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에어컨과 전기자전거... 북한에 들어간 ‘신문물’의 행방

북한에도 에어컨과 전기 자전거...누가 사용하나?

진행자 : 속도는 느리지만 북한에도 신문물이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평양 등 일부 대도시 가정에서 냉풍기(에어컨)가 설치되고 전기 자전거도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래도 일부 여유 있는 가정에 한정된 얘기겠지요? 보급률이 얼마나 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안창규 기자 : 맞습니다. 북한에서는 냉풍기든, 전기자전거든 일반 주민보다는 간부나 돈 있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에서 두 신문물의 보급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보급률은 특히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우선 냉풍기는 평양, 평성, 사리원, 남포 등 북한 남부 지역에 국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날씨와 기온 영향 때문입니다.

북한 북부의 양강도, 함경북도 전 지역과 함경남도, 자강도, 평안북도의 북부 일부 지역은 여름 날씨가 별로 덥지 않습니다. 제일 더운 시기인 초복부터 말복까지 삼복 기간에 높은 기온이 30도에 이르는 날이 거의 없거나 며칠 안 됩니다. 이런 지역은 선풍기만 돌려도 여름을 별로 덥지 않게 보낼 수 있습니다. 밤에 잠들기도 불편하지 않고요.

하지만 평양이나 평성, 사리원, 해주, 개성 등 남부 지역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 지역은 한국의 서울과 기온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평양의 경우 4월 초가 되면 개나리와 살구꽃 등이 피는데 서울에서 꽃이 피는 시기와 거의 차이 없습니다. 여름 날씨도 마찬가지입니다.

7~8월에 평양을 비롯한 북한 남부 지역은 무척 덥습니다. 과거에는 아무리 더워도 어쩔 수 없어 선풍기로 더위를 달랬지만 몇 년 전부터 냉풍기가 보급되면서 간부와 돈 있는 사람들의 필수 품목이 됐습니다.

평양 도심의 김일성광장 주변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되어 있다.
평양 도심의 김일성광장 주변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되어 있다. 평양 도심의 김일성광장 주변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되어 있다. (AP)

평양 아파트 120여 가구 중 10 가구 에어컨 설치

하지만 보급률은 아직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자기가 사는 아파트에 120여 가구가 사는데 냉풍기가 있는 집은 10가구 정도 된다고 합니다. 또 평양 출신 탈북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10년 전인 2015년까지만 해도 냉풍기는 중요 국가기관과 높은 간부 사택에나 설치되어 있었지, 일반 주민 가정에는 하나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현재 북한에서 냉풍기 보급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냉풍기가 있으면 아무리 더워도 걱정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냉풍기를 파는 곳도 있는 만큼 돈 있는 집들은 어떻게 하나 냉풍기를 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가격이 600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물품인 만큼 일반 가정에서 갖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전기자전거는 평양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 꽤 빠르게 보급되는 상황입니다.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전기자전거 역시 평양에서 10년 전에는 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평양은 물론 지방에서도 자전거가 없으면 정말 불편합니다. 현재 북한 지방의 경우 성인 거의 모두가 자전거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집은 성인 수만큼 자전거가 있습니다. 상시 발을 굴러야 움직이는 자전거보다 속도가 빠르며 전혀 힘을 쓰지 않아도 전기 힘을 이용해 움직이는 전기자전거는 그 인기가 대단합니다.

전기 자전거 보급을 막는 장벽은 가격과 도둑

하지만 소식통들은 전국적인 전기자전거 보급률은 아직 두 자릿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008년 북한에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후 누구나 휴대전화를 구입하기 위해 애쓰던 것처럼 전기자전거가 유행되고 있긴 하지만 휴대전화처럼 빠르게 보급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휴대전화는 대신할 물품이 없을 정도로 활용도도 높고 편의성도 크지만 전기자전거를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특히 몇백 달러의 돈을 지불할 여력이 못 된다면 좀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일반 자전거를 타면 됩니다.

전기자전거의 가격은 300~600달러에 달합니다. 300달러면 북한에서 쌀 650kg, 600달러면 1톤 300kg의 쌀을 살 수 있는데 쌀 650kg이면 3~4명 식구를 가진 가정에서 1년 넘게 먹을 식량입니다.

