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압축파일] “내맘대로 결혼도 못해 ‘사실혼’ 증가”
2024.09.17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북한 남녀 중 신분 차이로 혼인신고 못하는 ‘사실혼’ 많아”
[기자] 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최근(8일)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는데요.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북한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북한에서는 결혼 제도가 어떻게 되나요?
[김일혁] 제약이 많이 따르죠. 북한에서는 출신 성분에 따라 진행되는 결혼식이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직접 결혼 결정을 못하거든요. 북한은 아직 보수적인 성향이 많이 남아 있어서, 부모들이 안 된다고 하면 결혼을 못하는데, 부모들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고, 이유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안전한가’를 따집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신분적인 문제를 ‘토대’라고 이야기합니다. 핵심 계층인가, 일반 계층인가, 아니면 타도 계층인가를 제일 먼저 따지거든요. ‘타도 계층’이라는 건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걸림돌이 되는 가문을 말합니다. 타도 계층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일제 시기 때 땅을 좀 많이 가지고 있었다던가, 공장을 가지고 있다던가, 잘 사는 사람들의 가문은 다 친일파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친일 성향이 있으면 토대가 걸리고, 6.25 전쟁 때 월남한 가문도 타도 계급이라고 하고, 또 체제를 비난하거나 정부에 반항하는 발언을 해서 정치범으로 몰리고 집안 누군가가 정치범으로 잡혀간 가문은 다 타도 계급이 되거든요. 그래서 (부모가) 반대를 하죠.
[기자] 김일혁 씨가 탈북 당시 아내가 임신한 상황이어서 더욱 위험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서둘러 탈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러한 결혼 제약과 관련이 있었나요?
[김일혁] 저 같은 경우에는 노동자 계급이었고 제 와이프(아내)는 농민 계급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들이 반대를 엄청 많이 했죠. 저희가 처음에 연애로 만나서 결혼 관계까지 발전했는데,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한다 해도 북한 체제에서 만들어 놓은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저도 와이프와 똑같은 농민 계급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피하기 위해 혼인신고와 결혼식을 안 했죠. 결국, 저와 제 와이프가 가출을 했고, 동거하면서 개별적으로 장사해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 와이프의 신분을 농민 계급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세탁한 후에 정식으로 혼인 신고도 하고 결혼식도 하려고 마음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조용히 살면서 당 간부, 안전원과 보위원, 그리고 당 일꾼 등에게 뇌물을 줬습니다. 이 사람들이 눈을 감아줌과 동시에 서류상으로 아내가 농민이 아니라 처음부터 노동자 계급이었다는 위조 문건을 만들어서 절차를 밟았고, 그게 완성돼가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 2022년에 ‘실질적으로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야하는 인력이 모자라 농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라는 말과 함께 김정은의 방침이 내려왔거든요. 10년 전인 2012년부터 지금까지 농민 계급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신분 세탁을 한 사람들을 모두 다, 그러니까 여자가 그랬다면 그 남편과 자식까지, 또 남자가 그랬다면 아내나 그 집안 가문을 전부 농장원 신분으로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그렇게 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촌 인력을 보강하라는 취지의 방침을 내린 겁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던 당 간부들이 “너희가 3년 동안 혼인신고를 안 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 처벌로 3년 간 교화소를 갔다 와야 된다. 그런데 내가 그 죄를 덮어줄 테니 이 시각부터 너와 나는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대신 저희가 그 동네를 떠나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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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부부’ 증가로 사실혼 처벌도 강화”
[기자]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북한 남녀가 많은가요? 실정이 어떻습니까?
[김일혁] 네, 많았습니다. 북한에는 또 이런 상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어려우니까 돈을 벌려고 나갑니다. 그런데 한국처럼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최소한 한 달에서 일 년 정도를 밖에 나가서 나그네처럼 사는 거예요. 예를 들어, 금 광산에 가서 인부로 일을 한동안 해주고 거기서 받은 품삯을 모아 일 년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밖에 나와서 외로우니까 ‘8.3 부부’라고도 하는데, 가정이 있는 남편과 아내가 일시적으로 가정으로 묶여 사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이혼도 하고, (새로) 혼인 신고도 해야 하는데, 밖에 나가서 마음에 있는 사람과 살다가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하고 만나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거예요. 그러다가 살인 사건도 많이 생기고, 불법도 많이 저지르는데, 대개 가정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일에 많이 연루되더라고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법조 체계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이런 지침이 내려오면 전반적으로 다 피해를 보는 겁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순수하게 처녀와 총각이 만났지만, 우리도 혼인신고를 안 했으니까 사실혼으로 간주돼서 피해를 보는 거죠.
[기자] 그렇군요.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소감을 전해듣고 오늘 방송 마무리 하겠습니다. 한국에서의 결혼식, 어떠셨나요?
[김일혁]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반반이라고 봐도 되는데, 정말 감동적이고, ‘자유가 좋긴 좋구나’ 싶었습니다. 선진국에서 결혼식을 하니까 재미있고 매 순간 놀라고, 북한에서 말하던 ‘지상낙원’을 실제로 제가 보고 있는 거예요. 북한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결혼을 못하고 사는 부부가 엄청 많아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인 거죠. 온 동네를 며칠 간 먹여 살려야 되거든요. 한 100kg짜리 돼지를 두세 마리 잡아야 하고, 닭도 몇 마리를 잡아야 되는 거고 하니까 (금전적으로) 엄청난 거죠. 제가 북한에서 여러 상황 때문에 결혼을 못 하고 왔지만, 한국에 와서 결혼해보니까, (북한에서) 결혼을 안 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 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북한의 결혼 제도와 결혼에 따르는 제약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