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은] 북한 당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생기는 일

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북한 당국이 근로자들의 월급을 인상하며 국가 계획을 완수한 공장이나 기업소에 배급과 월급을 보장하겠다고 해 놓고, 현재 간부들의 월급이 밀려 있을 정도로 약속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문성휘 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문 기자, 당국이 주민들에게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김정은의 거짓말

문성휘 기자: 사실상‘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당국은 지금껏 주민들과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약속을 지킬 의지도, 약속을 지킬 능력도 없으면서 권력 유지를 위해 무한히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 거죠. 근로자들의 월급과 배급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당국이 양곡판매소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22년입니다. 북한 당국은 양곡판매소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주민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국가생산계획을 완수하면 나라에서 배급도 주고, 월급도 주는데 현재 국가생산계획을 완수하는 공장, 기업소가 없다. 국가생산계획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배급과 월급을 못 받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런데 배급과 월급을 못 받으니까 주민들의 생활이 너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 양곡판매소를 만들었다. 배급과 월급을 못 받는 근로자들에게 나라에서 혜택을 베풀어 장마당보다 30% 싸게 식량을 팔아주는 거다” 이렇게 마치도 양곡판매소가 주민들에게 베푸는 큰 혜택인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국가가 원료, 자재, 심지어 전기조차 보장을 못해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을 못하는데 그런 사정은 쏙 빼버리고 마치 근로자들의 잘못으로 생산을 못하는 것처럼 설명을 했다는 거죠. 여기다 지난해 1월, 기존의 2천5백원(0.2 달러)이던 근로자들의 기본 월급을 단번에 열 배도 넘는 3만원(1.2 달러)으로 올려버렸습니다. 아무런 물질적 담보도, 경제적 타산도 없이 덜컥 월급만 올려버린 거죠. 월급을 올리니 물가가 오르고, 장마당을 통해 순환되던 북한 돈은 장마당에서 아예 퇴출되는 수준을 밟게 된 것입니다. 북한 화폐가 돌지 못하고, 공장, 기업소들이 멎어 있으니 배급도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월급을 인상할 당시 북한 당국이 근로자들에게 한 약속, “국가계획을 완수하면 월급과 배급을 보장한다”, 북한이 이런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 그러니까 거짓말을 했던 거죠.

2016년 5월, 평양의 326전선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6년 5월, 평양의 326전선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6년 5월, 평양의 326전선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Reuters)

국가 지원 없이 국가계획 완수하는 기업소와 농장들은 따로 있다?

진행자: 주지도 못할 월급을 인상해 물가만 뛰어오르게 만들었다는 얘긴데요. 국가가 원료와 자재, 전기마저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 형편에도 국가계획을 완수한 기업소들이 있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국가계획을 완수한 기업소들은 어떤 곳이고,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 계획을 완수한 건가요?

문성휘 기자: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에서 국가계획을 완수한 기업소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은 가을철 현물 분배를 주는 농장의 모습을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현물 분배를 주는 농장들이 국가 알곡생산계획, 한마디로 국가계획을 완수한 농장들입니다. 북한은 식량 사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해마다 국가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농장들이 많습니다. 국가계획을 완수한 단위가 농업 부문에 많은 이유는 농사가 특별히 원료, 자재나 전기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농사를 잘 짓자면 비료도 있어야 하고, 농약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비료나 농약이 부족하다고 해도 날씨만 잘 맞추어 주면 농작물은 어지간히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공업부문에도 농장들과 비슷한 분야가 많습니다. 광산이나 탄광, 임산과 같은 기업소들, 시멘트 공장이나 양어사업소, 고려약관리소, 시, 군 제약공장과 같은 기업소들이 그러한데요. 이번 저의 기사에서 언급된 혜산목재일용품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혜산목재일용품공장은 국가가 대주는 통나무로 판자와 각목, 합판과 같은 제품들, 한마디로 나무를 이용해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산림자원이 고갈되면서 북한은 목재일용품공장에 통나무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공장은 외화벌이 기관들로부터 통나무를 넘겨받아 판자나 각자로 가공을 해주고 있습니다. 또 통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로 이쑤시개, 젓가락, 수저와 같은 생필품들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는 건데요. 이런 식으로 북한엔 국가가 아무 것도 대주지 않아도 자체로 원료, 자재를 찾아 국가계획을 완수하는 공장, 기업소들이 꽤나 있습니다.

양강도만 보더라도 올해 상반기 혜산청년광산과 김정숙군 용하광산, 백암동발목사업소, 혜산시멘트공장과 혜산기초식품공장이 국가계획을 앞당겨 완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중에 국가로부터 원료, 자재를 받아서 생산계획을 앞당겨 완수한 공장은 혜산기초식품공장 하나뿐입니다. 나머지 공장, 기업소들은 국가의 도움 없이 자체로 생산계획을 앞당겨 완수했다는 건데요. 위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이들 공장, 기업소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특별한 원료나 자재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혜산청년광산과 용하광산은 땅속에서 구리정광, 중석을 캐내는 광산들입니다. 폭약과 전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광물을 캐낼 수 있다는 거죠. 혜산청년광산의 경우 구리 정광을 중국에 수출하는 대신 전기를 중국에서 공급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정전이 될 걱정도 없다는 거죠. 그 외 혜산시멘트공장은 혜산청년광산에서 구리 광석을 캐고 남은 버력(잡돌)을 원료로 사용합니다. 버력에다 석회석을 섞어 시멘트를 만들고 있어 전기만 조금 보장되면 얼마든지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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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수수가공공장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수수가공공장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수수가공공장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Reuters)

당국이 기업소에 자재나 원료만 공급해도 성과 커져

진행자: 결국 국가가 제공해주는 게 없어도 자생할 수 있는 부문의 기업소들만 국가계획을 완수할 수 있었다는 거네요. 하지만 과거 혜산목재일용품공장이나 지금의 혜산기초식품공장처럼 국가가 자재나 원료만이라도 제공해주면 성과가 커지지 않겠습니까?

