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다양한 탈모 치료제 제품 출시
2023.11.15
앵커: 최근 북한에서 탈모 치료와 관련된 의약품 출시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장년층의 탈모가 늘어난 가운데 삶의 질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그에 맞춘 제약 회사들의 제품 출시가 눈에 띄는데요.
천소람 기자가 북한 탈모약의 성능과 탈모에 대한 북한 주민의 인식을 짚어봤습니다.
탈모 치료제 출시 활발하지만, 효과는 글쎄?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최근 입수한 북한 탈모 치료제 사진.
평천고려약공장에서 생산한 ‘구릿대탈모팅크’는 범발성탈모를 비롯해 완전탈모, 비강성탈모, 조로성 및 장년성탈모 치료가 주요 효능입니다.
또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만든 ‘머리칼성장제’의 주요 효능은 원형탈모와 범발성탈모, 완전탈모, 조로성 및 장년성탈모, 신경성탈모에 효과적인데, 상자 겉면에는 ‘탈모 방지’, ‘머리칼 성장 촉진’이란 문구도 적어놨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탈모 치료제는 의약품과 기능성 화장품으로 나뉩니다.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최근 북한 주민 사이에서 삶의 질에 관한 인식 고조와 함께 제약 회사의 다양한 의약품 출시가 눈에 띄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장년층을 겨냥한 탈모 치료 관련 제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그 효능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음표를 던집니다.
안 센터장은 탈모 치료제에 모발 혹은 피부에 좋다는 성분이 포함돼 있겠지만, 의약품으로써 효능은 검증하기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안경수] 북한의 의약품은 사실 검증이 안 되는 거죠. 머리 모발이나 피부에 좋다는 성분을 집어넣은 건 있을 겁니다. 탈모 방지 샴푸를 보면 성분은 주옥같아요. 피부나 머리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집어넣었습니다. 북한도 그렇겠지만, 검증은 안 됐다고 볼 수 있죠.
북한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최정훈 한국 고려대학교 공공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9일) RFA에 북한 탈모약은 기본적으로 고려 약, 즉 한방을 기반으로 한 바르는 약이 대부분인데,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최정훈] 유리병에, 솔잎 같은 솔을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묶고 약을 묻혀 탈모가 온 두피에 자극을 주면서 약을 묻히면 머리가 나온다는 개념인데요. 효과가 있으면 대머리는 사라지고 없겠죠. 탈모라는 게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거잖아요. 국소적인 원인도 있지만, 남성 호르몬, 피부병 후유증 등 원인도 있기 때문에 국소에 약을 바른다고 해결되진 않습니다.
탈모, 대머리… 북한에서는 ‘부의 상징’

탈모는 유형에 따라 부의 상징 혹은 궁핍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탈모를 ‘번대’라고 표현하는데, 번대는 독수리의 북한어인 ‘번대수리’에서 따온 말입니다.
북한 주민 사이에서 탈모를 보통 ‘대번대’, ‘중번대’, ‘소번대’ 세 종류로 표현하는데, 대번대는 이마에서부터 머리 중앙까지 탈모가 진행돼 옆머리만 남은 탈모를 뜻하며, 일명 ‘공짜 번대’라 불리기도 합니다. 대번대는 북한 간부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탈모 유형 중 하나입니다.
또 중번대는 일명 ‘재떨이 번대’라 불리는데 머리 가운데, 즉 정수리 부분에만 동그랗게 탈모가 진행된 유형을 뜻합니다. 북한에서는 중번대를 궁핍의 상징으로 보기도 합니다.
끝으로 소번대는 이마 쪽에 탈모가 진행돼 이마가 넓어 보이는 탈모 유형을 뜻합니다.
최 선임연구원은 북한에도 탈모 인구가 많다며, 장티푸스와 파라티푸스의 후유증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최정훈] 많을 수밖에 없죠. 북한 사람들이 탈모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같은 질환이 많은 데 있습니다. 이 질환을 앓고 나면 탈모가 심합니다.
또 비누, 샴푸 등에 포함된 강력한 화학성분도 탈모에 큰 역할을 합니다.
탈모 방지를 위해서는 두피에 자극이 가는 성분을 피하고, 가능한 순한 제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북한의 현 상황에서 순한 화학제품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정훈] 한국은 샴푸를 좋은 걸 쓰고도 탈모가 많잖아요. 북한에서 샴푸를 쓰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고, 다 비누를 사용하는데 심지어 일반 주민들은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두피와 머리카락에 안 좋죠. 이런 여러 가지 원인 때문에 탈모가 일단 많습니다.
[안경수] 탈모는 생활 환경이나 사회적 스트레스 같은 사회문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경우 특수하게 볼 것이 화학 제품입니다. 화장품, 샴푸 등도 다 화학 제품이잖아요. 북한은 화학제품, 화장품의 성분이 저자극적이거나 체내에 무해한 수준으로 생산할 정도가 아닙니다. 그런 요인 때문에 탈모가 진행되거나 생길 우려가 큽니다.
또 북한 남성이 오랜 기간 군대 생활을 하면서 착용하는 군모도 탈모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일반 주민 탈모에 신경 쓸 여력 없어”

북한에서는 탈모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최 선임연구원은 부정적인 인식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인식도 있다고 말합니다.
탈모 혹은 대머리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데, 특히 간부 또는 외화벌이 사장 등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 가운데 소위 ‘대번대’의 탈모 유형이 많이 분포돼 있어 이러한 인식이 고착됐다는 겁니다.
[최정훈] 나이 든 사람이 특히 앞쪽부터 쭉 밀린 대머리, 북한의 간부들은 거의 그런 대머리거든요. 대번대라고 하는데 ‘욕심 많고, 복이 많다, 돈이 잘 들어온다’라는 이미지로 순화시키더라고요. 의학적으로 보면 (대머리는) 남성 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든요. 북한의 권력층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육류 등을 많이 섭취해 스태미나(체력)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일반 주민보다 전형적인 대머리가 많을 수 있습니다.
[안경수] 배 나온 사람이 간부로 보이고 돈도 있어 보이고, 오히려 마른 사람보다는 남자로 낫다는 인식이 북한에는 있습니다. 한국도 80~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머리가 없어 보인다고 생각 안 하고, 어떻게 보면 배 나오고 대머리가 남자답고 돈 있어 보인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없으면 고민이겠지만, 북한은 그래도 미적 기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도 탈모에 대한 북한 주민의 고민은 여전하다고 안 센터장은 지적합니다.
탈모가 진행돼도 치료제나 모발 이식 등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모를 겪는 일부 부유층은 가발을 구해 착용하고 다니는데, 이마저도 부유층에 국한돼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탈모의 고민.
탈모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새로운 탈모 치료제가 계속 출시되고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일반 주민은 탈모에 신경 쓸 여력조차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