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남의 텃밭에 부모 묘를 써도 떳떳한 이유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올해는 4월 5일이 한식이죠. 북한에서는 설, 추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에 속할 정도로 남한보다는 더 중요한 날로 꼽히는 것 같습니다. 찾아 뵈어야 할 가족의 산소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열흘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북한에서는 한식에 맞춰 어떤 준비를 합니까?

한식 다가오면 늘어나는 묘비 걱정

손혜민 기자: 북한에서 한식은 묘를 정비하는 전통적인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은 전국적으로 공휴일이었는데, 2000년대 초반 김정일이 한식은 중국 명절이라고 지적한 이후 한식 대신 청명이 국가 공휴일로 바뀌게 됩니다. 올해도 북한에서 4월 4일 청명이 공휴일로 알려졌는데요. 청명에는 반드시 묘비와 상돌 등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특히 신묘라면 묘비와 상돌을 새로 안치하고 봉분도 다시 보강해야 하니까 비석과 상돌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식량배급제가 작동하던 시기에는 가족 중에 누가 사망하게 되면 입관과 묘비, 상돌은 전부 세대주가 일하는 공장기업소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 의례였습니다. 이때는 공장기업소 노동자 월급에서 경조사 비용을 집체 공제하고, 그 비용으로 목재와 시멘트 등을 국정가격으로 구입하거나 공장 자재로 관, 묘비, 상돌 등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식량 배급과 자재 공급체계가 무너지고, 공장 노동자의 월급 가치가 휴지장이 되면서 묘비와 상돌은 대부분 가족의 부담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따라서 청명과 한식이 다가오면 산소에 가야 하는 주민들은 묘비 걱정부터 합니다. 양강도를 비롯한 북부 지역에서는 주로 통나무를 네모나게 깎아 묘비로 사용하는데요. 묘지 옆에 꽂아 놓은 나무 묘비는 추운 겨울에 땔감이 없는 주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장작감이 됩니다. 엄동설한에 집안에서 자녀가 얼어 죽을 판이니 무작정 묘지에서 나무 묘비를 몰래 뽑아서는 집으로 날라 온 후 도끼로 패서 장작으로 때는 겁니다.

묘비 뽑아 장작으로, 상돌 훔쳐 조상 묘에

진행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군요. 하지만 조상 묘비가 갑자기 없어진 후손들 입장에선 너무 황망한 일이겠는데요.

손혜민 기자: 이 때문에 상주라면 누구나 청명이나 한식이 다가오는 4월 전에 묘지가 있는 산에 올라가 묘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확인하지 않고 청명에 가족과 산소에 올라가 묘비가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늦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묘를 잘 관리해야 가족의 불운이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묘비가 없는 묘에 젯상을 차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묘비를 도둑맞지 않았다면 다행이죠. 그러면 나무 묘비에 써 있는 사망자의 이름 등 글자만 빨간 라카로 다시 써주면 되니까요. 묘비를 도둑맞았다면 청명 전으로 묘비를 사야 합니다.

이러한 실정은 내륙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쪽과 달리 평안남도 등 내륙에는 나무가 아니라 콘크리트나 대리석으로 묘비와 상돌을 만드는데요. 북부 지역처럼 나무 묘비를 장작감으로 훔쳐 갈 일이 없어 묘비 도둑은 덜하지만 상돌 도둑은 자주 일어납니다. 콘크리트 묘비는 사망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뾰족한 정대로 파서 새기므로 훔쳐가도 사용할 수 없거든요. 하지만 묘지 앞에 있는 커다란 상돌은 젯상을 차려 놓을 밋밋한 평판이므로 다른 묘에 옮겨다 놓으면 그 묘지의 상돌이 되는 겁니다.

추석을 맞아 평양 령송구에 있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절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추석을 맞아 평양 령송구에 있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절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2012년 9월, 북한의 한 가족이 추석을 맞아 평양 령송구에 있는 조상의 무덤을 찾아 절하고 있다. (AP)

묘비, 상돌 훔쳤지만 도둑은 아냐?

진행자: 남의 묘비를 장작으로 쓰거나 상돌을 훔쳐다 가족의 산소를 정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인데,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흔한 일입니까?

