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② ‘상유정책 하유대책’…시장은 계속된다
202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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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당국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수록 주민들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기 위해 개인 집이나 길거리에 몰래 매대를 폅니다. 북한에서 공식 시장 외에 비공식 시장이 확산한 이유인데요.
김정은 정권이 사회 질서와 경제적 통제권을 되찾기 위해 시장을 강력히 단속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뇌물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데요.
[RFA 특집, 위축되는 북한 시장] 두 번째 순서로 북한 시장 통제의 핵심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주민과 당국의 입장은 무엇이 다른지 서혜준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국가 기준 충족해 장사할 사람 얼마나 되겠나”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 그는 북한에서 다양한 장사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김 씨는 개인 집 창고에서 물건을 파는 매탁 장사도 해봤는데, 검열 대상에 오르지 않기 위해 상업관리소에 자릿세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공식적으로 몰래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그는 전했습니다.
실제로 국가 규정상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은 45세가 넘은 기혼 여성이어야 하고, 상업관리소의 판매원으로 등록돼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해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김일혁]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는 규정상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 집 안에 짓는 매대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업 신고도 해야 되고, 판매 허가도 받아야 됩니다. 그냥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데, 그냥 하다가 검열에 걸리면 엄청난 벌금을 물거나 심한 경우 단련소까지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시장 관리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시장 관리자들이 지역을 바꿔 검열을 나가는 ‘교방 검열’이 있을 때도 북한 주민들은 뇌물을 줬는데, 그렇게 하면 교방 검열이 있는 날짜와 시간까지 알 수 있고, 그때만 장사를 접었다가 검열자들이 철수했을 때 장사를 재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일혁] 그 구역 내에 관리하는 법 계통의 사람들과 안면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 바닥에서는 다 그렇게 알고 지내야 범죄자 취급을 안 하니까요. 또 그래야 본인(관리자)들도 먹고 살아요. (관리자들이) 가끔 좀 괴롭혀요. 괴롭힐 때마다 뒷돈을 줍니다. 그럼 그렇게 받아먹고 그냥 눈을 감아줘요. 뇌물이면 다 됩니다. 그래서 규정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북한 시장은 주로 네 종류의 공식⋅비공식 시장으로 나뉩니다.
국가에 사업 등록을 하고 매대를 구매해 장사하는 ‘공식 시장’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개인 집 뒤뜰 창고에서 물건을 파는 ‘매탁 시장’, 골목 바닥에 물건을 펴놓고 장사하는 ‘골목 시장’, 그리고 주로 번화가에서 장사하다 단속이 나오면 급히 철수하는 ‘메뚜기 시장’ 등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공식 시장보다 비공식 시장이 더 많고 활성화한 이유는, 합법적으로 장사하려면 국가가 책정한 가격으로 특정 품목만 취급해야 하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요즘 북한 시장에는 중국산 제품이 많이 줄었습니다. 또 가공품, 공업품들이 많이 줄고, 개인이 생산한 농축산물이 주로 거래되면서 시장 분위기도 확 바뀌었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는 최근(11월 2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시장관리소에 소속된 당원들이 장마당 관리에 대한 생활총화를 통해 서로 감시하기 때문에 시장 검열이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리정호] (김정일 정권 당시) ‘지금 우리 국가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 인민들에게 필요한 상품 공급을 제대로 못 한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장마당을 임시적인 공간으로 규정하고, 주민들에게 식량을 제대로 배급한 뒤 상품이 넉넉해지면 시장을 다 없앤다는 거예요.
국가 배급이 끊기고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허용한 시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결국 이를 통제하기 위해 국가의 감시와 통제가 더욱 강화했다는 겁니다.
[리정호] (시장에서) 자유로운 판매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한 감시와 통제 체계가 이뤄졌습니다. 또 (시장 활동을) 자본주의 온상이 자라날 수 있는 요소로 보기 때문에 통제를 엄격히 하라는 방침이 보위부와 안전부에 계속 내려갔습니다.

시장 통제 급했던 김정은 정권… 빈부 격차는 더 심해져
정은이 한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11월 21일) RFA에,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시장 운영과 관련해 국가의 통제가 필요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관점에서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제멋대로인 시장 활동을 엄격히 단속해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라는 겁니다.
[정은이] 좀 더 국가다운 국가, (시장을) 관리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려고 하는 과도기에 (북한이) 코로나를 이용했고, 그런 과정이 현재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개인들이 시장 활동을 할 수 있으나 국가에 법적으로 등록하고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민들은 따로 뇌물을 바치지 않아도 국가에 등록이 되면 일정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임송 한국은행 북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도 최근(11월 29일) RFA에 “북한 당국의 입장에서는 통제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이는 국가가 재정 수입을 확충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임송] 재정 수입을 확충하는 건 어느 국가나 다 필요한 거고, 한국의 경우에도 한 10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정책이 있었어요. 탈세, 탈법으로 세금을 안 내려는 걸 다 찾아서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하는 정책이었는데, 아마도 그것과 유사한 식으로 (북한도) 지금 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장 통제 정책이 장사로 먹고사는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일혁 씨는 국가가 통제한 물건을 몰래 판매할 경우, 부르는 게 값이 되면서 정작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식량이나 생필품이 비싸게 팔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일혁] 상황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은 돈을 벌었지만, 소비자들이 가장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한 거죠. 왜냐하면 값이 오르잖아요. 판매를 금지한 물품을 감춰놓고 파니까 내 마음대로 값을 조정할 수 있거든요. 소비자들은 필요하고 꼭 써야 하는 제품인데, 들어오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러니까 소비자들이 많이 고생하고 힘든 상황이 되는 거죠.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국가가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을수록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들의 말을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우리 취재 협조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양 시민들과 간부들을 뺀 일반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점점 평등해지고 있다. 그러나 수준은 가난해지고 있다.”
RFA가 접촉한 북한 신의주의 한 현지 소식통도 시장 활동의 위축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토로하면서 “주민들이 살기 바빠 불법이 난무하고,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 방식이 생겨나면서 빈부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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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시장 통제… 그래도 안 없어질 것
[리정호] 북한 주민에게 시장은 삶의 터전이죠. 사람들이 많이 교류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정보도 공유하게 되고, 또 우리나라(북한) 물건보다 외국제 물건이 더 좋다는 걸 느끼잖아요. 장마당을 통해서 북한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한국이나 중국이 우리보다 잘 산다는 걸 다 사람들이 체감하게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시장 경제가 좋다’, ‘개방이 좋다’라는 걸 느끼죠.
‘상유정책 하유대책’,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말처럼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가 강화하면서 주민들은 뇌물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장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장을 통제하려는 북한 당국의 노력이 과연 지속 가능할 지도 미지수입니다.
지금의 무분별한 단속과 통제가 북한 시장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 사회와 경제에 혼란을 주면서 주민들의 삶을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김일혁] 제가 탈북하기 전에도 공개 총살을 많이 했는데요. 하나같이 사기 치다 붙잡힌 사람들, 먹고 살기 위해서 도둑질하고 강도질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국가에서 강도를 만드는 거예요. 북한 주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거죠.
[리정호] 나라도 피폐해지고, 인민도 피폐해지는 결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죠. 자신의 삶의 터전이 통제받으니까, 국가도 손해를 보잖아요. 특히나 북한 같은 계획 경제 시스템은 어느 하나가 부러지면 연쇄적으로 돌아가지 못한단 말이에요. 아무리 김정은 정권이 시장을 통제하려 해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어떤 성과를 내놓지 않는 한 시장은 영원하지 않겠나...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