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지방 발전 20x10’ 정책, 또 실패 사례로 남을 것”
2024.11.28
“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사실상 북한 지방에 공장이나 병원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있는 지방 공장과 병원을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면 얼마든지 잘 운영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지방 발전 정책은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했지만, 진행과 중단을 반복하다 김정은 시대에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제시한 지방 발전 정책의 핵심은 “북한 어디에서든 똑같이 충족하고 문명하게 살게 하는 것”인데요. 이는 김정은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입니다.
“북한의 지방 발전 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공장을 세우는 것을 넘어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혁신적으로 개혁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방 발전 정책이 실패를 반복했듯이 김정은 시대에도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공장 경영의 자율성,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효율적인 운영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20x10정책’도 북한 경제 실패의 또 다른 사례로 남게 될 것이란 지적입니다.
국가 균형 발전, 지방 역량 강화로 정치적 정당성 확보 목적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최근 지방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지방 발전 정책을 거듭 강조하고, 올해 추진하는 20개 현장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위성사진을 통해 20개 지역을 꾸준히 추적해 왔는데요. 어느 정도 외관은 완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모든 건설을 완공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전망합니다. 우선 김정은 총비서가 ‘지방 발전 20x10’ 정책을 내세우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리정호] 네. 그 이유는 수도 평양과 지방 간의 격차, 도시와 농촌 간의 발전 수준 차이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는 지방 주민들이 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요. 정치적 안정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북한 정권은 지난날 수도 평양을 "조선의 심장"으로 부르며 도시 개발에 집중해 왔습니다. 현대적 거리 조성과 아파트 건설, 전력과 통신 등 대부분 국가적 자원을 수도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에 따라 평양은 지방에 비해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했습니다. 또 지하철과 버스를 비롯한 교통망도 지방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구축돼 있죠. 또 평양에는 많은 대학과 의료시설, 예술극장, 유흥시설들, 인민대학습당 등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요소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반면, 지방 발전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지방 발전 정책이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닙니다. 이 정책은 과거 김일성 시대부터 쭉 이어져 오다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중단됐습니다. 최근 김정은 정권이 제시한 지방 발전 정책의 핵심은 “수도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산골 마을에서 살든 똑같이 사회주의 시책하에서 충족하고 문명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책은 국가의 균형 발전과 지방의 자립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김정은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북한에서는 김일성 시대부터 지방 발전 정책을 펼쳐왔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리정호] 북한에서 지방 산업을 발전시킬 것에 대한 역사는 1962년 8월 김일성이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지방당 및 경제 일꾼 연석회의를 소집해 진행한 ‘창성연속회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회의에서 김일성은 ‘지방공업과 농촌경리의 발전’ 문제를 논의했고, 그것이 북한 정권의 지방 발전 전략으로서 60여 년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산을 낀 지방은 산을 이용하고, 바다를 낀 지방은 바다를 이용해 지방 경제를 발전시키라고 했습니다. 특히 지방의 특산물을 중심으로 시, 군마다 각종 공업품, 식료품 생산 공장을 갖추고 지방이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방산업 발전은 전쟁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하면서 “모든 지방에 생산 기지들을 합리적으로 배치해서 전쟁의 복잡한 환경에서도 국방과 경제 건설, 그리고 인민 생활의 물질적 수요를 잘 보장해야 한다”고 교시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는 각 도 인민위원회에 지방 산업국이 있었고요. 모든 도 소재지와 시, 군에 식료 공장, 빵 공장, 생활필수품 공장들을 수천 개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 어머니도 1970년대에 빵 공장을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가동을 멈추다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대부분 붕괴했죠. 이는 계획 경제체제의 비효율성과 전력 부족, 원자재 부족 등의 이유였습니다. 결국,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과 같이 영토와 인구,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에서 시군마다 공장을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낭비입니다.
지방 발전 정책, 비효율적인 계획 경제로 실패 반복
[기자] 그렇다면 김일성이 제시한 지방산업 발전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리정호] 북한의 지방산업 발전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 체제의 구조적 한계 때문입니다. 지방의 산업 공장들은 국가계획위원회와 각 도의 계획에 따라 운영됐고, 기업들의 자율적인 생산을 최적화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즉, 모든 지방 공장은 국가가 정한 생산 목표와 공급 계획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장경제 논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이러한 경제 구조는 생산 동기를 떨어뜨리고, 혁신과 경쟁의 부재를 초래하며 손실을 내게 하죠.
