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와인∙위스키 수입 증가 , 외국인 받아들인다는 신호일 수도
[기자] 문성희 박사님. 한국 통일부 자료와 언론 보도를 보면, 김정은 정권이 대북제재 국면에도 여전히 사치품을 많이 들여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국 해관총서 자료를 보면 올해 와인과 위스키 등 주류 수입도 사상 최대규모라고 하는데요. 우선 박사님께서 북한에서 경험하신 사치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문성희] 북한에도 고급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있습니다 . 그곳에 가면 소위 사치품이라 할 수 있는 상품들을 많이 팔고 있지요. 외국산 위스키나 와인 등도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외국 대사관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거리에 있는 상점을 일명 '대사관상점'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도 외국제 와인이나 일본제 청주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 간부들이 이것을 사서 마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중견 간부들과 만나 식사할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제가 술을 갖고 가서 마셨습니다. 북한 상점에서 술을 구매해 가져가는 방식이었죠. 최소한 안내원들은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제가 사준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마시는 값싼 소주가 기본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간부들도 와인이나 위스키보다 평양 소주를 더 좋아했습니다. 또 제가 소규모 식사를 할 때는 의외로 북한산 맥주나 소주 등이 나온 기억밖에 없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연회 등에 참석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는데, 과거 김정일 위원장이 참석한 연회 사진을 보면 고급 위스키나 와인 등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다른 나라 연회에서도 볼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에 특별히 북한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급 상점에서 외제품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아마 이곳을 이용하는 계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 간부나 정부 관리들이라고 해서 그런 사치품을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기자] 오히려 북한 간부들이나 주민들이 맥주나 소주를 더 즐겨 먹었다는 경험담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올해 북한이 최대 규모로 수입한 와인과 위스키는 어디에서 소비하는 걸까요?
[문성희]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북한 간 부들은 제가 와인이나 위스키 등을 가져가면 함께 마시기는 하지만 , 자기들끼리 마시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이 사상 최대규모의 와인과 위스키를 수입했다고 하는데, 저도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합니다. 몇 가지 추론해 보면, 첫째는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나 해외 동포들이 소비할 수 있죠. 저도 북한에 있을 때 일본 맥주나 외국산 와인을 사서 마셨습니다. 평양여관 각 층에는 찻집 겸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여러 종류의 외국산 술을 팔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칵테일 같은 것을 만드는 접대원도 있을 정도입니다. 따라서 와인과 위스키 등의 수입이 사상 최대라는 것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를 풀고 북한이 개방 쪽으로 가는 신호가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이제 북한이 외국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돈주처럼 돈을 가진 사람들이 구매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위스키나 와인 중에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싼 것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와인과 위스키라는 것만으로 이를 사치품이라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수입한 사치품 중 일부 시장 흘러가기도
[기자] 보통 북한에서 사치품은 김정은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사치품이 북한 내부에서 다시 팔리는 경제적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수익을 창출한다든지 말입니다.
[문성희] 북한의 어느 기관에서 수입하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 기관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연회를 열거나 간부 또는 주민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수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역회사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면 이는 상점 등에서 팔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겠죠. 장사꾼들이 이것을 산 뒤 다른 곳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데 당연히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적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사치품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시 술로 예를 들면, 최소한 제가 접한 일반 주민은 와인이나 위스키 등을 별로 즐기지 않았습니다. 대동강맥주나 평양소주를 마른 명태나 땅콩 등을 안주 삼아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제가 이탈리안 식당에 가서 와인을 주문하려 해도 "그런 비싼 술은 주문하지 말라"고 말릴 정도였으니까요. 술은 잘 모르겠지만, 외국 담배는 시장에 흘러 들어가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미국산 담배 등은 시장에서 인기가 많아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술도 그런 식으로 시장에 흘러 들어갈 수도 있을 겁니다.
[기자] 이전에는 북한이 일본에서도 사치품을 많이 들여오지 않았습니까. 일본 내 가족이나 친척 등을 통해 사치품을 조달한 적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다 금지됐죠?
[문성희] 네.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대북 무역을 일절 금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에서 일본 제품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있다고 해도, 그것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북한에 들어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총련계 상사 등을 통해 일본 제품이 북한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북한의 대표적 외화상점인 '낙원백화점'에서 일본 제품을 많이 팔고 있었고, 그 안에는 사치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급술이나 담배 같은 것은 재일 동포들이 선물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특히 '낙원백화점' 등에서 파는 상품들은 아마도 북한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낙원백화점'이 생겼을 당시 귀국 동포들이나 당 간부 등 북한에서 비교적 잘 사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자] ‘사치품 수입 금지’라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에도 북한은 여전히 사치품을 들여가고 있습니다. 해상 밀수를 통해서도 그렇고요. 앞으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한 사치품 조달은 계속될 것 같은데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문성희] 유엔 대북제재가 계속되는 한 북한이 일본 등 다른 나라에 사치품을 들여올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러시아나 중국도 북한에 사치품을 수출하는 것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또 사치품의 규정이 어떻게 되는 지도 명확하지 않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술의 경우 비싼 것으로부터 싼 것까지 가격에서 천차만별입니다. 제가 2011년에 북한에 갔을 때도 헤네시(Hennessy)로 하이볼을 만들어 팔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북한이 주문만 한다면 술을 비롯한 사치품도 쉽게 들여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