또 전기자전거는 도둑맞을 우려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자전거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남이 자전거에 앉기만 하면 그 자전거는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자전거는 타고 달아나면 끝이고 또 도둑질해 팔면 꽤 큰 돈이 됩니다. 이렇게 전기자전거 도둑이 많은 것도 보급률이 빠르게 늘지 않는 이유로 보입니다.

2018년 7월, 남성들이 전기 자전거를 밀며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평양 전기 자전거 2018년 7월, 남성들이 전기 자전거를 밀며 평양 거리를 걷고 있다.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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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저희가 확인한 자료 사진을 보면 평양 에어컨은 엘지전자 제품이 많아 보입니다. 요즘은 에어컨, 전기 자전거까지 모두 중국 수입으로 봐야겠죠? 또 전기 자전거, 에어컨 모두 전기를 사용하지 않습니까? 이런 제품이 사용되는 걸 보면 전기 사정 약간의 호전이 있을 것으로 봐도 될까요.

안창규 기자 : 말씀대로 북한은 냉풍기와 전기자전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해 모두 중국에서 들어옵니다.

엘지 냉풍기를 설치한 모습이 많이 찍힌 것을 보면 북한 주민들도 한국산 삼성이나 엘지 제품이 좋다는 것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엘지 등 한국산 냉풍기는 과거에 들어온 것이고 최근 외화 상점 등에서 판매되는 건 다 중국산입니다.

김정은이 등장한 후 북한에 확산되는 한류를 비롯한 한국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각종 단속과 통제를 강화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해 한국 상표가 붙거나 한글이 쓰여진 일체 한국 물품 유입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산 냉풍기가 아무리 좋아도 누구든 절대 들여갈 수 없습니다.

북한에 냉풍기와 전기자전거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전기 사정이 괜찮아진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소식통들에 의하면 현재 지방, 특히 농촌 지역의 전력 공급은 과거보다 나아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어렵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요 공사가 많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평양시 5만 세대 주택 건설, 20개 시 군 지방공업공장 건설 등 당국이 중시하는 건설 현장, 그리고 이와 관련한 물자를 생산하는 석회석광산, 시멘트공장 등에 전기가 공급됩니다.

최근 몇 년간 평양과 지방에 주택과 공장이 많이 건설되었지만 어디에도 큰 발전소가 건설되었다는 보도는 없습니다. 결국 전체적인 전력량은 전혀 증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분야에 전력이 집중 공급되고 있는 건데 그만큼 다른 한쪽에는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게 됩니다.

북한은 오래전에 이미 공장 기업소에 공급하는 전력망과 주민 지역에 공급하는 전력망을 따로 구성했습니다.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차하면 주민 지역에 가는 전력을 차단해 공업 부문에 전력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전기가 부족해도 에어컨 사용 가능한 이유?

그럼에도 북한에 냉풍기를 설치한 집이 늘고 있는 건 냉풍기가 여름 한 철에만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수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에는 수력에 의한 발전량이 많이 지방 주민 지역에도 전기가 꽤 공급됩니다.

수도 평양은 여름에 하루 15시간 정도는 전기가 공급되며 지방도 대도시의 경우 농촌 지역에 비해 전기가 꽤 공급됩니다. 그런 만큼 평양이나 큰 도시에서 여름 한철에는 냉풍기 사용에 필요한 전기 보장이 어느 정도 용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북한 당국이 겨울에 주로 사용하는 전열기, 전기밥솥 등의 사용을 강하게 통제하지만 냉풍기 보급은 어느 정도 묵인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 : 에어컨의 가격은 쌀 1톤에 맞먹습니다. 에어컨은 “내가 돈이 많다”는 걸 알려도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주요 사용자층일 테니 그런 계층이 늘었다는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반면에 오토바이보다는 전기 자전거는 주목 받지 않아 판매가 늘어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시장의 변화가 보여주는 북한 사회 계층은 변화는 무엇일까요?

안창규 기자 : 흔히 북한 주민들이 돈이 많거나 남보다 잘사는 것을 숨기려 하지만 일부 경우 내가 남보다 잘산다는 것을 과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보다 특별히 잘살거나 돈을 물 쓰듯 해 당국의 감시나 안 좋은 시선을 받는 것은 간부 가정의 경우 절대 금물이지만 일반 주민은 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이는 시장화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시장 장사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도 20년이 지났습니다. 일반 주민의 경우 식량과 생필품 등 국가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같습니다. 그런데 옆집은 쌀 걱정 없이 괜찮게 사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내 탓이며 부끄러운 일입니다.

