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국가폭력 피해 보상해야"

서울-장명화 jangm@rfa.org

집단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개인이 개인에게 행해지는 폭력보다 더 크고 긴 고통과 상처를 안깁니다. 수용소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고문과 처형으로 얼룩진 신동혁씨의 과거는 국가라는 명분으로 행해진 잔인한 폭력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국가폭력에 대해 보상을 청구하고, 이를 위해서 단체나 국가가 적극 나서야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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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신동혁씨가 전기 철책을 넘다 다리에 난 상처들 - RFA PHOTO/장명화

공포와 불안을 당연한 듯이 알고 살아온 올해 26살의 신동혁씨는 자유세계로 넘어와 살면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수용소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들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병까지 얻습니다. 단지 수용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북한정권이 그를 인간이 아니라 마치 박제된 부엉이처럼 처참하게 취급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자신을 깨버리고 싶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신동혁씨를 진료했던 천안 단국대학병원 정신과 이경규 교수입니다.

(이경규) 본인이 보는 앞에서 부모가 공개처형당하고, 본인이 실수했다고 손가락 절단당하고 굉장한 고통을 당했죠. 한국에 오려고 중국에 있을 때 그곳 사람들한테 강간당하고.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떡하나하고 불안해하고, 그런 사건, 사고의 정신적 외상의 재경험이 되면서 악몽으로 나타날 수 있고, 그런 장소를 피하고 싶고, 그뿐만 아니라 늘 불안하고 긴장되고....

개인에게 당한 폭력보다 집단이나 국가에 의한 폭력은 후유증이 더 심하고 오랜 상처를 남깁니다. 최근 아프간에서 탈레반이란 무장단체에 의해 한 달 이상,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인질들이 말을 잃는 실어증에 걸리고, 감정조절도 못하고 종종 흐느끼는 심리적인 불안감은 이 같은 폭력으로 겪은 정신적 질병의 초기증상으로 분류됩니다. 신동혁씨처럼 장기간에 걸쳐 국가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정상인간으로 회복하는데 대단히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이런 문제가 덮어지거나 북한이 이런 일을 해도, 북한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무관심할 정도로 당연시 하는 풍조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크게 일고 있습니다. 우선 이를 차단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방법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입니다. 법무법인 신우의 전승만 변호사입니다.

(전승만) 개인대 개인이 아니라, 정권차원에서, 북한 법제나 시스템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니까, 법제나 시스템 차원에서 회복시켜줘야겠죠. 그래야 통합된 체제가 공의로워지고, 기반이 든든해지지 않겠습니다. 그런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덮어놓고 경쟁하게 하면 굉장히 부당한거죠. 배우지도 못하고, 갖지도 못하고 차별받아왔는데요...

국가폭력의 희생자인 신동혁씨가 관리소를 탈출한지 3년, 그리고 한국에 정착해 일년하고도 일개월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악몽은 그를 여전히 괴롭힙니다. 길을 걷다 경찰관을 보면 괜히 움찔합니다.

(신동혁) 사람이 무섭고 (기자: 왜요?) 원래 수용소 자체가 사람을 무서워했으니까요.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하구요. 하나원에 가서도 혹시라도 나를 밤에 누가 해치지나 않을까 제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계속 악몽에 시달리고. 계속 사람을 의심하게 되고, 경계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지 못하게 되고. 한 달 동안 그렇게 생활하다가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치료도 받으면서 조금씨 낳아졌어요.

신동혁씨만이 이런 국가폭력의 피해자는 아닙니다. 탈북자들은 모두 크던 작던 이런 국가폭력의 희생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신동혁씨와 같은 강도의 고통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북한정권에 의한 자유의 억압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이것이 원인이 돼서 북한을 탈출한 것은 모두 국가권력의 피해자란 해석이 가능하다고 법조계는 지적합니다.

이런 기막힌 경우도 있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잠시 나온 중국. 그 사이에 그만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북한에 돌아가면 꼼짝없이 정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들어갑니다. 탈북자 이영희씨는 그래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영희) 제 아이 둘을 거기에 놓고 나왔거든요. 그 아이들한테 대한 심리적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자그마한 부스럭 소리에도 놀라서, 심장이 약해져서 경찰이 나를 잡아오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보다, 애들을 두고 온 고통이 너무 컸어요.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때 많은 병을 만나서 지금도 두통을 겪고 있고, 심장이 약해져서 자주 놀라구요. 이젠 고질병이 됐어요.

국제인권단체들과 미국 국무부의 연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는 적어도 20만 명 이상이 수용돼 있고, 수감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인권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신동혁씨가 살았던 평남 개천 관리소에만 적어도 4만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제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남북정상회담도 열리면서, 신동혁씨와 같은 국가권력의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의견이 법조계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 독일은 과거 동독 공산정권에 의한 피해자 10만 명의 복권과 보상을 위해 신청을 접수해 조사, 처리하고, 공산당과 정권기관 등의 권력남용자들을 모두 사법처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