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평양과 지방 도시에 걸쳐 살림집 건설을 최우선 중점 사업으로 내세우고 수많은 군인과 대학생까지 동원하는 가운데, 건설 현장마다 인명사고와 비인간적 처우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무리한 공사 진행과 안전 장비 부재 등으로 사망 사고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는가 하면, 동원된 노동자들은 충분한 식량과 거주 환경 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탈북민과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비롯해 안전권과 생명권 등을 침해받고 있다며 인권 문제를 지적합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북한 건설 현장에 인명사고 속출
“평안북도 여단 20대 청년 3명이 야간작업을 하던 중 차량에서 쏟아진 골재에 파묻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장 많은 사고는 철야 전투로 잠을 자지 못해 청년 건설자들이 층막공사 중 추락하거나 목재에 치여 사망하는 등의 인명사고다.” (평안북도 소식통)
“함경북도 여단 포항 대대의 한 돌격대원이 골조 공사 중 11층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함경북도 소식통)
“건설 현장에 변변한 안전 장비도 갖추지 않다 보니 인명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북한 당국은 안전대책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북중 국경지역 대북소식통)
최근 한 달 사이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북한 내부와 북중 국경 소식통으로부터 전해 들은 북한 건설 현장의 실상입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평양은 물론 지방 도시까지 살림집 건설 공사를 독려하고, 10만 명이 넘는 청년들이 건설 사업에 동원되는 가운데 크고 작은 인명피해가 속출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중 국경지역의 한 소식통은 최근 (4월 28일) RFA에 “평양 살림집 건설 외에도 농촌 지역에 많은 건물을 짓는 가운데 군인과 청년 돌격대를 포함해 대학생까지 강제로 동원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안전대책은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실적을 쌓기 위해 공사 기간을 단축하면서 밀어붙이기식 공사를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군인들과 대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연히 안전 관리는 부실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구조물이 떨어지거나 건물 붕괴 또는 추락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도 지난 13일 RFA에 “요즘 평양시 1만 세대 건설 현장에서 각종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으며,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도 “청년 돌격대원들이 제대로 먹지 못하며 고된 노동에 내몰리다가 여러 가지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휴식도 없이 진행되는 과도한 건설과제 때문에 억울한 사망자가 계속 발생한다는 겁니다.
북중 국경지역의 소식통도 건설 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냉난방 시설도 없는 임시 천막에서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식량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극도의 노동을 해야 하는 건설 현장이기에 식량 제공이 필수적이지만, 물과 음식도 스스로 가져와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집단적인 영양결핍 증세가 나타나고 있고, 비위생적 환경 탓에 옴이나 폐 질환 등 질병에 걸리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건설 현장 사고, 과거부터 이어진 고질적인 문제”

이처럼 건설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최근의 일이 아닌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 온 고질적인 병폐라는 것이 탈북민과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여군 장교 출신의 탈북민 김단금 씨도 (5월 16일) 북한 건설 현장에 관한 RFA의 질의에 복무 당시의 기억을 꺼냈습니다.
[김단금] 평양에 있을 때 광복거리를 건설하는 속도전 청년돌격대를 방문했어요. 지인을 만나러 갔다가 (동원된) 사람들이 밥 먹는 걸 봤는데 불쌍하더라고요. 밥그릇의 3분의 1 정도만큼 옥수수 삶은 거를 주고…. 건설하면서 너무 배고프니까 아파트 베란다의 수도관을 타고 올라가서 생콩을 도둑질해 먹다가 주인이 부스럭 소리에 깨서 ‘누구야’ 하고 소리쳐서 떨어져 죽은 돌격대도 있었어요.
