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7월 30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입니다. 유엔은 지난 2000년 '유엔 인신매매 방지(TIP) 의정서'를 채택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 여성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사고 팔리고 있습니다.
북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을 전면 부인하는 북한 당국으로 인해 북한 여성들은 여전히 인신매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을 맞아 북한 여성들이 인신매매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문제의 실상을 서혜준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 인신매매 방지 위해 북 여성들에게 '인신매매' 개념 알려야"
[ 이병림] 북한에는 성추행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여기 와서 보면 성추행을 성추행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그럴 수 있다'라며 거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당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왜 나한테 인권 유린인지 생각을 못하고 살고 있어요.
지난 10일,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미 의회에서 증언한 탈북민 이병림 씨. 그는 고난의 행군 시절, 화폐 개혁으로 더욱 살기 힘들어진 북한을 탈출해 지난 2010년 한국에 정착했고 북한 여성들의 인권 침해 실상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행사 후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여성들이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인권’이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이병림] 북한에는 여자의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고 봐야 되는 거예요. (여성들이) 너무 무지몽매하게 살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고, 그들이 벌어야 가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되는 거예요.
탈북여성단체 ‘통일맘연합회’의 김정아 대표도 탈북을 결심한 북한 여성들이 필요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브로커, 즉 중개인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인신매매로 팔려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 김정아] 돈이 없다 하면 그때는 (브로커가) "인신매매로 넘어갈 거야. 그 돈 거기 가서 살면서 갚아야 돼"라고 하는 거죠. (피해자는) "네, 일해서 갚겠습니다" 하는데, 저쪽 너머 (중국에서)의 상황을 모르니까 일해서 갚겠다고 하는 거죠. 저도 그랬어요. 우리가 '인신매매'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돈을 빌려서 넘어가면, 가서 일을 해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여기서부터 엄청난 착오가 생기는 거예요.
돈을 갚기 위해 인신매매로 팔려가면,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값은 중국 남성과의 강제 결혼이라는 것을 모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입니다.
김 대표는 한국에 정착하고 처음 들은 ‘성추행’, ‘성희롱’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 김정아] 북한에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가 많아요. 그래서 '성추행',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데 몇년 걸렸어요. 그걸 말하는 한국 여자들이 다 이상한 줄 알았어요. (탈북한 지) 한 5년이 지나야 어느 정도 단어들을 이해했습니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 단어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북한은 폐쇄 지역이고 오로지 자신들의 언어만 쓰거든요. 저는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도 한국 와서 처음 들었어요.
그는 탈북민 사회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런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자가 된 약 100명의 탈북 여성들을 취재한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교수는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속혀서 왔다”, 즉 속아서 중국으로 팔려왔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고 전했습니다.
[ 강동완] 사실 많은 북한의 여성들이 중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소, 돼지보다 조금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데 그게 짐승과 다를 바 있나요?" 라는 절규를 들었습니다.
그는 25일 RFA에, 2015년부터 지난 9년간 인신매매 피해 탈북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북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고 최근에는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는 인신매매 피해 여성들이 북송될 위험이 커졌다고 우려했습니다.
[ 강동완]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나 또 남북관계를 염두에 두고,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들을 체포해서 북송한다는 게 최근의 두드러진 움직임인 것 같고, 이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신변이 불안정합니다. 지금까지는 중국 공안들이 (이들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아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의 양상은 체포해서 북송시키려고 하는 게 아주 중요한 변화인 것 같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신매매 실태 보고서’는 올해도 북한을 최하위인 3등급(Tier 3) 국가로 지정했습니다.
2003년 처음 3등급을 받은 북한은 올해로 22년 연속으로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이 인신매매 예방이나 인신매매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보고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궁핍은 북한 주민들이 탈북하도록 만들며, 그들이 탈출해 도착한 국가에서 인신매매를 당할 위험을 높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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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피해자로 끝나지 않는 인신매매 문제의 여파
북한 여성들이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피해자가 되면서, 이로 인한 2차 피해가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동완 교수는 어린 나이에 팔린 북한 여성들은 중국에서 강제 결혼으로 얻은 자녀 때문에 한국이나 제3 국으로 탈출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14살 된 딸과 엄마가 함께 인신매매 피해자가 된 사연을 전했습니다.
