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힘입니다] 현대가 안주인 답지 않은 검소한 ‘한국의 어머니상’-변중석 여사

한국 대기업 현대의 안주인으로 검소하고 알뜰하게 살아오면서 남편이 한국 최고의 기업인이 되기까지 내조한 변중석 여사,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성공한 한국의 어머니상입니다.

0:00 / 0:00

변중석 여사가 타계한지 올 8월17일이 1주년이 됩니다. 변중석 여사를 떠 올릴 때마다 재벌가 안주인답지 않게 검소하게 살아온 그의 일생과 조용하게 남편을 내조했던 어머니로 생각됩니다.

이런 내조자가 있었기에 현대 그룹의 정 주영 전 회장도 어려운 시절을 딛고 대기업을 일궈 낼 수 있었다고 변 여사의 삶 을 직접 본 분들은 회고합니다. 변 중석 여사와 가까이 지냈던 성심여자대학교 전 총장을 지낸 김재순 수녀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남편은 사업가로 대성공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검소 하셨어요. 회장님이 밖에서 일하는데 하나도 지장이 없었죠. 그 살림을 다 꾸리시는 정도가 아니고 정말 규모 있게 자기는 검소하게 살면서 식구는 많은데 그 사람들 다 거느려 가면서 집안일에 대해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도록 하신 점 그분의 공로죠. 기강이 서있어요.

정주영 회장도 자서전에서 생전에 재봉틀 한 대와 장독대 항아리를 유일한 재산으로 여겼던 아내는 부자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고 젊은 시절 그렇게 고생을 지내면서 불평불만 하나 내색하지 않고 집안을 꾸려준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회고했습니다. 또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한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이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수녀는 변중석 여사를 외부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준 분으로 기억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이 베풀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나타내지 않으셨어요. 또 참 말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말이 없고 그 대신 말을 하면 다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만 하셨대요. 겨울에 저를 보면 수녀원에서는 불도 안 때고 사는데 요즘 추워서 어떻게 사는지 걱정했다고 이렇게 말씀 하세요 그러니까 사람이 참 고마움을 느끼게 하시죠.

온 가족이 새벽 5시에 먹는 밥상을 위해 새벽 3시 반부터 손아래 동서 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주방 일을 돕고 메주를 직접 쑤어 직원들에게도 돌렸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성심여자대학교 전 총장을 지낸 김재순 수녀는 한번은 학교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변중석 여사와 정주영 회장이 함께 오셔서 너무도 편안하게 바자회 음식을 그 자리에서 직접 사 드신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말 합니다.

바자에서 빈대떡 만들어 팔고 떡 볶기 만들어 팔고 그러지 않아요. 그것으로 점심을 다 사 잡숫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죠. 여기서 파는 것 사먹지 왜 이렇게 부산한날 수고를 끼치느냐고 그러시면서 영감님하고 둘이 오셨는데 다 사 잡숫고 들어오셨더라고요.

재벌가의 안주인 이었지만 아들을 잃는 비통한 일을 겪으면서도 그 어려움을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바로 한국의 그 어머니였다고 김 재순 수녀는 전합니다.

첫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그렇게 되었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세 째가 또 하나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 후부터 너무너무 마음고생이 많으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병이 나신 거예요.

변중석 여사는 1921년 금강산과 인접해 있는 강원도 통천, 북한 땅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열여섯 살에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던 이웃 마을의 6살 연상 정주영과 혼담이 오간지 한 달 만에 결혼 했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와서 부엌도 갖추지 못한 산 동리에서 셋집을 장만 했는데 정 회장은 왜 집을 사지 않았느냐며 물정에 어두운 부인에게 역정을 낸 일화도 있었다고 김 수녀는 전했습니다.

그러나 셋집 살림을 일구어 가면서 유교적 전통이 강한 정씨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5명의 시동생들과 8남1녀의 자녀 뒷바라지를 해온 변 여사는 정 주영 회장이 500마리의 소를 끌고 고향을 방문 할 때도 여느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친정인 통천 고향을 먼발치에서 그리워했던 안타까움을 김 재순 수녀는 전합니다.

고향에서 친정 식구 만나 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셨어요. 그것 못하고 가셨어요. 결혼하고 남쪽으로 오셨는데 세상이 이렇게 됐죠. 그 전에야 돈이 없어서 전차 값 5전을 아낀다고 걸어 다니셨는데 어떻게 고향을 가겠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제일 부자가 됐지만 갈 수가 없었고요.

요즘은 장관, 최고경영자, 교수, 예술인들로서 성공한 여성들도 많습니다. 그 못지않게 현대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던 변중석 여사의 삶을 돌아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