또 김 씨는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 감전사 등 다양한 사고들이 빈번히 일어났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북한 건설 현장은 과거보다 나아졌을까. 김 씨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김단금] 그때보다 지금은 더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식량 같은 것은 부족하지 않았어요. 무력부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식량이나 먹는 건 부족함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안전 장비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하는 거죠.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15일) RFA에 과거에 비해 오늘날 북한의 건설 현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1980~90년대, 2000년대와 비교해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코로나 속에서도 동원을 해왔지만, 계속 늦어지면서 예정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고, 지도자가 선전용, 즉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여러 건설 사업의 우선순위가 높으면 그만큼 공급도 우선적으로 잘 돼야 하는데….
평양시 살림집 건설 사업은 북한 당국이 대표적으로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이기에 우선순위가 높은 상황이지만, 북중 국경봉쇄와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난과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 당국이 건설 노동자에게 제대로 식량을 배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동원을 시키면 현장에서 급식을 줘야 하는데, 그게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원 자체가 잘 안 되고 있다고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평양에 김정은 중심으로 직접 지시한 여러 주택 건설 사업이 있잖아요. 지도자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최우선 과제로 여러 자재 혹은 식량이 우선 공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이전과 좀 많이 사정이 달라졌으니…. 동원 자체가 식량 공급이 잘 안돼서 차질도 많을 거라고 예측도 가능합니다.
실제 지금도 건설 사업에 동원된 돌격대 청년과 대학생들은 식량 공급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소식통에 따르면 건설 사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배고픔과 비인간적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무단으로 이탈해 절도나 강도 등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은이 한국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연구실장은 (17일) RFA에 북한 건설 현장에 동원되는 주민들이 여러 인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에 대한 권리와 안전권, 생명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정은이] 가난하고 돈 없는 청년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더 열악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돌격대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배불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식사 제공 자체도 상당히 열악한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보장, 권리 등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거도 평양 건설을 예로 들면, 미래 과학자 거리 등을 보면 컨테이너 같은 박스들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주거도 굉장히 열악하다는 거죠. 구글 위성지도로 삼지연 건설 현장을 보면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거주하고 공사가 끝나면 철거하는, 바꿔 말하면 임시 거주처로 만들어서 생활한다는 거죠.
실제로 동원 대상자 중에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동원에서 빠지기 위해 뇌물을 바치거나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기도 하고, 심지어 돈을 주고 다른 사람을 대신 건설 현장에 보내는 편법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부들이 가로채는 게 더 많아”

건설 현장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식량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식량 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란 지적도 있습니다.
정은이 실장은 북한이 절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하긴 하지만, 분배 체계가 잘 구비돼 있다면 평등하게 먹고 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정은이] 굶지 않고 평등하게 먹고 살 수 있는데요. 북한은 그것조차도 (잘 안되는 거죠). 부정부패가 많기 때문에 취약계층은 더 어려운 상황이고, 격차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김단금 씨도 건설 현장에 동원된 돌격대가 식량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이유는 현장 간부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김단금] 국가에서 식량을 적게 주는 게 아니라, 지휘관들이 식량을 다 빼돌리고 팔아먹고, 개인 잇속을 채우기 때문에 대원들에게 가는 밥이 적어지는 거예요. 일단 받으면 그 밑 지휘관, 중대장, 소대장, 정치부 이런 사람들이 식량을 팔아서 술 먹고, 사비로 활용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원들에게 식량이 적게 돌아가는 거죠.
결국, 현장 간부들의 이기심 때문에 건설 현장에 동원되는 노동자들의 의식주가 박탈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북중 국경지역의 소식통도 RFA에 “건설 현장 간부들이 건축 비용이나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을 착취하면서 건설물자나 자금 일부를 횡령하고 있고, 강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은 하층민 위주로 할당하면서 차별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건설 현장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는 이유는, 동원된 사람들을 단순히 착취 수단으로만 보는 북한의 왜곡된 인권 의식과 실적 쌓기에만 급급한 당국의 행태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심각한 경제난에도 북한 당국이 평양시 건설 사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는 가운데 건설 현장에 동원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인명 사고, 배고픔 등과 함께 계속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 입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