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은 요즘, 한창 대하, 전어 철이라 우리는 서해 아산만으로 대하와 전어를 먹으러 가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재혼을 한 뒤, 남편과 아들과 함께 가는 첫 가족 여행이었기에 저의 기분은 한껏 들뜨고 설렜습니다.
들뜬 기분 때문이었는지.. 차를 교대로 운전을 했는데 그만 서해 고속도로에서 길을 잘못 들어 서해 대교를 타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긴 다리라는 이 서해대교는 경기도 평택과 충남 당진을 잊는 바다에 건설된 다리인데..이 끝에 휴게소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커피한잔을 마시고는 여기까지 온 김에 태안으로 가자는 아들의 말에 태안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늠름하게 운전하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태안도 아산도 아무 곳이나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집에서 출발해 3시간 만에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있는 만리포 해수역장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름유출 사고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태안의 만리포는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사고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습니다.
국민들의 정성어린 손길과 애국심이 얼마나 큰가가 한 눈에 안겨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말 만리포는 더 아름답고 웅장했습니다. 서해 해상의 국립공원의 명소로 서쪽 끝의 천리포 해수욕장과 남북으로 이웃하고 모든 편의 시설이 아담하지만 편리하게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만리포에는 소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가을바람에 풍겨오는 솔향기가 코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 감기기운이 다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여름철도 다 가고 단풍든 가을이라고 하지만 가을 바다도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에 울긋불긋 오색 단풍과 시퍼런 바닷물이 어울려 여름 바다에서 볼 수 없는 정취가 있었습니다. 10월 중순이라고 해도 청춘 남녀들은 바닷물에 들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는 걸보고 저도 어린애 마냥 아들과 함께 바지를 걷고 바닷물에 들어섰습니다. 바닷물이 생각과 달리 그리 차지 않았습니다.
이곳 남한에 와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많았지만 항상 조금 허전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재혼을 생각하면서도 우리 아이들과 남편과의 관계문제를 많이 걱정 했습니다. 한 가족 한 식구의 행복한 모습으로 잘 어울려 갈 수 있을까...그러나 다행으로 아이들도 남편도 잘 적응해줬고 이제는 이렇게 한 가족이 돼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북한에서 데려나오기 위해 상상하기 싫은 고생도 했고 중국의 삶도 힘들었습니다. 세 번의 북송과 남편의 죽음.. 저는 때로는 친구들에게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냐며 농담 삼아 얘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여자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애들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나이 50 세가 넘어 이제 '자식 복 남편 복' 있는 여자가 됐습니다.
저는 단란하고 오붓하고 행복한 가족을 위해 항상 봉사 하는 '주부'라는 이름을 갖기를 바래왔고 이제 이 이름이 더욱 행복합니다. 아침저녁 밥을 지어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놓아도 먹어 줄 사람이 없었고 함께 오붓이 먹어 줄 사람이 없어 재미가 없었건만 이제는 아침저녁 꼭꼭 맛없어도 맛있다고 칭찬을 해주며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바다를 떠나 우리 식구는 돌섬 횟집에서 전어 회를 먹었습니다. 일찍 출발하면 고속도로에 차가 너무 막힐 것 같아서 박정희 대통령께서 바다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는 삽교 뚝도 들렀습니다. 경치가 아름답고 웅장했던 삽교호를 거쳐 그제 서야 우리가 집에서 목표로 하고 떠났던 아산만에 도착했습니다. 아산만에 도착해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을 들러 저녁을 먹고 어두컴컴해 져서야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새로운 가족의 첫 가을 여행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이번 여행처럼 앞으로 저의 새로운 가족의 앞날도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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