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엄마의 ‘전화돈’ 없으면 굶는 군인들?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북한에선 손전화가 없어도 급하게 전화할 일이 있을 때 장마당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녹화기 매대에 가면 전화 통화가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손 기자, 녹화기 매대에 가서 전화기라도 빌려 쓰는 겁니까?

녹화기 장사꾼이 돈 많이 버는 비결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한국에서는 손전화가 없을 때, 부모 형제나 가까운 친구에게 잠깐 빌려 쓰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북한의 사정은 다릅니다. 통화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인데요. 손전화를 쓰자고 말하는 자체가 상대방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거나 같은 거죠. 물론 누구에게 급히 연락을 해야 할 경우, 친구의 손전화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술 한 잔이라도 대접해야 하는 인사 차림을 해야 합니다. 북한 장마당에서 농태기 한 병도 2천500원인데, 그 돈이면 차라리 장마당에 뛰어가 통화 시간을 돈을 주고 사는 게 효과적인 겁니다.

보통 북한 장마당에서 녹화기와 전기밥가마 등 전자제품을 매대에 놓고 장사하는 상인들이 소분 장사꾼들인데요. ‘소분 장사’란 통화시간을 분 단위로 작게 쪼개서 판매하는 장사를 말합니다. 소분 장사는 합법적인 장사는 아닙니다. 소분 장사꾼들이 손전화 기기도 판매하는데, 이것도 역시 불법입니다. 북한 당국이 중국에서 수입된 녹화기, 전기밥가마 장사는 상대적으로 통제하지 않지만, 태블릿이나 손전화 판매, 특히 통화 데이터를 소분해서 판매하는 행위는 더 통제합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부품을 조립해 국가체신망에서 손전화 기기와 통화 데이터를 팔면서 외화벌이하므로 개인에 이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통제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따라 북한 장마당에서 손전화 기기를 몰래 팔면서 소분 장사를 전문하는 상인은 녹화기를 비롯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상인들입니다. 손전화는 전자제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지역마다 자리한 종합시장 전자제품 매대에서 손전화를 하겠다고 말하면, 몇 분 필요하냐고 묻죠. 비용을 묻는 겁니다. 연락하려는 상대가 누군가에 따라 구매자는 5분~15분 정도 통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요. 소분 장사꾼은 1분 단위로 가격을 계산해 현금을 받고 자기의 손전화를 건네줍니다. 만약 3분 초과했다면, 초과 요금을 다시 계산해 주어야 하죠.

평양의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탑' 앞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북한 여성.
평양의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탑' 앞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는 북한 여성. 2015년 10월, 한 여성이 평양의 '조선로동당 창건 기념탑' 앞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다. (AFP)

데이터 소분 가격, 기본 요금의 400배 이상?

진행자: 그러면 소분 장사꾼이 팔고 있는 통화 데이터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구입할까요.

손혜민 기자: 우선 손전화 개통 절차부터 말씀드린다면, 지역마다 자리한 국가체신성 산하 체신국에 신분증으로 가지고 손전화 가입을 신청하면 누구나 ‘고려링크’ ‘강성네트’ 통신망에 실명으로 가입하는 게 가능합니다. 가입이 완료되면 손전화 기기와 유심 카드, 즉 전화번호가 나오는데, 그 전에 손전화기 가격부터 지불해야 합니다. 지불 능력이 되지 않으면, 손전화 개통이 어렵습니다. 손전화 가격은 기종에 따라 200달러~500달러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기기 가격을 지불하면 다시 분기요금까지 지불해야 손전화가 개통됩니다.

분기요금이란 3개월(분기) 단위로 통신요금을 결제한다고 하여 불리는 공식 용어입니다. 한국에서는 1개월에 한 번씩 후불로 통신요금이 결제되지만, 북한에서는 3개월에 한번씩 선불로 통신요금이 결제되는 차이점이 있죠. 분기요금은 2,850원인데요. 분기요금이 결제되면 손전화에 월 200분씩, 총 600분의 통화 시간과 월 20개의 통보문(메시지)씩, 총 60개의 통보문을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충전됩니다. 분기로 충전된 통화 데이터를 월 단위로 계산하면 950원, 이것을 다시 1분 단위로 계산하면 4.7원이 나옵니다. 그러면 5분 통화 데이터가 23원 50전이 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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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소분 장사꾼이 소분해 판매하는 통화 시간은 1분 당 2천원입니다. 400배 이상이죠. 통화 시간 5분을 사려면 1만원을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비싸냐 하면 개인이 분기요금을 국가 체신소에 결제하고 받은 600분(월 200분)의 통화시간을 모두 사용하면 체신소에서 다시 통화시간을 판매해 주는데, 이때 가격은 기존 통화시간보다 두 배 가까운 가격(5천원)으로 판매합니다. 한국에서 전기를 초과사용하면 누진세가 적용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데요. 이마저 국가체신소에서 추가 통화 시간은 판매 한도를 정해 놓은 틈새가 암시장으로 변질되어 소분 가격이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국가 체신소 간부들이 5천원(20센트)받고 추가적으로 통화시간(600분)을 충전해야 하는 것을 장사꾼들에게 10달러에 넘기는 겁니다. 통화 데이터는 가격이 비싸도 수요자가 많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러면 그것을 통째로 사서 다시 장마당 소분 장사꾼에게 12달러에 넘깁니다. 결국 소분 장사꾼들은 12달러짜리 통화 데이터를 1분 단위로 판매하면서 또 마진을 붙이다 보니 1분에 2천원이 되는 겁니다. 현재 북한 시장 환율이 1달러에 2만3천원이니 소분 가격도 오른 거죠.

