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2024년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역점 사업인 '지방발전 20x10' 정책.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그동안 위성사진을 통해 20개 시군에 조성 중인 공장 부지와 건물 등을 추적해 왔습니다.
각 지역에 건설한 공장 외관 공사는 대부분 마무리됐지만, 내부 설비와 전력, 원자재 공급에 이은 실제 가동 여부는 확실치 않아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일 년간 ‘지방 발전 20x10’ 정책을 분석해 온 천소람 기자가 20개 지역의 공사 진척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지방 발전 20x10’ 정책 첫해, “반은 성공, 반은 실패”
앞으로 10년에 걸쳐 매년 북한 내 20개 시군에 현대식 공장을 건설하고, 지역 간 불균형을 극복해 지방 주민의 생활 수준을 향상하겠다는 목적으로 진행 중인 ‘지방 발전 20x10’ 정책.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정책 시행 첫해인 2024년 한 해 동안 20개 지역의 공장 건설 현황을 위성사진으로 비교∙분석해 왔습니다.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Planet Labs)’가 촬영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20개 지역의 공사 진행 상황은 대부분 비슷한 속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물 지붕을 포함한 공장의 외관은 거의 완성됐으며, 주변 정리에서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방 발전 20x10’ 정책을 함께 분석해 온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일 RFA에 “첫해의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공장 외관을 완공하고, 주민들의 생필품과 식량 등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일차적으로 갖췄다는 점에서는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생산 설비와 전력, 원료 공급 문제로 공장 가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에 ‘반은 실패했다’는 겁니다.
[김혁] 공장 건물을 외형적으로는 완공했기 때문에 기반은 조성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측면이고, 성공적인 요인으로 볼 수 있고요. 그러다 보니 북한이 이번에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 성과적으로 끝났다’라고 발표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첫해부터 생산하려면 원료가 공급돼야 합니다. 현재 원료 기지에서 생산하는 양으로 과연 충족할 수 있을까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실패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공장 부지는 물품 창고와 경비실, 크고 작은 부속 건물 외에 식료품 공장, 일용품 공장, 옷 공장, 종이 공장 등으로 조성됩니다.
또 일용품 공장에서는 플라스틱 제품을 포함해 그릇, 치약, 칫솔 등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생필품을 만들고, 식료품 공장에서는 된장, 간장, 식용유 등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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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발전 정책 시행 전 ∙후의 모습은?... 공장 부지 뚜렷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첫 삽을 뜨며 지방 발전 정책의 시작을 알렸던 북한 평안남도 성천군.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 6월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공업단지가 들어설 곳에 21개 동의 온실농장이 보입니다. 하지만 지방 발전 정책이 시작된 올해 2월에는 21개 동 온실 중 14개 동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신규 공업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또 지난 11월 21일 촬영된 위성사진에 따르면 건물 외관 공사와 함께 주변 도로 정비까지 완료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 총비서가 전날(20일)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으며, 기름∙간장∙된장∙빵∙비누 생산 시설 등을 둘러봤습니다.
양강도 김형직군도 지난 1월 10일에 촬영된 위성사진에는 공장 부지에 10채가 넘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지난 10월 30일에는 이 건물 대신 파란색 지붕의 공장들이 식별됐습니다. 공장 부지를 관통하는 도로 정비도 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자강도 동신군과 강원도 고산군의 공장 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1월 8일에 촬영한 자강도 동신군 위성사진에는 파란색 지붕의 새 건물이 뚜렷하게 식별되는데, 세 동으로 추정되는 공장 건물은 지붕과 외관 공사를 마쳤고, 주변 정비도 끝낸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도 고산군도 새로 지은 흰색 건물과 함께 도로망 시설 정비까지 마친 모습이 식별됩니다. 완공된 지방 공업 단지의 모습입니다.
김혁 선임연구원은 20개 지역에서 대부분 비슷한 수준으로 공장을 완공했지만, 특히 양강도 김형직군과 강원도 고산군, 자강도 동신군 등이 건물 외관 공사와 함께 주변 정리까지 끝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진척이 더딘 지역도 있습니다.
‘플래닛랩스’가 지난 11월 15일에 촬영한 평안북도 구성시를 보면, 과거 평지였던 곳에 공장 건물이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부지 내에 아직 건설 자재의 흔적이 보이고, 주변 도로망은 정비 중입니다.
