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개학 전 장마당에서 제일 안 팔리는 교과서는?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 장마당에 아무리 없는 게 없다지만 학교 교과서도 장마당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개학 전 이맘때 장마당 매대에 중고부터 새 책까지 학년별 교과서가 쭉 진열돼 있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북한에선 한국처럼 학교에서 무상으로 교과서를 주는 게 아니었습니까?

북한 주민들은 왜 장마당에서 교과서를 사나

손혜민 기자: 북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공산주의는 지나갔다!’ 무상으로 교과서를 공급받는다는 게 옛말이라는 의미인데요. 물론 무상 교육제도는 존재하므로 교육도서출판사가 해마다 출간하는 교과서가 전국의 학교들에 공급되기는 하지만 그 량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죠. 추정하기 어렵지만 121호 공장 가동 실태를 보면 이해되실 겁니다. 안주에 자리한 121호 공장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종이를 생산해 공급하는 단위입니다.

종이 원료인 통나무가 제때에 공급되지 않아 종이공장 생산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그러다 보니 노동신문 발간 숫자가 줄어들면서 ‘노동신문 배포 대상‘도 축소되었다고 내부 소식통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원래 북한에서는 노동당의 하부 말단 세포조직 비서들에게도 노동신문을 무료로 배포했었거든요. 세포비서들이 노동신문을 받으면 그것을 노동자들에게 독보회 방식으로 전달해 사상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지금은 그 수많은 세포비서들이 배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합니다.

대신 공장과 농장 등 생산 단위마다 노동신문 가판대를 설치하도록 했는데요. 노동신문 발간 부수를 대폭 줄였으나 누구나 쉽게 노동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접근 환경을 마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손전화 보유자가 수백만 명으로 증가하자 당국은 ‘노동신문 앱‘을 손전화에 설치했습니다. 노동신문 앱을 열면 매일신문을 볼 수 있는 건데요. 하지만 그 앱을 다운받으려면 돈을 내야 합니다. 재작년까지 북한 돈 월 5천원(0.22달러)이었지만 지난해 공장노동자 월급이 20배 이상 인상되면서 노동신문 앱도 두 배 올랐죠. 누가 거짓말 선전뿐인 노동신문을 사서 보겠나요.

진행자: 종이 생산이 여의치 않아 당국이 배포량도 줄인 거 같은데, 이제는 앱을 판매해 주민들에게 돈을 거둬들이려는 심산이네요.

사진은 평양 금성제1중학교의 개학 첫 날 풍경.
평양 금성제1중학교의 개학 첫 날 풍경 평양 금성제1중학교의 개학 첫 날 풍경 (연합)

상파지 상납량에 따라 달라지는 교과서 공급량

손혜민 기자: 그렇죠. 자재난으로 당의 나팔수 노동신문 발간과 배포 실태도 이 정도이니 학생들에게 공급되어야 할 교과서는 어떨지 가늠되실 겁니다. 발간 부수가 적은 교과서마저 평양 학교에 우선 공급하고, 나머지를 지방 학교에 차별 공급하는데요. 교과서 종이로 재활용할 수 있는 상파지를 얼마나 바쳤냐에 따라 공급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변소에서 사용할 휴지도 부족한데, 상파지가 어디 있겠나요. 장마당에서 사서 바쳐야 하거든요. 결국 국가에서 장마당 가격으로 교과서를 공급하는 셈이죠.

상파지를 돈을 주고 사서 학교에 바쳐도 몇 권 밖에 받지 못하니 학부모들은 그럴 바에 직접 장마당에서 교과서를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데요. 4월 초 새 학기를 맞으며 장마당 매대에 교과서 상품이 등장하는 배경입니다. 지금 북한 장마당에는 새 교과서와 낡은 교과서 모두 판매되고 있는데, 학부모의 재량에 따라 교과서 선택은 달라집니다. 돈이 좀 있는 부모라면 새 교과서를 사서 자녀에게 주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한 부모는 가격이 눅은 낡은 교과서를 사서 자녀에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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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교과서 하나만으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하네요. 돈이 없으면 교과서를 못 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장마당에서 판매되는 교과서도 10과목은 넘을 텐데, 교과목 별로도 잘 팔리는 게 있고, 안 팔리는 게 따로 있을까요?

장마당에서 가장 안 팔리는 교과서는?

