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수년째 공사 멈춘 ‘평양 소규모 아파트’의 속사정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진행자 : 올해는 평양시 5만가구 주택 건설의 마지막 해입니다. 군대는 물론 전국의 돌격대가 5년 동안 동원돼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는 가운데 그늘도 있습니다. 건설 계획에 포함되지 못한 일부 소규모 건설은 수년째 공사가 멈춰져 있다는 소식입니다. 취재 기자와 함께 관련 소식, 알아봅니다. 안창규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우선 순위 밀리는 소규모 아파트 건설...피해는 주민에게

진행자 : 일부 소규모 아파트 건설이 진척 없는 이유는 뭘까요. 남한식으로 생각해보면 소규모 아파트는 돈주 등 개인이 짓는 것이라 혹시 우선 순위에서 밀리나 하는 짐작할 수 있는데, 어떻습니까?

안창규 기자 :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낡은 아파트나 밀집돼 있는 오래된 단층 주택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재건축은 국가적 사업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시나 구역 차원, 혹은 개인 돈주가 주체가 되어 추진하기도 합니다.

평양 시내 주요 거리 양 옆과 주변의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은 평양시와 각 구역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며 이외 개별 기업이 종업원 주택 해결 등의 목적으로 건설하거나 또 돈주들이 당국의 건설 허가를 받아 건설하는 소규모 아파트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규모 건설은 인력, 자재 보장, 노력 지원 등에서 후순위에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관심을 갖는 송신지구나 화성지구처럼 중앙이 직접 계획하고 추진하는 대규모 건설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국가적 사업인 류경호텔 주변 아파트 재건축은 2019년부터 시작됐고 전승기념관 주변 아파트 재건축은 2021년에 시작했으나 아직도 완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021년 같은 시기에 시작된 평양시 5만세대 주택 건설 중 현재 4만 세대가 완공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국내산 시멘트 외 건설 자재 모두 수급 어려워

진행자 : 역시 가장 문제는 자재 수급이라고 봐야할까요?

안창규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마감재 재고 등이 한계가 있어 5만 세대 새 주택 건설 외 재건축이나 소규모 아파트 건설까지 충분히 보급할 여력이 안 됩니다. 그러니 핵심 대상인 화성 지구 주택 건설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시멘트는 중앙이 직접 운영하는 상원시멘트공장과 각 지방의 시멘트 공장을 통해 충당할 수 있지만 목재, 타일, 유리, 도장재 등이 특히 부족하다고 합니다.

우선 순위에 밀리고 자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건설이 멈춘 아파트들이 평양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그 숫자를 알 순 없습니다만 오랜 낡은 거리나 아파트를 재건축해 묵은 때를 벗기는 사업은 2003년 완료된 평양역에서 대극장까지 구간의 영광거리 개보수를 시작으로 꾸준히 진행돼 왔습니다.

영광거리는 물론이고 평양 시내 중심부 곳곳에 1950~60년대에 건설된 5~8층짜리 건물이 수두룩합니다. 전후 부족한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건설된 아파트인데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지 않았으니 건물의 나이가 50~60살은 족히 되는 셈입니다.

지금 건설이 멈춘 소규모 아파트들은 대부분 골조 공사만 오래 전에 마무리가 되고 내부 마감 공사, 주변 조경 조성 등이 미완성인 상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평양 소식통은 모란봉 구역 북새동에 있는 한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8층짜리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15층짜리 아파트를 짓는데 골조 공사가 끝난 지 2년이 되도록 내부 공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해당 아파트가 도로 옆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밖에서 보이는 외장 공사만 마무리하고 내부 공사는 미처 완료하지 못해 사람들이 들어와 살 수는 없는 상태인데, 소식통은 평양에 이런 아파트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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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평양시내 아파트 건설 현장.
사진은 평양시내 아파트 건설 현장. (Reuters)

진행자 : 아파트 건설이 기약 없이 늦어지면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입주를 기다리는 주민들일 것 같은데요.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안창규 기자 : 당연히 아파트 건설이 늦어지면 가장 안타까운 건 새 주택이 완공되기를 기다리는 원주민들입니다. 한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 다른 북한에서 철거 세대에게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 궁금한 분들이 많으실 건데 북한도 철거된 원주민들에게 새 집을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새 집이 건설되는 기간에 대한 대책은 없습니다. 건설 기간 살 집 마련은 오롯이 본인 몫으로 국가가 전세 자금 대출과 같은 자금을 지원해주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보통 원주민들은 새 아파트가 지어질 때까지 부모나 자식, 친척 집에 들어가가 동거합니다. 그럴 상황이 못 되는 사람들은 직장 혹은 동사무소 같은 데서 동거할 집을 연결해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극히 드뭅니다. 결국 본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정작 새 주택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보통 아파트를 건설한 기관이나 돈주들이 좋은 층수를 다 차지하고 원주민에게는 1층, 2층 같은 저층이나 맨 꼭대기 고층, 그리고 방 수가 적은 작은 면적의 집을 줍니다.

북한 주민들은 도둑 때문에 저층, 특히 1층을 별로 선호하지 않습니다. 또 고층은 승강기가 고장 나거나 자주 정전이 되는 등 제대로 다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오르내리는데 불편하며 특히 겨울에 김치, 석탄, 화목 등을 운반하기 힘들어 선호하지 않습니다.

원주민에게 집을 안 줄 수 없으니 제일 안좋은 집, 남들이 기피하는 집을 주는 겁니다. 또 내부 미장, 부엌, 화장실, 등이 다 완비되지 않은 주택을 주고 자체로 꾸리라고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럼에도 방이 작고 낡은 단층 주택에서 살던 일반 주민이 새로 건설한 아파트 집에서 사는 건 하나의 큰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간혹 원주민들에게 건설 물자 비용을 일부 부담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과거 집보다 좋은 새 아파트 집을 가지게 된다는 희망 하나로 3년이든 5년이든 기다리는 겁니다.