[ 강동완] 엄마는 A라는 마을에 팔렸고 딸은 B라는 마을에 팔렸는데 7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났죠. 왜냐하면 엄마가 팔려간 집에 남편이 사망을 합니다. 남편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렵죠. 그런데 브로커가 이 엄마를 다시 판 겁니다. 딸이 사는 마을에 판 거죠. 그래서 엄마가 딸에게 "우리도 이제 남한에 가자"라고 제안을 하는데 딸이 "나는 갈 수 없다. 엄마 혼자 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헤어진 그 딸이 엄마가 되어있던 겁니다. 어린 딸을 데리고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엄마를 버려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이와 관련해 김정아 대표는 중국에서 인신매매 피해자로 살아가면서 자녀를 낳은 사람들은 자녀와의 이별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 여성들은 불합리하게 당한 인신매매보다도 오로지 엄마로서 아이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강제 결혼으로 꾸린 가정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김정아] 한국으로 온 탈북민들 중에 중국 남편하고 함께 한 사람들은 그나마 가정을 지켰잖아요. 지켰지만, 시작이 인신매매라는 건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만 아는 아픔인 거죠. 중국, 한국, 북한 출생이 한 집안에 있으면 우리 자신들이 겪은 아픔과 정신적 트라우마보다 눈앞에 보여지는 가족의 구성에 대한 아픔이 더 커요. 차라리 국제 결혼이라면 대물림하고 상관없는 문제인데, 이건 시작이 인신매매예요. 인신매매라는 주홍글씨가 가정에 박혀있는 건데, 아이들이 크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피할 수 없는 문제거든요. 반면 중국 남편이 한국에 같이 안 오고 혼자 온 사람들은 자녀와 분리되는 아픔을 겪는 거죠.
한국 상담심리학회의 오은경 상담심리전문가는 23일 RFA과의 통화에서, 여러 차례 인신매매로 팔려간 피해자들은 제3국에 정착하더라도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생활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 오은경] 인신매매를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말 당한 사람들이 있어요. 탈북 후 같은 말을 쓰는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돌봐줘서 그런 사람을 믿고 따랐던 한 사람의 사례가 있어요. 잠깐 돌봐줬을 뿐 결국에는 그 사람을 다시 팔았거든요. 상대가 브로커였던 거죠. 결국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라는 것이 많이 망가졌고 그런 것들은 사실 제3국이든 다른 곳이든 정착해서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아주 큰 알러지 반응과 같이 됩니다.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면 정서 조절이나 집중의 어려움 또는 사람에 대한 불신감, 적대적 태도,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어떤 철회적 증상 이런 것들이 일상생활까지 위협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과거와 비교했을 때 북한 여성들의 인권 상황이 개선된 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김정아 대표는 “개선된 점이 없다”며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성적 피해자라는 것을 드러내면 달라지는 사회적 시선이 북한 여성들이 이 문제를 직면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을 보호할 구조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김정아] 여성은 신체적으로 약자가 될 수밖에 없고, 신체적 약자가 피해를 겪었을 때는 그게 어떤 국가든간에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이 문제를 두고 피해자들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트라우마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 거죠.
또 “북한의 정책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인신매매 문제를 포함한 북한 여성들의 심각한 인권 상황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한편, 북한은 인신매매 문제 제기와 인권 개선 촉구에 대해 반발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포함한 5명의 유엔 특별보고관들은 북한 여성과 여아가 강제 결혼과 성적 착취 등을 목적으로 중국으로 팔려간 정황에 대해 북한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반공화국 정치 도발”이라며 유엔 인권 전문가들의 서한 내용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북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심각한 인신매매 상황을 언급하며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유엔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소수의 국가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