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서해교전 현장, 대연평도를 가다
2007.06.25
연평도-이진서
6.25전쟁 이후 실제로 서해에서 남북이 군함에서 포를 쏘고 기관포를 발사하면서 두 차례의 치열한 격전을 벌인적이 있습니다. 꽃게 황금어장으로 불리는 서해 연평도 앞바다에서 남북 해군은 지난 1999년 6월6일과 2002년 6월29일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교전을 벌였습니다. 서해교전이 있은지 5년이 지난 연평도를 찾았습니다.
현장음: 인천연안부두를 08시 출발하여 본선은 시속 60km 32노트 속력으로 운항됩니다...
인천에서는 하루 한 차례 연평도를 가는 고속여객선이 다닙니다. 기자도 아침 일찍 고속 여객선에 올랐습니다. 앞으로 항해할 시간은 두 시간, 서해의 검은 파도를 가르면서 고속 여객선은 숨가쁘게 달리고 기자의 머릿속에는 이 검푸른 바다위에서 있었던 두 차례 남북간의 사투가 그려집니다.
지금 기자를 태운 고속선이 달리고 있는 바로 이곳 연평도근해 이곳에서는 지난 1999년 남북 해군이 맞붙었고 이 충돌로 북한 해군 함정 10척 중 어뢰정 1척이 침몰되고 중소형 경비정 5척이 파괴됐습니다. 북한 해군의 대패였고 이를 남한에서는 연평 대첩이라고 부릅니다.
연평 대첩에서 패한 북한 해군은 이에 설욕이라도 하듯 3년 뒤인 2002년에는 미리 전투 준비를 하고 남한 해군과 전투를 벌여 남측의 함정 한척이 침몰되고 북한역시 수척의 함정이 크게 파괴 됐습니다.
남한 해군은 2002년 해전에서 남측은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힌 반면 북한 당국에서는 서해교전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아 정확한 피해상황을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번의 해전은 모두 NLL, 해상 분계선을 월선한 북한 해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이 됐다고 남한 해군은 주장합니다.
어느덧 고속 여객선은 연평도에 다다랐고 기자도 배에서 내렸습니다. 내려서 들으니 연평도에서 북방한계선은 3-4마일거리에 있고, 배를 타고 30분 정도만 가면 닿는다고 합니다. 북한이 코앞에 있습니다. 연평도 해양경찰 김근수 경장의 말입니다.
해양경찰: 현재 저희가 등대 전망대에 있어요. 섬으로 치면 서남방 끝단에 있는거죠. 북쪽은 서북방 쪽으로 있는 겁니다. 어선으로 2-3시간 거리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바로 북단이 NLL이고요. 가장 가까운 곳이 석도, 갈도, 장재도 이런 섬인데 해주 7도라고 ...
남한의 섬, 연평도는 육지인 인천에서는 100km 이상 떨어졌지만 북한 해주하고는 불과 30km 거리에 있어 날씨가 맑은 때는 연평도에서 북한의 해주땅이 보입니다. 행정구역상 한때는 황해도 백성군이기도했던 연평도는 ‘조기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조기를 비롯한 농어, 민어, 준치 등이 많이 잡히고 조개와 바지락 등 해산물도 많아 어민들이 풍족하게 사는 섬이었습니다.
그러던 연평도가 90년대 들어서며 꽃게 잡이로 유명해졌고 봄철이면 남북의 어선들이 종종 월선을 하면서 남북 해군간의 충돌이 빈번한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연평도에서 26년째 살고 있는 김영희씨는 연평도 근해에서 있었던 남북 해군간 교전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김영희: 총소리가 틀리더라고요. 여기는 전방이기 때문에 총소리가 가끔 나는데 그때는 총소리가 틀렸어요. 그게 서해교전이더라고... 먹고 살기 바쁘니까 여기 현지 주민들은 그런 것에 둔하다고 할까? 항상 총소리를 접하다 보니까 겁나거나 한 것은 없는데 언론에 통해 밖에 나가면서 친척들이 전화해서 무사하냐 ...그런데 여기는 살기 바쁜데 뭐....
