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이동준 xallsl@rfa.org
존경받는 지도자는 입는 옷만으로도 침체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나 봅니다. 의류산업이 침체되고 있는 태국에서는요. 최근에 ‘국왕 따라입기’가 유행하면서 침체된 의류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합니다. 방콕의 이동준 특파원 연결합니다.
태국 의류산업의 불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네, 태국화의 환율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봉제업계에서 50만여명의 실업자가 나왔고 도산하는 기업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국왕 따라입기’가 유행하면서 침체됐던 의류산업이 활기를 띄고 있다는 얘기는 뭔가요?
네, 요즘 태국은 국왕 때문에 온 나라가 노란색, 파란색, 분홍색, 초록색 셔츠(상의)로 덮힌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태국은 아시다시피 입헌군주국가입니다. 국왕이 존재하지만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일 뿐이고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에게 있는 거죠.
태국 국왕은 푸미볼 왕인데요, 왕위에 오른 지 60년을 맞았습니다. 다음 달 그러니까 12월5일은 푸미볼 왕의 80회 생일입니다. 태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왕을 상징하는 색과 왕비를 상징하는 색을 정했는데요, 왕의 상징색은 노란색이고, 왕비를 상징하는 색은 옅은 파란색입니다.
그래서 쿠데타 이전의 민선 정부에서는 지난해 맞이했던 왕 즉위 60주년을 맞아 일정 기간을 정해 놓고 매주 월요일 왕의 색깔인 노란색 티셔츠 입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노란색 셔츠 입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나요?
아닙니다. 정해 놓은 기간이 지나서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노란색 셔츠 입기 운동은 전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매주 월요일이면 노란색 티서츠의 물결을 시내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노란색에 이어서 핑크 즉 분홍색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분홍색 티셔츠가 잘 팔리는 이유는 뭔가요?
그 이유는 푸미볼 국왕이 지난달 10월에 가벼운 질환으로 수술을 받고 20여일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는데요, 푸미볼 국왕이 태원할 때 분홍색 자켓을 입고서 문병 온 수천명의 태국인들을 맞이한 것이 계기입니다. 그 후에 태국에서는 분홍색 티서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며칠 후에는 초록색 티서츠가 잘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이유인가요?
이번에도 푸미볼 국왕 때문입니다. 국왕의 손위누이가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요, 푸미볼 국왕이 퇴원한 뒤에 누이에게 문병을 가면서 초록색 정장을 입었거든요. 태국 국민들이 또 그것을 본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초록색 티셔츠가 시장에서 잘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태국 국민들의 국왕 따라입기, 정확히 말하자면 국왕 옷색 따라입기는 못말릴 정도인데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6천만 태국 국민들에게 푸미볼 국왕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현상으로 풀이됩니다. 푸미볼 국왕은 어진 국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60년 왕위에 있으면서 국민들을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국민들 편에 서서 사랑을 펼치는 모습은 태국 현지에 사는 외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푸미볼 국왕이 거처하는 왕궁은 화려한 왕궁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거대한 연구소입니다. 큰 대지에 손수 연구원들을 불러들여 신종볍씨를 개발해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고, 축산은 물론 조그만 공장을 가동해서 중소기업체들을 돕는 등 태국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왕입니다.
하지만, 이런 국왕을 이용해서 셔츠를 좀 팔아보려는 상술도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물론, 그런 점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국왕 따라입기 현상을 보도하고 있는데요, 이게 광고효과도 있어서 티셔츠가 더 잘 팔리면서 의류산업이 활기를 찾는 듯 한 인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태국 국민들이 국왕이 입은 옷 색깔의 티셔츠를 구입하려고 밤샘을 하면서 상점 앞에서 기다릴 만큼 왕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덕에 태국의 의류산업도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