문성휘 기자: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 상반기 양강도에서 국가로부터 원료, 자재를 받아서 생산계획을 앞당겨 완수한 기업소는 혜산기초식품공장인데요. 혜산기초식품공장은 식량을 가지고 여러가지 먹을거리를 만드는 공장입니다. 간장, 된장, 식용유 생산이 기본인데요. 이 공장에서 생산된 간장, 된장은 양강도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들, 돌격대, 고아 양육시설인 혜산중등학원과 육아원들에 공급됩니다. 국가가 필수적으로 돌보아야 할 단위들에 간장과 된장 같은 기초식품을 보장하는 공장이니까 당연히 원료인 식량을 우선적으로 공급받기 마련이라는 거죠. 그 외 공장기업소들은 생산을 못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국가생산계획을 완수했다고 언급한 공장, 기업소는 양강도 전체 공장, 기업소들 중에 1%도 채 안 되고 있습니다. 양강도엔 약 4천여 개의 공장, 기업소, 농장들이 있고, 양강도의 소재지인 혜산시에만 300여 개의 공장, 기업소가 있습니다. 이 많은 공장, 기업소들에게 당국이 원료나 자재만이라도 공급을 해준다면 북한의 경제 상황은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진행자: 네. 그런데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네요. 기사를 보면 소식통들은 당국이 약속대로 근로자들에게 배급과 월급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 하반기 국가 생산 실적은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얘기는 생산 실적을 열심히 채워도 받을 걸 못 받으니 근로자들이 지금처럼 일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보면 될까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25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25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25공장’을 시찰하는 모습. (Reuters)

“먹을 알이 있는 기업소”

문성휘 기자: 네, 그렇습니다. 북한의 근로자들은 당국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장, 기업소들에 출근을 합니다. 생산물이 없는 공장, 기업소들은 출근을 해서 농촌지원을 나가든지, 철도나 도로, 요즘과 같은 장마철에는 강하천 정리나 도로 보수와 같은 작업에 동원되는데요. 생산을 하는 공장, 기업소의 노동자들도 당국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출근을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각이나 결인이 매우 적은 공장, 기업소들이 있습니다. 이런 공장, 기업소들을 북한에서는 소위 “먹을 알이 있는 기업소”라고 말을 합니다. 이게 단순히 배급이나 월급 때문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배급은 성인 1인당 하루 450g입니다. 한달 일해도 겨우 13.5kg입니다. 근로자들의 월급인 3만원으로는 쌀 2kg밖에 사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이 출근을 부지런히 할 땐 공장, 기업소로부터 배급이나 월급을 뛰어넘는 무언가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기사에서 언급했던 혜산목재일용품공장이 그러한데요. 이곳 노동자들은 외화벌이 기관들에서 주문한 여러 가지 통나무를 판자나 각목으로 가공해 줍니다. 이 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로 나무젓가락과 같은 생필품을 만들어 국가계획을 수행하고 있고요. 더 중요하게는 통나무를 가공할 때 생기는 톱밥을 노동자들이 땔감으로 챙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 식량 다음으로 절실한 건 땔감입니다. 특히 농촌이 아닌 도시 주민들의 땔감 부담은 상상 이상인데요.

“부엌 아궁이가 이밥을 먹는다”는 북한의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그만큼 땔감의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인데요. 그렇게 귀한 땔감을 공짜로 챙길 수 있으니 노동자들이 출근을 안 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농민이나 광산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짓는 대신 가을철 식량을 현물로 받습니다. 농사는 넓은 면적에서 일을 하는 거니까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출근만 제대로 할 뿐 정작 논밭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농민입니다.

북한 당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생기는 일

진행자: 일한 만큼 받는 게 없다면 그럴 만 하죠. 그럼 광산이나 탄광 근로자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문성휘 기자: 북한은 광산과 탄광의 노동자들에게 월급과 식량을 꼬박꼬박 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중소 탄광의 경우 배급과 월급이 없는데 대신 노동자들이 땔감인 석탄을 챙길 수 있습니다. 북한의 광산들은 대부분 캐어낸 광물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혜산청년광산의 경우 광물을 수출한 대가로 사탕가루(설탕)와 식용유를 들여와 노동자들에게 배급과 월급 대신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들 이런 대가를 바라고 일을 하는데, 국가가 약속한 배급과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산 실적이 크게 낮아지는 거죠. 북한의 농사가 제대로 안 되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농민들이 출근만 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근로자들에게 약속된 배급과 월급을 주지 않게 되면 농민들 꼴이 나는 겁니다. 아침에 출근은 하는데 하루 종일 눈치만 보면서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거죠. 국가생산계획은 국가와 근로자들 간의 약속입니다. 국가는 배급과 월급을 보장하고 근로자들은 생산을 보장한다는 약속인 거죠. 그런데 국가가 약속한 배급과 월급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근로자들도 생산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원료, 자재가 없어 생산을 못하는 기업소들은 근로자들의 출근율이 50%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국가가 배급과 월급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생산을 하는 기업소의 출근율도 그런 꼴이 나는 겁니다. 출근한 근로자들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러면 국가가 그만큼 손해를 보기 마련이라는 거죠. 국가생산계획을 완수한 공장, 기업소의 근로자들에게 배급과 월급을 보장한다던 북한 당국의 약속, 이제는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북한 당국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