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베이징 북한 대사관 앞에도 한 때, 이걸 쌓아놓고 팔았다고 하죠.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한 전자제품, 바로 쿠쿠 전기밥솥, 북한식으로는 전기밥가마 얘깁니다. 요즘 북한에선 음성 안내 기능을 끈 ‘말 없는’ 쿠쿠 전기밥가마를 찾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취재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김지은 기사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은 기자 : 안녕하세요.
한국 제품 사용하면 ‘정치범’, 그래도 반입되는 한국산 ’전기밥가마’
진행자 : 쿠쿠 전기밥솥은 취사를 시작할 때 그리고 끝날 때 음성 안내가 나오는데요, 이 기능을 안 끄고 그냥 썼다가는 진짜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한국산 제품을 사용하면 정치적 문제로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여전히 한국산 전기밥가마는 인기가 있군요.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한국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정치범이 됩니다. 2023년 12월 31일 북한 김정은 총비서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남한을 대치하고 있는 적국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기 때문에 적국의 물자를 사용하는 것은 반동 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취재 과정에서 요즘도 한국산 전기밥솥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좀 놀랐습니다.
남한 물건을 사용하다 발각되면 처형이나 정치범 관리소에 수감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북한 주민들 속 한국산 제품의 인지도가 높다는 걸 보여주는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쿠쿠 밥솥은 왜 인기가 있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남한에서도 점유율이 높지 않습니까? 북한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밥맛이 좋고 특히 고장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산 전기 밥솥도 많이 유입되고 있지만 품질은 한국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수입 제품은 주로 외화로 거래되는데요. 수입산이 비싸지 않습니까? 100달러 한 장으로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을 북한 돈으로 계산하려면 330~350만 원 정도 되니, 돈 자루로 돈을 메고 가야 할 정도죠. 북한에서 한국산 전기밥솥은 최소한 800달러 정도로 거래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밥솥 용량이 크고 최신 제품의 경우에는 1천 달러를 넘어가기도 하는데 물량이 없어서 거래를 못 할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리 단속해도 높은 간부들의 집을 안전부, 보위부 성원들이 샅샅이 뒤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간부들의 집은 수색도 없거니와 중앙당 검열이 있는 경우, 거의 다 알려주기 때문에 다른 곳에 숨기는 등 대책을 취하는 것이죠.

말하는 전기밥솥은 손님이 오면 혹시 들통날 수 있지만 말 없는 전기밥솥은 그럴 위험이 없으니까 계속 찾는 겁니다. 불시 검열에 용이한 간부들과 잘 사는 주민들 대부분이 숨겨 놓고 쓸 수 있는 한 한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 이후 한국산 제품 사라졌다?
진행자 : 밥솥 뿐 아니라 한국산 전자제품 중에서도 전기 장판, 믹서기 같은 게 인기였지 않습니까?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김지은 기자 : 한국 제품 중에서도 특별히 ‘한국산’으로 티가 나지 않는 제품은 다 사용합니다. 일단 수입할 때 한국산 제품은 글자를 다 지운다고 하죠. 게다가 오래 사용하면 어디서 온 제품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남한 물건을 사용하지 말 데 대한 지시는 여러 차례 내렸지만 실제로 주민들은 남한의 물건이나 남한에 대한 동경을 지우기는 무리라고 말합니다. 남한의 물건은 옷과 신발, 그릇, 여러 가지 생필품 심지어 USB 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남한의 노래와 기록물, 영상물이 USB를 통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 복사돼 돌고 도는 실정입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발표된 후 노골적인 사용 사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계층에서 은밀하게 사용하고 요구하는 걸 보면 그 이용과 확산을 완전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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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국내산 제품 소비 장려...“품질 낮아 주민들 외면”
진행자 : 기사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통관 관련입니다. 소식통은 ‘6월부터 조중 국경 분위기가 풀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는데, 비슷한 소식은 여러 번 나왔잖습니까? 이번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기대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6월부터 관광을 비롯해 북-중 무역도 한결 풀릴 것으로 보는 것은 최근 북한 대표단들이 중국을 방문하여 관광과 무역, 인력 수출 문제 등을 논의했고 이런 소식이 중국 관계자들에게 긴밀히 전달되면서부터입니다.