중요한 건 냉풍기나 전기자전거는 보통 돈주들이 가지고 있는 오토바이나 피아노처럼 몇천 달러에 달하는 고가의 물품이 아닙니다. 600달러면 북한에서 제일 좋은 핸드폰 가격 수준입니다. 즉 냉풍기나 전기자전거를 탄다고 당국의 감시를 받거나 남들이 돈이 어디서 났나 하고 색안경을 쓰고 볼 정도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북한이 시종 평등을 강조해왔지만 경제난 이후 빈부격차가 극심해졌습니다.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집도 많지만 비싼 돼지고기도 척척 사 먹는 가정도 적지 않습니다. 경제난 초기부터 장사에 뛰어들어 장사 곬이 잡힌 집은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습니다.

특히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처럼 남보다 잘사는 것은 숨기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집에 먹을 식량이 떨어졌다고 노동당이나 인민위원회가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집단주의는 빈말이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당국의 사상 교육과 통제 강화에도 북한에서 돈과 물질에 대한 욕구는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미 당국이 중시하는 사상적 이념이나 집단주의 가치보다는 돈과 물질적 풍요,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일부 청년들이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보다 장사를 잘해 돈을 버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며, 여성들이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것도 돈이나 장사를 잘하는가 하는 것이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남보다 잘사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으로 되는 상황입니다.

2017년 2월, 한 남성이 평양 시내에서 LG 로고가 부착된 에어컨 실외기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17년 2월, 한 남성이 평양 시내에서 LG 로고가 부착된 에어컨 실외기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2017년 2월, 한 남성이 평양 시내에서 LG 로고가 부착된 에어컨 실외기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AFP)

에어컨과 전기자전거, 제2의 휴대전화 될 수 있을까

진행자 : 손전화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말 일부 계층만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보편화되면서 주민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에어컨, 전기 자전거는 보편화될 수 있을까요? 특히 전기 자전거 같은 경우엔 보급되면 교통 수단이 많지 않은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안창규 기자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기자전거가 손전화기처럼 빠른 속도로 전국에 보편화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휴대전화 보급 초기 북한 청년들, 주민들 누구나 가지고 싶은 물건 1순위는 핸드폰이었습니다.

북한 관련 자료를 보면 휴대전화 보급률이 600만 대다, 700만 대다 라는 주장이 있는데 700만대가 맞다면 북한 인구 4명당 1명 이상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됩니다. 유선 전화기 보급률은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북한이 유선 전화기 시대를 뛰어넘어 무선 전화 즉 모바일 시대를 맞이한 것인데 그만큼 휴대폰은 북한에서 대인기였습니다. 유선전화기도 없었던 상황에서 항상 몸에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낼 수 있으며,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휴대전화가 등장한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의 신기루였고 혁명이나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나 돈을 모아 휴대폰을 사려는 것이 당시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었고 그래서 보급율이 빨랐습니다. 하지만 전기자전거가 휴대폰만큼 혁신적인 제품이 아닙니다.

전기자전거를 사려면 휴대폰을 사는 것과 맞먹는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만한 효과는 없습니다. 전기자전거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먼 거리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돈이 있거나 생활이 풍족하지 않다면 큰돈을 기꺼이 지불할 만한 유인이 없는 겁니다.

냉풍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없어 아무리 더워도 선풍기로 만족할 가정이 태반입니다.

향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괜찮아진다면, 여유 자금이 생긴다면 누구나 구입하려 할 건 분명합니다. 일반 주민이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자가용차나 오토바이를 살 정도는 아니지만 전기자전거나 냉풍기는 살 수 있으니까요.

교통이 열악한 북한 지방 주민들이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집에 냉풍기를 설치해 더위 걱정 없이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진행자 : 휴대전화, 노트컴, 냉풍기, 전기자전거... 없어도 분명히 잘 살았죠. 그렇지만 그런 것을 이용할 수 있었을 때 얼마나 편하고 풍요롭고 달라질 수 있는지, 그런 경험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