 돌아가고 내가 38세 때 과부가 됐죠. 먹을 것은 형편없이 고생을 했지. 식량이 없어서 소채반에 나가서 오이하고 토마토를 사먹고, 저녁 한 끼 먹고 그랬죠.
딸이 남한에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 나는 몰랐어요. 중국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위가 중국에 와서 아들을 만나서 알았지 나는 작년에도 몰랐어요.
북한을 떠날 땐 딸을 보러 남한가자고 작정을 했던 겁니까?
이: 그럼, 북한에서 난 속으로 생각을 했어요. 중국에서 사는지 어디 사는지 죽어도 가보자고 결심을 했죠.
남한에 온지 1년도 채 안됐는데 어떻게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이: 우리는 정부에서 돈을 주니까 - 지금은 한 30만원 주는데 66세부터는 50만원 정도를 준대요. 혼자 사니까 먹고 사는 것은 괜찮아요. 건강만 하면 되죠.
북한에선 친구분들도 만나고 했을 텐데 남한에서 심심하진 않습니까?
이: 아침에 일어나서 산에 약수터 갔다 오던가, 거기서 운동이나 하고 정 아프면 병원도 가보고 혼자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 켜놓고 보고, 그래서 사실 교회를 다녔어요. 우리 북한에선 하나님이란 것을 몰랐죠. 교회라는 것은 정치범이란 한가지로 친단 말입니다.
교회가보시니까 어떻던가요?
이: 여기 교회 가서 처음 느꼈단 말입니다. 베트남에 있을 때 몇 명이서 교회 다녔어요. 찬송가도 부르고, 물체를 다 하나님이 줬고 돈도 하나님이 줬다는 겁니다. 나는 곧이듣지 않았다고. 높은 간부들이 일이랑 잘하면 직장에서 돈을 주지, 하나님이란 것을 몰랐다고. 작년 12월 달부터 다녔는데 좋긴 좋아요, 사람도 좋고 인식하기를 죽으면 천당 가고...
교회가면 사람을 만나서 좋은 겁니까?
이: 교회 가면 하나님에 대한 것도 알고, 내 생각에는 지금도 좀 의심스럽기는 한데, 아픈 것도 하나님 찾으면서 고쳐 달라고 하고, 실제로 하나원 있을 때 체해서 누웠는데 목사를 찾아서 예배를 한 다음부터는 나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텔레비전 볼 때는 뭐가 제일 재미있습니까?
이: 모르죠. 그저 보면, 보는 대로 기억력이 없어지니까. 사랑이란 것이 북한에서는 막 내놓고 하지 않는데, 여기서는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 붙을 수도 있고, 그런 것 보면 신기해요.
고향 생각은 안나십니까?
이: 왜 안나요, 생각나죠. 저는 희망이 남북통일이 되서 우리 황해도에 있는 세 번째 딸도 만나보고 싶고. 언제 북한이 통일이 되서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고, 옷도 입고 싶은 대로 맘대로 입고, 거기 있을 때는 우리 딸을 보고 싶어서 울었지만 지금은 항상 북한에 있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먹어도 살로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통일돼서 북한에 나가면 여기 정체에 대해서 자랑만 하고 싶어요.
병원가도, 은행가도, 차라는 것은 너무 많아서 말도 못하고. 북한에선 차를 타고 지나가면 여자들을 보면 나는 어째 저렇게 못할까 했는데 여기 오니까 처음부터 베트남에서 비행기 타고 남한에 오니까 여긴 다른 세상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저번에 아들하고 전화통화 할 때도 한국에 와서 본 것 말하고 싶지 뭐. 그런데 중국에서 연결 시켜준 사람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 못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