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박성우 xallsl@rfa.org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달 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가한 바로 다음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갔죠. 조용한 농촌이던 봉하마을은 그때부터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하게 될 거라는 게 시민들의 의견입니다. 박성우 기자가 탈북자 정영씨와 함께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고 6시간 거리, 기차로는 서울에서 밀양까지 가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진영역에 내려 자동차로 또 15분을 이동해야 노무현 전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에 갈 수 있습니다.
봉하마을에 도착한 건 지난 금요일 오후 2시쯤.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 바로 뒤편에는 대지 4,300 평방미터에 지상,지하 각 1층으로 방 3개와 거실, 서고, 욕실 등이 갖춰진 새로 지은 사저가 보입니다. 주변엔 여전히 조경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사저 입구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오후 2시 반쯤, 관광객들 숫자가 300명가량으로 늘어나자 노무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옵니다.
노무현: 네. 감사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일이 자신을 찾아준 관광객들과 손이라도 맞잡고 인사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 미안하다며 농담을 건넵니다.
노무현: 너무 사람이 많이 오시고, 또 손잡으러 가면, 손을 잡고 안 놓아 줘요.
노무현 전대통령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한 40대 여성이 자신은 호주에서 왔다며 사인, 그러니까 서명을 해 달라고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부탁합니다.
노무현: 호주에서 오셨다는 데, 제가 따로 특별대우 해도 되겠지요? 관광객들: 네!
검게 그을린 얼굴의 노무현 대통령은 호주에서 왔다는 한국 여성 김정희씨에게서 종이와 볼펜을 받아 서명을 해 주며 대화를 이어갑니다.
김정희: 그런데 얼굴이 왜 그렇게 검어지셨어요?
노무현: 제가 볕에 나와서...
김정희: 많이 타셨네요. 몸 건강하시고...
노무현: 오늘이 3월 7일입니까? (네) 아, 내가 군대 입대한 날이 3월 7일입니다. 잘 다녀가십시오.
김정희: 큰 영광입니다.
김정희씨가 노무현 전대통령에게서 돌려받은 종이엔 “사람 사는 세상. 2008년 3월7일. 노무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기자: 대통령님한테 사인도 받으시고, 기분 좋으시겠어요?
김희정: 네. 영광이에요.
기자: 어디서 오셨어요?
김희정: 호주, 시드니에서 왔어요. 경주 가다가 여기 들리려고... 젊은 사람들은 안온데요. 그래서 제가 왔어요. 한번 뵙고 싶어서. 너무 감사하네...
김희정씨처럼 멀리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있지만, 평일은 보통 천명에서 1500명 정도가 봉화마을을 찾는데 그 중 대부분은 주변 도시인 김해나 부산에서 온 분들이라는 게 봉하마을 관광안내원의 설명입니다.
기자: 할아버지는 어디서 오셨어요?

관광객: 김해에서 왔어요. 봉고차 2대, 승용차 1대. 한 25명이 같이 왔습니다.
기자: 왜 가봐야겠다는 생각 하셨어요?
관광객: 지난 5년 동안 우리 노무현 전대통령께서 고생하시고, 고향에 오셨다고 하니까, 반갑고 해서... 그래서 한 번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봉하마을은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농촌 마을입니다. 마을 주변은 공단 지대여서, 옛날에 봉화를 올리던 뒷산을 빼면 둘러보며 구경할 곳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이 내려온 다음부터 마을은 주말이면 1만5천 명가량이 찾고 있다고 2003년 1월부터 봉하마을 관광안내소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는 김민정씨는 말합니다. 작년 이맘때 주말이면 300에서 700명가량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를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던 것과 비교할 때 10배 이상 방문객이 늘어났다는 설명입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마을에선 부녀회에 소속된 여성들이 마을 회관에다 임시로 3월 첫째 주 일요일부터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마을 입구엔 넓은 주차장을 새로 만드는 공사도 한창 진행 중입니다. 조용하던 마을에 이처럼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자 마을 주민들은 신이 났습니다. 앞으로 마을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에 덧붙여 전직 대통령과 같은 마을에 산다는 자부심도 느껴집니다.
기자: 노무현 대통령 돌아오니까 어떠세요?
주민: 좋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 대통령을 몇 번씩 본다는 건 영광 아닙니까. (웃음)
노무현 전대통령도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려 노력한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주민: 어제도 여기 대청소 했는데요.
기자: 마을 대청소요?
주민: 네. 저기 하천 대청소, 여기 주위에...
기자: 거기 노무현 대통령도 나오셨어요?
주민: 네. 어제 같이 했어요.
기자: 아, 직접 청소를 하셨어요?
주민: 네.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다음 고향에 내려와 이렇게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고 또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본 탈북자 정영씨는 북한의 실상과 비교해 보니 너무 차이가 난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정영: 북한에서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다 인증을 거쳐서, ‘이 사람은 보안 쪽에서 문제가 없고 앞으로 어떤 혜택을 많이 받았다’는 그런 선전 효과가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만났기 때문에 (기자: 그러니까 무작위로 저렇게 관광객들... 부산에서 오고, 김해에서 오고... 이런 일반 시민들하고 만나는 일이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요.
평일엔 주로 주변 도시 사람들이 봉하 마을을 찾는데, 관광객들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공감대 때문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향을 반기는 내색이 역력합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정책이나 행동, 말하는 태도 등 때문에 받았던 여론의 따가운 질타에 대해서도 봉하마을을 찾은 지역 주민들은 이젠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관광객1: 일개 동네 이장을 해도... 30호 되는 마을 이장을 해도, 그 사람들 다 만족스럽게 못해 주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똑 같은 건데 뭐...
관광객2: 원래 그렇다 아닙니까. 큰일을 하려면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어요? 나쁜 소리도 듣게 되고... 이렇게 5년 잘 마치고 고향에 오셨으니 다행이지... 아무 사고 없이 잘 마쳤으니까...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퍼주기’ 논란까지 있었던 대북 정책에 대해선 관광객들도 상반된 입장을 보입니다.
관광객1: 그거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저희들 생각하기로는, 그 정도 (북한에) 하면 그 정도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줘야 오지... 안주고 오겠습니까.
관광객2: 대가 없이 좀 많이 준 거 같아요. 주게 되면 어느 정도 받아야 되지... 우리만 자꾸 주면 뭐 합니까. 우리 대한민국도 못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다른 평가가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포함한 전반적 업적에 대한 최종 평가는 결국엔 역사가 하게 될 거라는 게 부산에서 온 관광객 김정권씨의 의견입니다.
김정권: 역사가 흘러 보면 알겠죠. 후대에서 칭찬이 나오던가 비판이 나오던가 그렇게 되겠죠.
봉하마을을 둘러본 정영씨는 서울로 발길을 돌리기에 앞서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봉하마을 입주를 축하한다며 난을 선물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정영: 대통령이 누가 당선되든 간에 서로 축하해 주고 끝나고 난 다음에 위로해 주는 이런 모습이 제가 보기에도 참 보기 좋았고요. 그리고 정권교체가 물리적인 폭력 수단에 의해서 교체가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일반적으로요... (기자: 북한에서요) 그렇죠. 그런데 남한에서는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걸 보니까,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성숙됐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