황해북도 연탄군에도 논밭이 있던 자리에 새 공장이 들어섰는데, 지난 11월 23일에 촬영된 위성사진에 따르면 공장 앞쪽은 도로 정비까지 말끔히 끝낸 반면, 뒤쪽은 정리가 덜된 모습을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혁] 황해북도 연탄군, 그리고 구성시가 생각보다 정리가 안 돼 있습니다.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지 않고, 건물만 올라갔습니다. 주변 정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로 보여서, 이 지역들이 늦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 밖의 다른 지역도 건물 외관만 완공한 채, 도로망 정비와 부지 정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같은 모습은 12월 말 현재까지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또 ‘플래닛랩스’가 지난 11월 12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온실 농장과 논밭이 있던 개성시 장풍군에도 새 공장 부지가 조성됐으며, 강원도 이천군, 남포시 온천군, 함경북도 경성군, 황해북도 은파군에도 논밭을 갈아엎고 대신 공장을 건설한 모습이 확인됩니다.
하지만 건물 외관만 완공됐을 뿐 아직 주변 정리나 도로망 정비 진행 중으로 파악됐습니다.

“건축 자재 조달 문제, 수해, 추가 과제 등으로 공사 지연”
김혁 선임연구원은 이처럼 많은 지역에서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이유로 자재 수급의 어려움을 꼽았습니다.
예를 들어 도로망을 깔기 위해서는 시멘트가 필요한데, 조달이 쉽지 않았을 거란 지적입니다.
실제로 양강도의 내부 소식통은 최근 RFA에, 지난 여름에 발생한 수해가 지방 공장 건설에 걸림돌이 됐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 소식통은 “김형직군의 경우 7월 말에 입은 압록강 수해로 철길이 많이 파괴돼 건설 자재를 제때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라며, “8월 말에야 철길 복구를 마쳤는데, 이번에는 시멘트를 수해 복구에 우선적으로 돌리게 되면서 전반적인 건설 일정이 늦춰지게 됐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김 총비서가 지난 8월, 추가로 건설을 지시한 종합병원과 양곡 시설, 과학기술 보급 거점 시설 등도 지방 공장 건설 역량을 분산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양강도 소식통은 “김정은 총비서가 종합병원과 양곡관리소, 과학기술교육관을 추가로 건설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추가 철근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김혁] (기존 과제도) 자재부터 시작해서 인력까지 필요한 상황인데 여기에 추가로 종합병원, 양곡관리소, 과학기술교육관 등을 더 얹은 거잖아요. 건설 과정에서 역량이 이쪽으로 다 분산될 거잖아요. 이로 인해 공장 건설도 상당히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다른 지역에 필요한 건설 역량을 또 추가 과제에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추가 과제가) 건설을 지연시키는 결과로 이어진 거죠.
“공장 외형만 보여주는 수준에서 마무리 가능성”
위성사진으로 살펴본 것처럼 20개 지역의 공장 건물 외관은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 설비까지 모두 갖췄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러시아를 통해 설비 물자를 조달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설비를 갖추고 (내부) 정리가 다 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김 선임연구원의 평가입니다.
[김혁] 대표적으로 기계 설비를 먼저 공급한 지역에서 가동되는 모습을 먼저 소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내부망을 다 보여주지는 않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공장 외형만 보여주는 수준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판단됩니다.
김 총비서는 지난 20일 성천군 공장 준공식 연설에서 “현대적인 새 공장들을 이 고장의 주인들에게 안겨주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지방 인민들에게 항상 송구했던 마음도 다소 풀리는 것만 같다”라고 말했지만, 모든 공장을 가동했다는 보도는 아직 없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도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장을 세우는 것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실패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습니다.
[리정호] 김정은이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20개 지역을 선정해 현대식 지방공장을 세워 지방 경제의 자립적 영향력을 갖추겠다고 했는데요. 이 구상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북한에서는 어떠한 현대식 공장이 들어선다 해도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100년이 지나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지방 발전은 시장경제 도입을 통해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20x10정책’도 북한 경제 실패의 또 다른 사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12월 말로 예정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11차 전원회의에서 경제 부문의 주요 성과로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 언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공장 건물 완공이라는 외형적 성과 뒤에 남아 있는 원료와 전력 공급, 실질적인 가동 등의 숙제를 북한 당국이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