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탈북 여성이 그렇듯이 최윤희 씨도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간 뒤 인신매매범에 의해 중국 벽지 농촌 총각에게 팔려 갔습니다.
곤경에 처한 탈북여성들을 돕는 비정부기구단체인 은총의 손길 (HAND OF GRACE)의 한은숙 씨는 2007년 여름 윤희 씨를 처음 만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윤희 씨는 당시 간염을 앓고 있는데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막 탈북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한은숙(NGO): 얼굴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검었는데 커다란 반점 같은 게 많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얼굴 색깔이 너무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까 간염.. 근데 그때는 아무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였어요. 굉장히 불안하고 이 눈동자 움직임이 굉장히 빠르고 표정이 너무 불안해하고 그랬어요.
1997년 윤희 씨의 남편은 그녀와 아들을 남겨 둔 채 굶어 죽었습니다. 북한의 한 지방 공장에서 일하다 공장마저 문을 닫자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먹는 날보다 굶은 날이 많았던 이들 모자의 단 한 가지 소원은 배불리 한번 먹어봤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국경 근처에 사는 친척에게서 두만강을 넘으면 먹을 것도 있고 일자리도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2003년 12월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윤희 씨는 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배고픔을 면하려고 건넜던 강은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해 만난 거칠게 생긴 한 중년남자가 그들 모자를 택시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갈 때만 해도 자신이 인신매매조직의 인질이 됐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녀는 결국 농촌 중국인에게 팔려갔습니다. 농촌 형편으로는 많은 돈을 들여 그녀 모자를 사들인 중국인 남편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HANDS OF GRACE의 한은숙 씨는 윤희 씨가 남편에게 머리를 많이 맞아 지금도 머리에 통증을 자주 느낀다고 말합니다.
한은숙: 말을 해서 그 말을 못 알아들으면…. 당연히 못 알아 듣죠 말이 다르니까 못 알아들으면 막 신경질을 내고 머리를 그렇게 많이 때렸다고 그래요, 머리를 너무 때려서 지금도 그 통증이 몸이 피곤하거나 그러면 머리에 통증이 온다고 그래요 머리를 그렇게 유난히 많이 때리고 .. 이제 뭐 밖에서 그릇 가져와라 그럴 때 그 발음(중국)이 꼭 열쇠와 비슷해서 열쇠를 가져다주면 그 열쇠로 막 머리를 때리고 그 단어를 빨리빨리 배우려고 애썼지만,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 맞는 경우가 많았고요.
구타나 학대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인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엔 전처소생의 큰아들마저 자신을 성적으로 괴롭히는 일이었습니다.
한은숙: 밖에 나가면 방에 들어왔다…. 그 정도로 말했어요. 얼굴 표현이 도저히 말로 못하는…. 남편이 없으면 방에 들어왔다…. 더는 말을 못했어요. 그리고는 자기 입으로는 말 못하겠다…. 그 부분에 가서는 저도 울분이 나서 같이 붙들고 막 울었어요….
차마 인간으로서 겪지 못할 그런 모멸을 당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 집 식구들이나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쳐다보는 눈빛이었습니다.
한은숙: 와서 그냥 저쪽 여자가 어떻게 생겼나 와서 보고 행동하는 거 뭐…. 그런 거 보고 킥킥대고 웃고…. 말도 못하니까 움직이는 모든 행동을 보고 구경하듯이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 또 보러 오고 이렇게 동네 사람 친척 사람… 꼭 자기 느낌이 그랬대요, 이건 완전히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구나.. 나를 그런 식으로 그런 눈초리로 보는구나 하고 그렇게 느꼈다고 해요.
탈북여성들이 일단 팔려 다니기 시작하면 인간대접은 없습니다. 탈북자 출신 방송인 김춘애 씨는 자신이 직접 인신매매를 겪었던 장본인으로 인간이 아닌 돼지로 불리고 짐승가격에 팔리었던 기억을 지금도 아프게 지니고 삽니다.
김춘애: 그래서 탈북여성들이 건너만 오면 흰 돼지 몇 미리 왔느냐…. 그러니까 북한 여성들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돼지, 짐승으로 취급하거든요, 우리 집에는 흰 돼지가 두 마리 있어, 세 마리 있어 뭐…. 또 오늘 저녁에 흰 돼지가 몇 마리 넘어오기로 했는데 기다린다는 둥 자기네들끼리 그런 말로 통하더라고요….
지난 5월 중국 북한 접경지역에서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현장을 취재했던 탈북자출신 방송인 정영기자 역시 소 한 마리 가격에 팔려 다니는 뼈아픈 북한 여성들의 처참한 실태를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정영: 북한의 인신매매범들은 여성 한 명을 넘기는 대가로 중국 쪽 인신매매단으로부터 중국 돈 1,000원에서 2,000원, 미화로 150에서 300달러를 받는 격입니다. 중국 국경지역에서 북여성들을 넘겨받는 인신매매조직들은 여성 한 명당 중국 돈 3,000원에서 5,000원씩 넘겨받아 내륙지방 인신매매단에 중국 돈 8,000원에서 1만 원가량에 팔아 버립니다. 그러니까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데요, 탈북여성들이 돼지나 소 한 마리 가격에 팔리는 셈입니다.
북한여성들이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팔려 다니면서도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가족, 자식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본능적인 애착 때문입니다.
한은숙: 자기가 그렇게 사는 이유가 오직 아들, 아들 때문에 살았지 아들이 없었으면 자기가 정말 어디 가서 죽었거나 어디를 길도 모르고 갈 줄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고 그런 절망 상태에 있었는데 오직 사는 희망이 아들이었다고 그래요.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라는 시를 써서 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한 탈북자 출신 시인 장진성 씨는 북한 주민들에게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 그것마저 없었다면 북한엔 아무 희망이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진성: 사람들 만나서 물어보게 되면 이렇게 빵 하나 생기고 그러면 자꾸 죽은 아버지가 생각나고 그런 가족애, 인간성…. 정말 그것들이 몸부림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그것마저 없었으면요. 북한 주민들은 지금…. 북한 땅은 야만의 세상이 됐겠죠.
지금 이 가족을 지탱하고 먹여 살리고 온몸으로 그 무게를 지탱하는 이들이 바로 북한 여성들입니다. 자신이 중국 돈 4,500위안 정도, 미화로 650달러 정도에 팔렸다고 뒷날 추측을 하는 최윤희 씨가 정말 막다른 골목으로 느끼는 것은 짐승대접도 사람취급 못 받는 것보다 돌아갈 곳, 내 나라라고 부를 곳이 없다는 절망감입니다.
한은숙: 다시 돌아가자니 더는 자기 나라가 아니고 돌아가면 이제 끝장이죠, 돌아갈 수도 없고 여기서 살자니 인간대접을 못 받고 자신은 아무 곳에도 소속이 없고 자기 나라가 없다 그런 식으로 표현했어요.
굶주림 때문에 국경을 넘은 사람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이들이 마음 놓고 발붙일 땅은 없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벽지 농촌에서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두들겨 맞고 그 모습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탈북여성들은 부르짖습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저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돼지도 원숭이도 아닙니다…
RFA 특별기획 ‘잃어 버린 꿈-고난의 행군은 계속되고 있다’ 제 1부 ‘나도 사람입니다 – 흰 돼지도 원숭이도 아닙니다.’ 편이었습니다. 내일은 2부 ‘ 무너지는 가족 –가족을 잃고 또다시 절망하는 탈북여성들’ 편을 보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