그동안 김정은 총비서가 푸틴 대통령과의 밀착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북중 관계는 전례가 없이 얼어붙었습니다. 중국 정부의 조치에 따라 암묵적으로 진행되던 해상에서의 밀무역도 전부 차단된 상태입니다. 중국을 통해 유입되던 상당수의 물류가 제한되면서 바빠 맞은(급해진) 것은 북한 당국입니다. 북한은 중국에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영향도 직접적이었습니다.

6월부터 북중 무역, 관광 풀릴 기대 그러나 변수는?
최근 북한이 여러 가지 부분별 대표단을 중국에 파견해 베이징의 문을 두드렸다는 소식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졌는데요. 일부 합의점을 도출해 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냉온 관계를 계속 반복해 오면서 중국 측 관계자들은 여전히 북한에 대한 관계 개선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도 동시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만약 북중 관계가 해소되고 북한 관광이 재개된다고 해도 중국인들이 호응을 얼마나 끌어낼지는 미지수입니다. 북러 밀착 이후 중국 국민들 속에도 북한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도 언제든 배신을 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낙인됐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 북한 당국은 남한 제품 단속을 강화하는 동시에 국내 생산품 이용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하여 제품을 생산할 것을 강조하고 자기의 것에 대한 믿음과 애착,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국내산 제품을 이용할 것”을 주민들에게 다시 강조했는데요. 실제로 북한 당국은 수년간 자체 생산품을 다양화하고 수준을 높이는 데 주력해왔지만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수입 제품을 북한 제품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재 북한은 마치 자강력을 가지고 나라가 발전, 번영한다고 선전하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선 북한은 광물 자원이 많아도 전기와 설비가 따라서지 못해서 채굴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또 농사를 지어 주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비료가 없고 농기계가 없어 계획된 농산물을 생산하지 못해 수십 년간, 근 50년 이상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전 주민의 50% 이상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국가가 해외에 의존하며 국민에게는 자강력 주문
그러니 러시아 전쟁터에 자국 군인을 파병하여 밀가루를 받아오고 포탄을 주고 원유를 받아오는 상황이 연출되는 겁니다. 국가 차원에서 다른 나라에 의존하면서 주민들에게 자강력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죠.
화폐마저도 북한 주민들은 달러나 인민폐, 유로화, 엔화를 선호합니다. 자국의 화폐를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디에 있습니까. 굳이 국가에서 강제하지 않아도 대부분 국가의 국민들은 자국 화폐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북한 화폐를 불신하고 사용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가장 적대적인 관계라고 하는 미국의 달러를 가장 선호합니다. 또 전쟁 교전국, 적대적 관계로 지정한 남한 물품을 가장 선호합니다. 주민들에게 자강력 제일주의는 먼 달나라 얘기만도 못한 풍월에 지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제가 기사로도 썼지만 북한은 샘물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샘물을 담을 병이 없어서 계획량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로도 내부 실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의 모든 공장 기업소의 생산이 다 그렇습니다. 전기가 오면 원료가 없고, 원료를 조금 확보하면 전기가 정상 전압대로 제시간에 오지 않고, 정상적인 생산을 기대할 수 없는 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로 가자고 선동합니다. 신발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땅에서 샘솟는 샘물 생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준에서 공산주의 타령을 외치고 있으니 그 선전을 듣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심정은 얼마나 막막하겠습니까. 그러니 당국의 주장을 외면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등을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도 이미 외국이 얼마나 발전되었고 외국의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이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해외에 파견하는 노동자들과 무역 대표들, 외교 간부들을 통해 외국의 발전된 현실이 전달되는 겁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입은 막지만 눈과 귀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인민이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선택하길 바라며 오늘 시간 인사드리겠습니다.
진행자 :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김지은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