북한의 ‘교육도서출판사’가 2013년도에 발행한 고급중학교 1학년용 ‘사회주의 도덕과 법’ 교과서. 미국이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북한에 사상 문화적 침투를 책동하고, 북한 체제와 지도자를 비방하는 매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위) 고급중학교 3학년 역사교과서에서도 자유아시아방송을 소개하고, 사회주의권 나라의 붕괴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주장하고 있다. (아래)
북한의 ‘교육도서출판사’가 2013년도에 발행한 고급중학교 1학년용 ‘사회주의 도덕과 법’ 교과서 북한의 ‘교육도서출판사’가 2013년도에 발행한 고급중학교 1학년용 ‘사회주의 도덕과 법’ 교과서 (아시아프레스)

손혜민 기자: 소학교를 본다면, 13과목이 있습니다. 여기서 체육 과목은 교과서가 없으니 12개 과목, 즉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숙, 김정은의 어린 시절, 사회주의 도덕, 수학, 국어, 자연, 음악무용, 도화공작, 영어, 정보기술 교과서인데요. 여기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과서는 기본 과목입니다. 어느 과목을 기본 과목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북한 당국과 주민이 다르게 인식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교육당국이 중시하는 기본 과목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숙, 김정은을 우상화 한 혁명역사입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키우는 학부모들이 중시하는 기본 과목은 우상화 과목이 아니라 수학과 영어, 정보기술 과목이죠. 이는 어떤 교육이 실효성이 있는지를 평가하는 동시에 우상화 교육을 비판하고 있는 인민 대중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장마당 매대에서 판매되는 교과서 가격도 다릅니다. 평안남도 성천군 장마당에서 3대 세습 지도자의 어린시절 새 교과서는 1개당 북한 돈 4천원(0.18달러), 헌 교과서는 2천원(0.09달러)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상화 교과서는 애초에 사려고도 하지 않는 학부모가 많아 가격 흥정도 쉽다고 합니다. 반면 수학과 영어, 정보기술 새 교과서는 1개당 1만원(0.4달러), 헌 교과서는 4천~5천원으로 두 배나 비싸지만, 수요자가 많아 가격 흥정을 할 수 없습니다.

진행자: 한국에선 학교마다 사용하는 교과서가 다르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 추가 등 개정도 곧잘 되기도 해서 낡은 교과서를 쓸 일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선 낡은 교과서를 판다고 하니, 사정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북한, 새 학년 시작과 함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북한, 새 학년 시작과 함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2018년 4월, 북한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며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Reuters)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 어린이를 돕자’ 70년대 교과서 지금도 그대로

손혜민 기자: 북한도 나름대로 교육 연구진과 교수진을 동원해 대학과 고급중학교 교과서 집필에 신경을 씁니다.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기초해 방향이 잡히지만 말이죠. 예를 들어 북한 사범대학 ‘심리학’ 교재는 구 소련의 국립교육원에서 발간한 교재를 그대로 번역해 사용해 왔지만, 지금은 아동발달심리 등이 도입되면서 교재 내용이 상당 부분 바뀌었습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교육제도가 개편되면서 소학교 5학년에 영어 과목이, 초-고급중학교에 기초기술과 정보기술 등 직업기술 관련 새로운 교과목이 도입되면서 교과서 집필에 상당 부분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해마다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는 등 집필 작업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년에 한번 바뀌면 잘 바뀌고, 어떤 교과서 내용은 수십 년 그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도 있는데요. 앞서 언급했듯이 김정은 시대 교육제도 개편으로 새 교과목이 도입되면서 2014년 북한의 교과서가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그대로입니다. 이젠 10년이 넘은 거죠.

제가 1970년대 소학교 국어시간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조선 어린이를 도와주자는 내용의‘내 동생‘이라는 수업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 지금도 소학교 국어 교과서에 있더라고요. 이러한 특성상 북한 학교에서는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쓰던 교과서를 바치도록 조직합니다. 교과서 내용은 그대로이니 10년이 지나도 교과서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행자: 교과서 내용이 잘 바뀌지 않는다면 장마당에서 지금 한철 장사로 안 팔린 건 다음에 다시 팔면 돼서 손해볼 일은 없겠네요.

손혜민 기자: 맞습니다. 봄철 새 학기를 맞으며 팔지 못한 교과서는 9월 가을 학기에도 팔 수 있고, 내년에도 팔 수 있습니다. 2023년부터 북한이 유치원부터 소학교, 초-고급중학교 교재를 새롭게 집필하는 사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선발된 교수진이 참가했는데, 이 교재가 완성되면 기존의 교과서는 장마당에서 팔 수 없게 되지만 지금까지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지난 1월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2차 회의에서 북한 당국은 2025년 국가예산은 국가방위력과 인민경제 중요 부문들에 투자를 집중한다면서 과학과 교육 등에 대한 예산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인재 개발 교육으로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컴퓨터를 비롯한 교육설비들을 학교마다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말입니다. 결국 교육기관 운영에 필요한 예산이 학생들에게 세부담으로 부여되고 있거든요. 그러니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이 늘어나 나라의 교육이 후퇴하는 것에 대해 김정은 정부는 한번쯤 진지한 고심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