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경질 피한 김덕훈 총리, 앞으로 성과 증명해야 할 것”
[기자] 문성희 박사님. 지난 8월 안석간석지 침수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덕훈 내각 총리가 경질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 계속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상을 깨고 계속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할 때와 평양에 돌아왔을 때, 김덕훈 내각 총리가 환송∙환영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때 ‘김덕훈 내각 총리가 경질이 안 된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김 총리가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했을 뿐 아니라, 지난 10월 2일에는 평안남북도 농업 부문 사업에 관한 현지 시찰도 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김 총리는 앞으로 계속 총리직을 담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데요. 김정은 총비서가 공개적으로 지적한 이상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 것은 김 총비서의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김덕훈 총리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했다면, 앞으로 있을 사업에서 그것을 증명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자] 그렇다면 김정은 총비서의 통치 스타일이 달라진 걸까요? 아니면 이 정도로 경질까지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문성희] 통치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다는 사례가 많아지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김덕훈 총리에 대해서만 그렇게 했으니까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김덕훈 총리를 경질했을 때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고려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 그동안 북한에서는 경제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환경임에도 책임이 크기 때문인데요. 박사님께서 그동안 대화를 나눠 본 경제 담당 관리나 관계자들의 애로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문성희]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에서 가장 고생하는 관리라고 하면 경제 담당 관리들입니다. 북한 경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이 경제 관리들만의 책임이 아닌데, 언제나 비판을 받는 것은 그들이지요. 제가 만난 경제 관계자는 사회과학원 교수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인데, 이 사람들은 실무자가 아닌 이론적인 것만 연구했습니다. 그러니까 별다른 고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무 일꾼들은 다릅니다. 제가 인터뷰 한 실무자들은 제 앞에서 하소연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기보다 원칙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고 “아, 이분들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해서 처벌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늘 “잘 된다”는 말만 하고, 북한 경제가 잘 안되는 원인에 대해서도 제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결국, 경제 관리들도 최고지도자의 지시에 따른 성과를 내기 위해서 무리한 정책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주민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고요. 박사님께는 “아무리 성과를 낸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신 것이 있나요?
[문성희] 예전에 기록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안변청년발전소’라고 불리던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매우 어려운 공사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동원된 군인 건설자들이 그 어려운 공사를 맡아 하는 것이었는데, 물속에 들어가 바위를 폭파한다든가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는데, 북한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북한 사람들의 입에서 “이번 건설에서 몇 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하면, “몇 명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희생이 나올까요. 첫째는 보잘것없는 장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로 해야 하는 일을 사람이 해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속도전이란 명목 아래 건설 공사를 지정된 시일 안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무리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완공이 되면 “이렇게 어려운 공사를 100일 안에 끝냈다”는 식으로 선전을 하는 겁니다. 고층 살림집 건설 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학생이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위험한 건설장에서 각종 사고로 사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를 그런 어려운 건설 현장에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는 당국자에게 뇌물이나 돈을 주고 건설 동원을 피한다고 합니다. 이런 점은 제가 생각해도 좀 너무하다 싶습니다.
손재주 좋은 북한 노동자 , 경쟁력 있는 상품 만들어
[기자] 북한의 인조 눈썹과 가발 등이 북한의 주력 수출 상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는데요. 주로 북한 어디에서 이를 생산하는 건가요?
[문성희] 일반적으로 국영공장에서 제조하지 않고, 아마도 개인적으로 가내 수공업을 통해 생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대량으로 수출하게 되면 국영 공장이 생길 거라고 보는데, 지금은 가내수공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저고리치마 같은 것도 가정주부들이 가내수공업으로 제조해서 팔고 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북한에서 액세서리(치렛거리)나 머리핀, 작은 화장품 가방 같은 것도 수출하거나 상점 등에서 선물용으로 파는데 이것도 대부분 가정주부가 집에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북한 여성들은 고등중학교에서 재봉이나 요리 등을 기본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모두 솜씨가 좋기 때문에 아마도 인조 눈썹, 가발 같은 것도 주부들이 돈을 받고 집에서 만들 겁니다.

[기자] 중국에서 인조 눈썹과 가발 등을 많이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 시장이 크다는 것이고, 북한 제품이 좋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북한 제품의 질이 꽤 좋은 모양입니다.
[문성희] 인조 눈썹이나 가발 등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일본 등에서도 인기 상품입니다. 저는 아직 써 보지 않았지만, 이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지요. 예를 들어 암 투병을 하면서 항암제를 쓰는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없기 때문에 가발이 필요하지요. 저도 요즘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가발로 보충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인조 눈썹은 중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입장에서 중국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인조 눈썹과 가발 등이 매우 중요한 수출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북한 사람들의 손재주가 매우 좋기 때문에 질이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중요한 경쟁력입니다.
[기자] 지난 시간에도 말씀하셨지만, 북한의 노동력이 우수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큰데요.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북한 노동자의 우수성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성희] 북한 노동자의 가장 큰 장점은 순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왜 중요하냐면 다른 나라들에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없다는 겁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에 대해 큰 불만을 갖지 않고 정해진 일을 묵묵히 합니다. 물론 속으로는 불만이 있다고 해도 이를 고용주에게 요구하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이란 나라 자체가 한 가정이고, 그 가정의 행복을 위해 모두가 주어진 일을 한다고 교양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고등학교까지 졸업하는데, 고등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시한 대로 충실히 상품을 만듭니다.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 지식도 있어서 공장에 가면 컴퓨터를 다루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10대 또는 2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장점이지요.
다만 , 아쉬운 점은 창의력과 욕심이 없다는 겁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정해진 일은 열심히, 또 완벽하게 하는데 그 이상 무언가를 주장한다든가, '이렇게 바꾸면 상품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상품을 새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등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말하는 노동자가 없습니다. 또 '돈을 많이 벌자', '출세를 하자' 등의 욕심도 없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만들어 내는 측면은 덜하다고 봅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