진행자: 그렇군요. 북한에 손전화가 700만대 이상 보급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 통계조사가 꽤 있죠. 손전화기 한 대로 가족이 다 같이 사용하는 일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손전화가 없어서 데이터 소분 장사꾼을 찾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건가요?

손혜민 기자: 네, 700만대라는 보급 숫자는 틀리지 않지만, 그 숫자가 결코 700만 명이 손전화를 사용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농촌지역이나 소득이 낮은 주민의 경우 최소 200달러를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손전화 구매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권력층에서 무역기관 간부들과 장마당 돈주들은 보통 한 사람이 3대 정도의 손전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 이유는 북한에서 손전화는 신분증으로 개통하기 때문에 국가보위성은 손전화 번호 명단을 가지고 24시간 감청합니다. 그러니 감시체계를 벗어나기 위해 실명폰 하나, 대포폰 하나 이상 사용하는 겁니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손전화로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 사정이 생길 때마다 소분 장사꾼에게 돈을 지불하고 통화를 하는 건데요. 북한의 평균 소득 수준이 밥도 실컷 못 먹는 주민들이 아직 많은 것을 감안하면, 소분 장사꾼을 찾는 사람들이 얼마일지 가늠되실 겁니다.

전화 통화하고 있는 북한 여성
전화 통화하고 있는 북한 여성 2015년 10월, 평양 중심부에 있는 보통강백화점 앞 공원에서 한 여성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Reuters)

데이터 소분 장사꾼에게 급하게 빌린 손전화, 가장 많이 전화하는 곳은?

진행자: 그럼 손전화가 없는 사람들이 급하게 데이터 소분 장사를 찾아 전화하는 곳은 주로 어딘가요?

손혜민 기자: 탈북민이 국경 브로커를 통해 가족에게 송금을 보냈을 때, 그 돈을 찾기 위해 소분 장사를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 군사복무하는 자녀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북한의 군인들이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결핵이나 간염에 걸려 감정제대(의가사제대)되는 사례가 꽤 많거든요. 그러니 부모들은 장사로 돈을 모아 1개월~3개월 단위로 군대 나간 자녀에게 보내주는 건데, 이때 송금은 송금액수만큼 통화 데이터로 계산해 상대방의 손전화에 전송하는 겁니다.

군부대 주변에도 장마당이 있고, 그 장마당에는 소분 장사꾼이 있기 때문에 통화 데이터가 즉시 현금으로 전환되는 거죠. 예를 들어 북쪽 양강도에서 살고 있는 엄마가 황해남도 해주에서 군 복무하는 아들에게 전화하여 부대 일대 손전화를 갖고 있는 사민의 전화번호를 요청합니다. 그 전화번호에 통화 데이터를 전송하면, 손전화 주인은 장마당에 나가 소분 장사꾼에게 통화 데이터를 넘겨주고 현금을 받습니다.

초소 옆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북한 여군
초소 옆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북한 여군 2014년 6월, 북한 신의주 인근 압록강 둔치에서 한 북한 여성 군인이 초소 옆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Reuters)

엄마의‘전화돈’ 없으면 굶는 군인들?

이렇게 오가는 돈을 ‘전화돈’이라고 합니다. 전화돈을 군인에게 전달할 때 10% 수수료를 제하는 데요. 그렇게라도 엄마가 보내 준 전화돈을 받은 아들은 장마당 음식매대에서 떡과 순대 등을 사먹을 수 있어 군사복무 기간을 무사히 보내는 겁니다. 코로나 이후 북한 당국이 손전화로 오고 가는 송금 방식을 통제한다며, 개인의 손전화에 재충전하는 통화 시간을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는 소분 가격만 올려 놓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중앙은행에서 발급한 전성카드 사용을 장려하면서 사금융 시장을 통제하는 것인데, 민생은 물론 군인들의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시장 통제 효력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