기자: 서해교전이 일어나고 달라진 것이 있나요?
김영희: 많이 달라졌죠. 지금 연평도가 서해교전 일어나고 황폐화되고 망한 겁니다. 서해교전이 알려지고 꽃게가 나는 것이 알려져서 중국 배가 계속 들어오고 저기 뒤에 중국 배들 밭이예요, 여기 사람이 살 수가 없어요.
올해 67살로 연평도 태생 김정옥씨는 전쟁이 난줄 알고 허둥대던 그때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고 말합니다.
김정옥: 꽝하는 소리가 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전쟁이 났다고 봐야 하겠지. 내가 밖엘 나가보니까 차들이 막 가는거야, 왜그러냐고 물어보니까 이북하고 전쟁이 났다는 거예요. 난리가 났잖아요. 손자들이 유아원에 있으니까 빨리 데려와야 하고, 돈도 농협에서 찾아와야 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구경하느라 난리예요.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허무하고...
김정옥씨는 또 다시 남북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김정옥: 2002년에는 우리 해군이 많이 다쳤잖아요...가봤는데 해군들이 쫙 선창가에 서있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죽는 사람도 있었고 짤렸고, 다쳤고 너무 마음 아팠어요.
그런데 연평도의 남북 충돌은 엉뚱하게 중국 어선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연평도에서 배를 갖고 있는 선장 이경선씨는 지난해부터 배를 묶어놓고 조업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중국 어선들이 집단적으로 끊어져 있는 남북의 해상 분계선상에서 물고기의 씨를 말릴 정도로 싹쓸이를 해가기 때문입니다.
이경선: 지금 중국어선이 들어오고부터는 우리 어획고가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이때쯤이면 온 동네 할머니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어획고를 올리는데 지금 조용하잖아요. 저는 억울해요. 선주이면서 선장, 선원으로 배를 타지만 너무 억울합니다. 북한 어선들이 나와서 조업하는 구역은 저쪽이고 우리는 이쪽이잖아요. NLL, 공해상을 중국 어선이 교묘하게 이용을 해서 그것을 타고 들어옵니다. 지금은 안개가 끼어서 안보이는데 중국배가 지금도 150척 이상은 와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중국 배들을 개미떼라고 부릅니다. 셀수도 없는 숫자가 있다고요.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로 꽃게의 씨는 마르다 시피했습니다. 최악의 어획고를 기록했던 지난해보다도 올해는 어획량이 더 줄었습니다. 옹진군에 따르면 4월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5501kg로 지난해 같은 달 어획량인 8319kg에 비해 34% 감소했습니다. 꽃게 대풍이었던 2000년대 초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도 안됩니다.
이경선: 내돈 가지고 들어와서 살아보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빚더미에 앉았어요. 저는 오기로라도 버티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파산직전이예요. 이제는 뭉쳐서 정부에 얘기를 하려는 마음도 다 사라졌어요. 자포자기예요.
그의 희망은 그저 어부로서 고기 잡고 편안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없어야하고 또 남북 간에도 충돌이 없어야합니다.
이경선: 우리는 바가지라고 하고 그 배들은 빨간 바가지라고 하는데 14년동안 조업을 하면서 실제로 빨간 바가지를 본적은 한번도 없어요. ( 기자 : 방송이 나오나요?) 네, 빨간 바가지가 떴으니까 안전 조업을 하십시오. 방송을 하면 거기에 다라서 조업을 하고 우리 어선들 말 잘들어요.
지금 연평도에는 기자가 연평도를 밟기전 머리속에 그렸던 풍성하고 게를 잡는 손가락이라도 베어 물것 같은 그런 힘찬 꽃게 들은 없습니다. 공동 판매장 바구니에 담긴 꽃게 들이 처량 맞아 보이고, 그 꽃게들을 바라보는 이곳 주민들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합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남북 분단은 왜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되는가를 잘 상징하고 있습니다. 연평도에는 올해도 꽃게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