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북한도 김치와 물 사 먹는 시대”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최근 한국 통일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김치와 생수를 사 먹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이나 서방 국가에서는 김치와 물을 사 먹는 것이 일상이 됐는데요. 북한에서는 “김치와 물을 사 먹는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김치는 잘 모르겠지만 , '물을 사 먹는다'는 인식은 적어도 평양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확산해 있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덕샘물'이었고, '금강샘물' 등 여러 종류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2003년에 평양 특파원으로 북한에 체류할 때는 일상적으로 '페트병(플라스틱 일회용) 샘물'을 가지고 다녔는데요.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김치를 사 먹는 습관은 적어도 2003년에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봉투에 들어간 김치를 팔고 있었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 중에는 김치를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사 먹는 습관이 벌써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 시민은 김치는 사 먹지 않고 집에서 김장해 만들어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2016년 평양에 '류경김치공장'이 완공됐다는 보도 이후 2018년 4월부터 2022년 3월 사이에 함경북도 청진, 평안남도 평성, 양강도 혜산 등 전국 11곳에 속속 들어섰다는 보도도 있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김치도 사 먹는 시대가 됐을 수 있겠죠.
[기자] 박사님께서도 북한에 계실 때 김치와 물을 사 먹는 문화를 목격하거나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문성희]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 북한 사람들이 물을 사 먹는 것도 자주 봤고, 저도 직접 물을 사 먹어 보았습니다. 또 평양시에는 여름에 청량음료수나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군고구마나 군밤을 파는 노점이 곳곳에 있는데, 거기서도 물을 파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물 외에 음료수도 팔고 있었고, 맥주를 파는 노점도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평양시 교외에 있던 식료품 공장이 직접 운영하는 상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빵과 아이스크림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노상에서 그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게 인기가 있는 것 같았어요. 또 아이들이 즐겨 먹었기 때문에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됩니다. 적어도 제가 그 상점에 갔던 2011년에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이스크림과 빵을 안내원이 사줬는데요. 그 당시 사무원 임금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 한 달에 북한 돈 3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데도 저에게 사준다는 것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 정권 들어 물과 김치를 생산하는 공장이 전국적으로 확산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생활 문화가 변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또 평양에만 국한된 것인지, 전국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문성희] 김 치를 생산하는 공장이 평양뿐 아니라 지방 도시에도 있는 것을 보면 , 생활 문화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과연 지방 공장이 정말 잘 가동되고 있을까'입니다. 다른 공장들도 가동해야 하는데 김치 공장을 가동하겠느냐는 거죠. 물론 이런 공장은 소규모 공장일 테니 먼저 가동할 수도 있지만, 그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 공장도 전국에 확산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까 생활문화가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죠. 그런데 저는 지방에서 아무리 페트병에 들어간 물이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이 수돗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페트병은 진짜라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간 물은 샘물이 아니라 수돗물일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북한에서 물을 마시면 반드시 설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지방의 역전에 길거리 시장이 생기고, 그곳에서 샘물을 팔고 있었지만, 안내원은 절대 거기서 파는 물을 저에게 사주지 않았습니다. 안내원도 수돗물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 어느 지방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셨는데 그것이 맥주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었습니다. 저는 대동강맥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게 가짜구나'라고 생각해서 이것을 산 현지 사람한테 말했죠. 그랬더니 "진짜인 줄 알고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지방 도시에 가면 진짜 병을 쓰면서 가짜 물건을 파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제적 효과보다 인민 생활 개선 노림수
[기자] 만약 김정은 정권이 사 먹는 김치와 물을 장려하는 것이라면, 그 배경에 경제적 효과도 노린다고 볼 수 있나요?
[문성희] 저는 특별히 경제 효과가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 단지 인민 생활을 향상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김장 같은 것은 역시 시간도 걸리고, 힘든 부분도 있죠. 이런 힘든 노동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켜 준다고 할까요. 그런 면을 선전해서 최고지도자의 인민 사랑을 호소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물에 관해서는 북한의 샘물이 좋다는 소문도 있기 때문에 수출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겠죠.
[기자] 지금도 한국의 어머니 세대는 ‘김치는 직접 담가 먹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젊은 세대일수록 사 먹는 문화가 발달했는데요. 북한도 세대의 변화에 따라 그런 인식이 확산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요즘 북한의 젊은 세대도 해 먹는 음식보다 사 먹는 음식을 선호한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도 그렇겠지만, 북한도 특히 여성들을 가사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아직 봉건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식사 준비를 비롯해 일반 가사는 여성이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치 같은 것을 사 먹을 수 있다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북한을 자주 다닐 때나 조선신보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 "김장 시절이 왔다"는 보도가 자주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김치는 당연히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란 생각이겠죠. 가정마다 김치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다만 북한 요리 식당에 가면 맛있는 김치가 나왔고, 호텔에서도 매일 여러 종류의 김치가 나왔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식당에 가서 사 먹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한 생활 속에 배달 문화 확산
[기자] 지난 시간에 북한에서 피자를 배달해 먹는다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 배달 문화도 일부 계층만 이용하는 것으로 아는데요. 북한의 배달 음식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문성희] 북한의 부잣집 사이에서는 아침 식사부터 배달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 그리고 평양에 사는 친척 집에 갔을 때도 일반 가정에서 냉면을 만들어 이를 배달해 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 한 번은 친척이 일본 초밥을 제가 묵고 있던 호텔까지 가져와 준 일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것을 파니?"라고 묻자 그 친척은 "일반 가정에서 배달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배달 장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 침투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평양 같은 큰 도시가 중심이겠지만, 저는 틀림없이 북한에서도 배달 문화가 발달할 거라고 봅니다. 또 약을 배달해 주는 장사도 있었어요. 재일 교포 귀국자가 하고 있었는데, 제가 2003년에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재일 교포가 일본에서 주문하면 북한에 사는 가족에게 틀림없이 배달해 준다는 것이었어요. 누군가 한번 해봤는데, 정말 잘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이 장사가 계속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