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아사드 붕괴 ‘모르쇠’ 일관… “북러 관계에 영향” 관측도
2025.01.23

앵커: 북한의 오랜 동맹국 중 하나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시리아(수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53년 만인 지난 12월 8일에 붕괴한 이후 북한은 한 달이 넘도록 공식적인 입장 표명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충격을 받은 김정은 정권이 체제 안정을 위해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던 아사드 정권이 붕괴함에 따라 북러 관계에 대한 새로운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아사드 정권 전날까지 보도했는데… 한 달 넘게 북 매체 ‘침묵’
2024년 12월 7일, 시리아(수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기 하루 전, 북한 관영 매체는 시리아 상황에 대해 마지막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시리아의 반테러 작전 성과를 상세히 알리면서, “수리아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테러분자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했다”라고 전했습니다.
또 통신은 “수리아 정부군이 알레포와 이들리브에서 400여 명의 외국인 테러분자들을 제거하고, 여러 지휘 센터와 탄약고를 파괴했다”라고도 보도했습니다.
또 같은 날 러시아 상임대표가 유엔에서 “미국이 수리아 동북부 지역을 불법 점령하고 자원을 약탈한 '후안무치한 행위'를 강력히 규탄했다”라고 북한 매체는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날인 12월 8일, 아사드 정권은 결국 붕괴했습니다. 아사드 정권은 반군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무너졌고, 아사드 대통령은 러시아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정권에 유리한 상황을 보도했던 북한의 언론 매체는 지금까지 시리아 상황을 일절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북한 매체가 시리아를 언급한 보도는 단 한 건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지난 1월 6일 자 노동신문 6면에 나온 ‘미국은 평화의 주적이다. 지난해의 중동정세 흐름을 놓고”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그 내용도 시리아 정권의 붕괴를 다룬 것이 아니라, 지난해 4월에 발생한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관에 대한 이스라엘 공습 사건과 미국, 이스라엘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리아 내 혼란 상황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미국,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따른 지역 갈등을 지적하면서, 중동 지역 불안정의 원인을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와 이스라엘의 군사 활동 때문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이처럼 아사드 정권이 붕괴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북한이 전혀 이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국의 불안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미국 ‘군비통제비확산센터’(Center for Arms Control and Non-Proliferation)의 숀 로스커(Shawn Rostker) 연구 분석가는 2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아사드 정권 붕괴에 대한 북한의 침묵은, 불편한 진실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해석했습니다.
로스커 연구원은 “북한과 같은 독재정권은 강력함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러시아와 같은 주요 강대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의 독재자가 몰락하는 모습을 인정한다면, 체제의 안정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독재 정권은 국내외적으로 누구에게나, 체제가 전복되고 지도자가 교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을 꺼린다는 겁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한 리정호 코리아 번영개발센터 대표도 최근 중동의 독재자 아사드 정권의 몰락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을 것이라며, 북한 내부에서도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리정호]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아사드는 1971년에 집권해 2000년에 사망했고, 이후 바샤르가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이 가문은 53년간 독재와 폭압 통치로 권력을 유지하다 몰락했습니다. 김정은도 아사드처럼 권력을 3대 세습한 독재자입니다. 김씨 가문은 80여 년간 폭압 통치로 인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 왔습니다. 독재자 아사드의 몰락은 ‘폭정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역사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아사드의 몰락을 보면서 더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를 만들려 할 것이며, 북한의 엘리트들은 김씨 정권에 계속 충성해야 할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독재자와 엘리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도 북한 당국이 시리아 사태를 보며, ‘우리는 그렇게 당하지 않을까’라고 우려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그(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로 북한은 시리아에 대해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가 1974년에 김일성 주석을 만나 독재 정치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리아의 독재 정치 체제는 사실상 김일성 주석의 체제를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이 현재 가장 주시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시리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마키노 기자는 “북한 입장에서 가장 중요시하고 신뢰해 온 시리아 정권이 무너지면서, 앞으로 북한과 시리아가 연계된 무기나 핵 개발 관련 사안들이 하나둘씩 드러날 가능성에 대해 북한은 매우 민감하게 주시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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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러시아 한계 드러내… 북러 관계에 교훈”
RFA가 북한 노동신문 보도를 분석해 본 결과,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시리아’를 언급한 기사의 빈도에서 차이를 보였습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79번과 80번으로, 시리아에 대해 안정적으로 보도하며 시리아 내 정세와 북한의 외교적 입장을 일관되게 다뤘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에 54번으로 감소했다가 2023년에는 86번으로 증가했고, 2024년에는 183번으로 급증했는데, 불안한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의 정치적 변동성이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보도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아사드 정권이 붕괴한 이후로는 '시리아' 언급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로스커 연구원은 시리아 정권의 붕괴가, 동맹국을 보호하는 러시아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는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북러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시리아의 독재 정권이 결국 무너진 것은, 최근 러시아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북한에 ‘거래에 기반한 동맹의 취약성’을 상기시키는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그는 북한이 여전히 미국을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북한의 외교 정책에 큰 전환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북러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균열은 새로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드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라며, “김정은이 러시아와 관계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작지만, 러시아에 대한 신뢰에 의구심이 커지면, 미국이 전략적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고, 신중한 접근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로스터 연구원은 관측했습니다.
다만, 북한이 시리아의 교훈을 정책에 반영할지는 아직 미지수이고, 아사드 정권의 붕괴만으로 김 총비서가 대화와 협상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도 작지만, 북한 당국의 장기 전략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8일 발표한 '시리아의 화학무기 및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현안’ 보고서에서 “2024년 12월 8일, 바샤르 알아사드의 시리아 정부가 하야트타흐리르알샴 (Hay’at Tahrir al Sham, HTS) 연합의 무장 공격으로 붕괴했으며, 새로운 정부는 시리아의 화학 및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물려받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보고서는 미국이 시리아의 화학 및 핵무기 잔재를 찾아 안전하게 파괴하는 데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며,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와 미 국무부는 긴급 확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기금과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시리아와 북한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며 국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국제 사회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두 나라 모두 국제기구의 감시와 조사를 받았고, 정치적 고립과 경제 제재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가 두 나라에 대해, 화학 및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고 관련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