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목욕탕은 목욕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찾는 사람들이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죠. 이번에 양강도 혜산에 새로 생긴 목욕탕은 어떨까요? 자세한 소식,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의 ‘은하무역’ 양강도 사무소가 지난 4월 말, 혜산시답사숙영소의 사용하지 않는 영화관을 목욕탕으로 개조했는데 예약을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갈 정도로 성황이라고 합니다. 문 기자, 다른 목욕탕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어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겁니까?
문성휘 기자: 네, 여기에 대해 잘 이해하자면 우선 북한의 역사, 대중 목욕탕의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늘 ‘백두의 혁명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항일 빨치산이 창조한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 배운다며 해마다 여름철인 7월부터 8월까지, 또 겨울철인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백두산지구 답사행군’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지구 답사행군’은 양강도 소재지인 혜산시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북한은 혜산시를 ‘혁명전적지 관문도시, 국경도시’로 부르는데요.
수용 규모 10명에 불과했던 지방 대중목욕탕도 사라져
이런 혁명전적지 관문 도시, 국경도시인 혜산시는 변변한 대중목욕탕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비단 혜산시뿐 아니고, 평양시를 제외한 북한의 지방 도시들은 모두 마찬가지인데요. 그동안 북한의 무역기관들과 개인들이 돈벌이를 위해 목욕 시설들을 운영했으나 수용 규모는 기껏해야 10명 안팎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목욕시설도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데요. 코로나 사태로 무역이 중단되면서 중국산 액화가스(LPG)를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지방에 있는 살림집들에 목욕시설이 아예 없다는 것입니다. 간부들조차 목욕을 할 곳을 찾지 못한다는 거죠.
이런 형편이었는데 은하무역 양강도 사무소가 시 답사숙영소의 영화관을 개조해 대중 목욕탕으로 만들었다, 중국산 자재들을 들여와 체력단련실과 커피점, 식당까지 갖춘 아주 고급스러운 목욕탕을 만들었다고 하니 힘 있는 간부들과 돈 있는 부자들이 몰리기 마련이라는 거죠.

진행자: 고급스럽게 지었다면 이용 가격도 꽤 나가겠네요?
문성휘 기자: 네. 가격은 상당히 비쌉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있었던 소규모 목욕탕들의 경우 1인당 미화 2달러, 중국 인민폐로 12위안이었다고 합니다. 개별탕이나 부부탕의 경우 1인당 5달러, 중국 인민폐로 32위안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은하무역에서 만든 목욕탕은 한번에 3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중탕인 데도 1인당 5달러, 중국 인민폐 32위안으로 알려졌습니다. 목욕을 한 후 체력단련실과 식당, 커피점까지 이용하려면 15달러 정도가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줄지 않고 있는 건 이곳 목욕탕을 통해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합니다. 힘 있는 간부들과 돈 많은 부자들이 모여 불법적인 청탁이나 뇌물을 약속하기에 좋은 장소로 입소문이 나면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거죠.
진행자: 특이한 점은 목욕탕 입구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겁니다. 목욕탕에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들어갔는지 신원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인 거 같은데, 목욕탕에서 그동안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았던 겁니까?
목욕탕에서 퇴폐 행위 벌어지는 이유
문성휘 기자: 북한에서 개인들이 운영하는 한증탕, 무역기관들이 운영하는 목욕탕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08년경이었습니다. 2012년에 권력을 잡은 김정은은 초기 간부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 외화를 마음대로 쓰도록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평양에 있는 ‘해맞이 식당’이라든지, ‘류경관’과 같은 편의시설들은 공공연히 달러와 유로, 중국인민폐를 받으며 운영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지방에도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찻집과 당구장, 오락실을 비롯해 외화를 받는 주점과 편의시설, 오락시설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편의시설, 오락시설들에서 온갖 퇴폐행위들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지방의 식당들은 일부러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는 칸막이를 만들고 남녀가 합석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형편이었는데요.
장성택 처형 후인 2014년부터 북한은 지방의 식당들에 있는 칸막이를 모두 없애고, 퇴폐적인 오락실과 편의시설들을 대대적으로 철거했습니다. 결국 퇴폐 행위를 할 수 있는 시설들은 지방에 있는 목욕탕들 밖에 없었다는 거죠. 북한은 퇴폐 행위 근절을 구실로 2019년 말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한증탕’, 무역기관들이 운영하던 ‘부부탕’과 같은 목욕시설들도 모두 철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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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당국이 대대적으로 퇴폐 행위 근절에 나섰음에도 최근에도 목욕탕에서 또 사건이 있었죠?
목욕탕 앞 감시 카메라로 퇴폐 행위 근절될까
문성휘 기자: 맞습니다. 202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고급중학교 학생들이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면서 마약을 흡입하고, 집단 성관계까지 가져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올해 2월에는 김정은이 직접 온천군당 간부들의 처벌을 지시하는 등 여전히 목욕시설을 둘러싼 퇴폐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평양시를 제외한 지방의 목욕시설들은 매춘 시설들이었다는 건데, 주민들은 목욕시설에서의 퇴폐 행위를 응당하게 여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양강도에 들어선 목욕탕은 입구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훗날이라도 문제가 될 경우 감시카메라로 기록된 영상을 통해 퇴폐 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하겠다는 거죠. 이렇게 건전한 목욕시설을 갖추니 보위부나 안전부의 감시도 덜 하고, 그러니 간부들과 돈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모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어쨌든 그동안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북한의 목욕시설에서 있었다는 건데, 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중 목욕탕에서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퇴폐 행위 대신 비리의 온상지가 된 혜산시 목욕탕
문성휘 기자: 네, 그동안 북한의 목욕시설들은 많은 사람들이 찾기는 하나, 한번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는 시설들이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목욕시설들은 기껏해야 4~5명, 최대 10명 미만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설들이었다고 합니다. 국가가 지방에 큰 규모의 대중 목욕탕을 건설해 주어야 하는데, 이런 시설들은 아예 관심이 없으니 돈벌이를 위해 개인이나 무역기관들이 자체로 목욕시설들을 만들었다는 거죠. 당연히 자금문제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기다 국가 토지 이용 문제, 시설 허가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소규모 시설밖에 갖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목욕시설을 국가가 아닌 개인과 무역기관이 운영하다 보니 당연히 값도 비쌌고요. 수요자가 많다 해도 사실상 일반 주민들은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의 일반 주민들 속에서 목욕시설은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로 인식되고 있고요. 이번에 혜산시에 개장했다는 목욕탕만 봐도 주민들은 “때를 벗기는 장소가 아닌 돈을 쳐 바르는 장소”라고 비난하고 있다는 겁니다. 목욕탕 이용료가 너무도 비싸 힘 있는 간부나 돈 많은 부자들을 위한 장소, 일반 주민들은 이용을 꿈도 꿀 수 없는 시설이라는 거죠. 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목욕탕에서의 퇴폐 행위는 근절될 지 몰라도 불법 청탁과 뇌물 행위를 조장하는 장소로 전락할 가능성은 높아진 셈입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