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경제난에 김덕훈 내각 총리 경질될 듯”

0:00 / 0:00

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김덕훈 총리 비판에도 내각책임제는 유지될 것”

[기자] 문성희 박사님.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달 평안남도 간석지 침수 피해 복구 현장을 시찰한 자리에서 북한의 경제사령탑인 김덕훈 총리를 맹비난했습니다. “김덕훈 내각 총리의 무책임한 사업 태도와 사상관점을 당적으로 똑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박사님께서는 이 비판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문성희] 네. 우선 북한 경제가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20년 제8차 당대회에서 5개년 경제계획에 들어갈 것을 선언한 뒤 북한 나름대로 경제 전망 목표를 세웠는데,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성과는 주택 건설 정도입니다. 북한 주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에서 물자가 안 들어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고, 시장에도 물건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상품이 없으면 못 사는 거죠. 또 국내에서 물건을 생산하려 해도 에너지 부족으로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물건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인민 생활 향상을 약속했지만, 그것이 잘 안된다는 것에 대해, 마치 자기 정책을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 인민들의 불만을 내각에 전가하기 위해서라도 김덕훈 내각 총리를 맹비난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기자] “김정은 총비서가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난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당장 생각나는 인물이 바로 박남기 전 노동당 기획재정부장이었습니다. 화폐개혁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개 처형된 사람인데요. 이번 김덕훈 내각 총리에 대한 비난과 유사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박남기 사건은 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왜냐하면 북한 사람들로부터 "박남기는 나쁜 놈"이라는 비판을 직접 들었으니까요. 사실 당시 화폐개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은 총비서가 주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실패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집에 보관해 놓은 돈도 많이 빼앗겼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의 처지와 미래를 비관해 자살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북한 경제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김영일 내각 총리가 평양 시민 앞에서 공개 사과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북한 사회과학원 소속 교수에게서 직접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수습할 수 있었죠. 그래서 당시 당 계획재정부장이던 박남기가 책임을 지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을 누가 지시했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번 김덕훈 내각 총리와 다른 점은 박남기가 '간첩 혐의'로 처형당한 것이라고 보는데요. 과거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자가 많이 발생했을 때도 농업정책의 실패를 물어 서관희 당시 당 비서가 처형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때 서관희는 '해방 직후부터 북한에 침투한 간첩으로, 김일성 주석이 세운 농업 정책을 일부러 실패하게 하려고 움직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이는 북한 영화에서도 그려지고 있습니다. 박남기도 같은 방식이었죠. 다만, 이 사람들의 나이를 보면 '식민지 시기에 태어나 과거를 알아보니 그렇더라'라는 설명이 가능한데, 김덕훈 내각 총리는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아 간첩으로 몰아넣는 것은 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0906-2.jpeg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21일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안석간석지 피해복구 현장을 현지 지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자] 이번 김덕훈 내각 총리에 대한 비난을 통해 “내각책임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내각책임제는 김정은 총비서가 강조한 것으로 경제는 내각이 책임진다는 등식이 성립됐다고 하는데, 김 총비서가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판함으로써 이 등식이 깨지는 것일까요?

[문성희] 아마도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난하는 것과 동시에 군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고 있어서 "내각 책임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내각책임제는 이전 김정일 정권에서도 강조돼 왔고, 심지어 김일성 정권 시기에도 정무원(내각) 책임제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경제는 온전히 내각이 책임진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가 강조해 온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당과 군이 경제까지 틀어쥐고 독점하려 하겠죠. 또 그렇게 하다가 후폭풍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은 정권 들어 내각책임제를 더욱 강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김덕훈 내각 총리를 비난했다고 해서 내각책임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 내각이 경제를 책임진다 해도 북한 체제상 당의 지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굳이 내각책임제를 없앨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김덕훈 총리 , 처형은 면하겠지만 자리 지키기는 힘들 듯

[기자] 북한 언론을 보면 최근까지 김덕훈 내각 총리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는 9월 26일에 있을 최고인민회의에서 김덕훈 총리의 교체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문성희] 김덕훈 총리가 비판만 받은 것이 아니라 김정은 총비서가 처분에 대해서도 언급했기 때문에 총리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또 총리는 종신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할 수도 있죠. 김덕훈 총리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자기비판을 통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과거 화폐개혁 때도 총리는 바뀌었는데요. 다만, 이번에는 박남기처럼 처형당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서 간첩으로 낙인찍히면 처형밖에 없지만, 경제 문제에 관한 비판 정도면 처형까지는 아니고, 어느 정도 총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총리 교체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906-3.jpg
북한 강원도 원산에서 자전거를 탄 한 남성이 ‘200일 전투’라고 쓰인 표어 앞을 지나고 있다. / AP (Wong Maye-E/AP)

[기자] 북한 경제는 한 인물이 잘못해서라기보다 근본적인 체제의 한계 탓이 크다는 지적이 많지 않습니까. 또 북한의 경제정책에서 일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이번 김덕훈 내각 총리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볼 것은 무엇일까요?

[문성희]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북한 경제가 근본적으로 체제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북한에는 경제 전문 일꾼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회주의국가라 해도 경제 체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정책을 주도해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지금까지 대규모 건설사업을 해도 그것이 잘 작동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는 국가 재정을 낭비하는 것인데,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신경 쓰지 않는 거죠. 만약 자기 기업의 경제 이익이 달려있다면 모두 필사적으로 일할 겁니다. 하지만 자기 돈도 아니고, 돈을 벌어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죠. 사회주의 국가의 나쁜 측면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경제 성과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군이나 당이 나서서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니까 결국, 힘이 있거나 국가에서 재정을 보장해 주는 기업은 군이나 당 산하 기업인데요. 권력이나 배경이 따라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도 이 시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