손혜민 기자: 아직까지 북한에서는 비석과 상돌을 훔쳐가는 행위가 불법으로 통제되는 조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도덕 윤리적으로 심각하지만 북한 당국도 비석과 상돌을 훔쳐가는 현상은 도둑이라고 인식하지 않거든요. 그러니 비석과 상돌을 도둑맞은 주민들도 신고하거나 사법당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인식 자체가 없습니다. ‘비석까지 뽑아가는 망할 놈의 세상‘이라고 허공에 소리치며 한탄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묘비석 도둑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의 소토지를 침해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한국에 정착하며 놀랐던 것은 화장장 문화였습니다. 가족 중에 누가 사망하면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함을 보관해주는 안치소가 있고, 안치소에 비용을 지불하면 유골함을 관리해주는 유료 체계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특히 화장하지 않고 묘를 사용하려면 땅값을 지불해야 하고, 묏자리가 해가 잘 드는 명당 자리라면 땅 값이 대폭 상승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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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텃밭에 내 부모 묘를 써도 떳떳

이런 문화가 북한에도 유입돼야 한다고 보는데요. 북한에는 사망한 사람을 입관하고, 그 관을 묻어야 할 자리는 사망자의 가족이나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이 임의로 정합니다. 예를 들어 장례를 치르는 주민이 묏자리를 돌아보다 야산을 경작지로 일구어 훤히 트인 소토지가 보이면, 그 자리가 좋은 묏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즉시 그 소토지에 봉분 묘가 생겨납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농사짓는 땅에 시신을 묻고 봉분 묘 주변을 넓게 만들어 소토지를 뺏어도 그 주민은 항의하지 못합니다.

속으로 억울해도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배경에는 개인 소유권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북한 사회의 문제점이 작용한다고 봅니다. 개인이 산비탈을 일구어 기름진 밭으로 가꾸어 놓았어도 그 땅은 국가 토지거든요. 그래서 개인이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어 가꾸는 소토지가 어느 순간 묏자리로 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겁니다.

그러니 땔감이 없어 묘비석을 훔쳐가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고, 장마당에서 상돌 가격이 비싸 돈이 없는 사람들이 상돌을 훔쳐 조상을 모시는 웃지 못할 일이 북한에서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진행자: 그래서 한식이 되기 전에 내 조상 묘지가 온전한 지 정비부터 반드시 해야겠군요. 그런데 상돌이나 묘비 관련 제품은 장마당에서 구할 수는 있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네. 상돌은 물론 비석도 전부 장마당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상은 오래되었습니다. 식량배급제가 무너진 이후 시작되었는데요. 3월 중순이면 내륙에서는 비석과 상돌을 전문 만들어 장마당에 판매하는 전문업자를 찾아가 주문합니다. 비석과 상돌은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콘크리트로 만들었냐, 콘크리트 몰탈에 인조석을 넣고 만든 후 굳어진 다음 손으로 연마해 대리석처럼 만들었냐에 따라 가격이 두 배 차이 납니다. 대리석처럼 윤기나면서도 하얀 인조석이 보이는 묘비석은 20만원(약 10달러)으로 알려졌습니다.

묘지 덮는 잔디도 남의 묘에서?

진행자: 상당히 비싸네요. 그럼 묘지를 덮는 잔디는 어떻게 합니까? 이것도 남의 묘에서 가져다 쓰기도 하나요?

손혜민 기자: 잔디 얘기도 흥미로운데요. 2012년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이후부터 북한의 초등학교와 고급중학교 운동장은 전부 잔디를 깔도록 조치되었는데요. 잔디는 한번 깔면 다음 해 부분, 부분 죽을 수도 있어서 잔디를 교체해야 하므로 북한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잔디연구소와 잔디사업소입니다. 여기서 잔디를 팔고, 장마당에서도 잔디를 파는데요. 청명이나 한식 날, 묘와 그 주변에 죽은 잔디가 있으면 그 부분에 잔디를 심는데, 잔디는 대부분 사지 않고 묘가 있는 산에서 떠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잔디까지 남의 묘에서 훔쳐 오는 것은 아니고요. 산에 가면 묘가 정말 많거든요. 묘 주변마다 넓게 잔디밭이 생기니까, 그곳에서 삽으로 잔디를 떠다가 봉분 묘에 얹어 놓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산에 올라가 묘지를 관리해야 하는 북한 주민들이 비를 맞지 않도록 청명이나 한식에는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