평양에서도 계층 나누는 ‘새 아파트’

진행자 : 워낙 평양 살림집 건설을 국가에서 크게 떠들다보니, 평양 사람들은 다들 새 아파트에 사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이런 소식을 들어보면 소외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에서는 평양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평양 안에서도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나뉘고, 부러움과 실망감이 교차하면서 그 괴리도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창규 기자 : 그렇습니다. 한국과 달리 북한은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매우 심합니다. 평양 내에서도 지역간, 신분에 따른 차이가 보통이 아닙니다.

서울처럼 평양시내 중심에 대동강이 흐릅니다. 이 대동강을 경계로 강 동쪽은 동평양, 강 서쪽은 서평양이라고 부릅니다. 서울에서 강남, 강북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평양은 중심구역과 주변구역으로 나뉩니다. 중심구역은 중구역, 모란봉구역, 보통강구역, 평천구역 등 말 그대로 시내 중심부 지역입니다. 주변구역에는 사동구역, 낙랑구역, 형제산구역, 용성구역 등이 속합니다.

우선 동평양보다 서평양이 생활하기 좋다고 합니다. 이유는 동평양은 아직 지하철이 연결되지 않아 버스만 다니다 보니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중심구역에는 아파트가 주를 이루지만 주변구역에는 도로 옆에만 아파트가 있고 안쪽에는 단층 집이 많습니다. 대중교통도 불편하고요. 더욱이 주변구역은 명절 공급, 식량 공급에서 중심구역보다 못합니다.

문제는 중심구역에도 낡고 오래된 단층집이 많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집무실과 주요 중앙기관이 밀집해 있는 중구역에도 뒷골목에 아직 단층 집이 있으며 모란봉구역, 대성구역, 평천구역, 동대원구역, 선교구역 등 중심지역에도 낡고 작은 단층 집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낙후한 지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낙후한 지역에 사는 사람 중엔 높은 간부 같은 권력층은 없습니다.

주변 지역은 난방과 전기 공급도 중심 지역보다 못합니다. 2000년대 후반 평양에 이런 일화가 있었습니다. 주변 지역 주민들이 겨울에 시내 중심인 중구역 쪽을 바라보며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노래를 불렀고, 중구역 사람들은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노래를 부르며 밤을 보낸다는 내용입니다.

춥고 어두운 집에서 밤을 보내는 주변지역 주민들은 지도자인 김정일이 자신들이 겪는 어려운 사정을 알아 달라는 의미에서 김정은에 대한 노래를 부른 것이고, 난방과 전기가 잘 공급돼 불 밝고 따뜻한 집에서 사는 중구역 주민들은 시간이 가는 게 아쉽다는 의미에서 밤이 지나가지 말라는 노래를 부른다는 겁니다.

이 웃지 못할 일화가 평양의 지역간, 계층간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지난 24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지난 24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Reuters)

평양 5만 가구 주택건설, 평양 주민들 삶 어떻게 바꿨나?

진행자 : 평양시 5만가구 주택 건설의 마지막 해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지난 2월 화성지구 4단계 1만 세대 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방대한 계획이… 에누리없이 관철됐다”고 선언했습니다. 평양 5만 가구 건설이 평양 주민들의 삶은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했을 것으로 보십니까. 또 이 건설이 마무리된 뒤 2026년 이후 주택 건설 정책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요.

안창규 기자 : 평양에 5만 가구의 새 주택이 다 완공되면 긴장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정한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평양에 거리가 몇 개 새로 건설됐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되는 2,580여 세대 규모의 미래과학자거리와 4,800여 세대 규모인 여명거리를 다 합쳐도 주택수가 1만 가구 못됩니다.

이에 비하면 송신지구와 화성지구에 건설된 5만세대는 굉장히 큰 수준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새 주택 건설이 부진했던 만큼 평양시 주택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도 5만 세대 건설이 끝나면 계속해서 새 거리 주택 건설을 추진할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인 이 건설 계획은 지난 2월 화성 지구 4단계 건설 착공식에 참석한 김정은이 직접 언급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현재 건설 중인 화성 지구와 인접한 대성구역을 거쳐 삼석구역까지 평양 동쪽에 위치한 강동 방향으로 새 거리를 계속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또 모란봉구역, 선교구역, 형제산구역 등에 있는 낙후 지역과 교외의 일부 지역에 대한 재건축도 시사했습니다.

5만 세대 건설로 새 주택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낡은 단층 주택이나 비좁은 집 혹은 집 없이 옥상이나 지하에 살았던 과거 삶에 비하면 상황이 좋아졌을 거라 봅니다. 이들과 그 가족을 비롯한 일부 평양 주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감정도 긍정적일 겁니다.

반면 이들과 달리 새 집과 관련 없이 올해까지 5년째 일요일과 야간에 주택 건설에 수시로 내몰려온 적지 않은 주민들은 건설에 지쳐 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친 후 건설 현장에 야간 돌격대로 지원 나가는데 일하러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일이 끝나 집에 올 때는 교통이 끊겨 걸어오기 일쑤였습니다.

많은 평양 주민들이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삼석구역까지 연결하는 새 거리 건설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삼석구역까지 건설될 거리는 송신지구, 화성지구에 비해 시내 중심에서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현재 평양시 주택 건설에 평양시민보다 군대와 각종 돌격대 등 지방 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동원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는 계속 이어질 평양시 주택 건설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겁니다.

진행자 : 누군가의 희망이 누군가의 고통이 되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준비된 소식 여기까집니다. 함께해 주신 안창규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에디터 :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