또 지방산업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전력과 원자재, 연료 등의 만성적인 부족이었습니다. 지방 공장에는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 생산이 중단되거나 계획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앙에서 원자재를 분배하는 체계가 경직되거나 비효율적이었고, 지방 공장들은 필수적인 자재를 적시에 공급받지 못해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류와 기계 가동에 필요한 연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지방 공장들은 점점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게다가 지방 공장은 내각과 도 인민위원회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따라야 했고, 생산된 제품은 국가가 정한 계획에 따라 배분했는데, 이는 품질을 저하시키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 지방 공장의 지배인과 당비서들은 경영 능력보다는 정치적 요건에 따라 임명됐고, 그들은 공장 운영의 효율성보다는 상급 기관의 지시를 따르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와 같은 요인들이 과거 수십 년간 북한 정권의 지방산업 발전 정책을 실패로 이끈 원인입니다.
[기자] ‘지방 발전 20x10’ 정책의 목표와 취지는 그럴듯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지방에 공장과 병원 등을 새로 지어도 과연 기능과 역할을 다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분위기가 팽배한 것 같습니다.
[리정호] 네. 지적하신 대로 이런 회의적인 시각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지방에 공장과 병원을 새로 건설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지금 북한의 계획 경제 체제에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사실상 북한 지방에 공장이나 병원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있는 지방 공장과 병원을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면 얼마든지 잘 운영할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는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데요. 지방에 공장이나 병원을 새로 지어도, 자율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의 생산과 운영 계획에 따라 통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공장은 국가에서 원자재, 전력, 연료 등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가동이 중단되고, 병원 역시 약품과 의료 장비가 공급되지 않으면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현재 있는 시, 군 병원들도 약과 의료 설비가 부족하고 전기마저 보장되지 않는 실정인데요. 과거의 사례를 보면, 많은 지방 공장과 병원이 처음에는 "사회주의 건설의 상징적 성과"로 선전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능을 잃고 방치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경제 제도를 개혁하지 않는 이상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북한에서 오랫동안 정책 실패의 반복을 목격한 경험자로서, 이런 한계가 극복되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한 목표를 내세운 정책이라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관련 기사>
북 지방공업공장, 골조∙외관 마무리 단계
북 ‘지방발전 20x10 정책’ 이행 지역별 편차 심해
지방 발전 정책, 경제 구조 혁신해야 성공
[기자] 또 북한 매체 보도의 특징을 보면, 김 총비서가 방문한 현장의 건물 외관 모습만 비출 뿐, 내부의 모습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완공할 것에 대한 목표만 제시하고 있는데요. 평양종합병원도 그랬죠. 외관은 그럴듯한데, 내부는 어떻게 됐는지 모릅니다. 결국, 보여주기식 껍데기 공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을까요. 또 공장과 병원 등에 기계와 설비 등은 어떻게 채울 수 있습니까?
[리정호] 현재까지 김정은 정권에서 이뤄진 건설 공사들은 보여주기식 껍데기 공사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매체가 외관만 강조하고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실질적인 운영 준비의 부족과 연관이 깊습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건설 사업들은 주로 체제 선전과 지도력 과시의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건물 외관의 화려함과 완공 목표 시한을 강조하는 것은 대내외적으로 김정은의 업적과 사회주의 체제의 성과를 선전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또 북한은 공장의 내부 시설이나 실제 운영 상태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내부 설비가 완비되지 않았거나, 완성됐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말씀하신 평양종합병원도 외관 공사가 빠르게 진행됐지만, 이후 내부 설비와 의료 자원의 부족으로 운영 여부조차 불확실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북한은 기계 설비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부품을 들여와 자체 제작을 시도하는데요. 하지만 외화 자금의 부족으로 최신 기술을 적용한 설비를 확보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는 공장과 병원의 설비가 구식이거나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자] 대표님에 따르면 결국, 김정은 정권의 ‘지방 발전 20x10정책’은 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 같은데요.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지 한 번 더 짚어주시겠습니까?
[리정호] 네. 북한의 지방 발전 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공장을 세우는 것을 넘어 중앙집권적 계획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해야 합니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공장 경영의 자율성,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한 효율적인 운영 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 정책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겁니다. 김정은이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20개 지역을 선정해 현대식 지방공장을 세워 지방 경제의 자립적 영향력을 갖추겠다고 했는데요. 이 구상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북한에서는 어떠한 현대식 공장이 들어선다 해도 경제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100년이 지나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지방 발전은 시장경제 도입을 통해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20x10정책’도 북한 경제 실패의 또 다른 사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난 25일에는 김정은이 함경남도 신포의 바닷가 양식사업소 건설 현장을 찾아 “지방들에서 자체의 자연 부원, 경제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 자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사실상 이런 바다 양식장은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개인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고, 민간 기업이 운영하게 하면 그들도 한국 양식장처럼 잘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지도자가 직접 나서서 하는 경제 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올해 김정은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한 ‘지방 발전 20x10’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