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탈북난민 100명 시대 ①] 탈북자는 왜 미국행을 선택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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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북한인권법 제정이후 미국에 입국한 탈북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 올해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에 정착한 탈북난민 100명 시대를 맞아 그들의 삶과 희망을 조명해보는 특별 기획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탈북자들이 어려서부터 '철전지 원수의 나라'로 알았던 미국을 선택하기까지 과정에 대해 알아봅니다.

정영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건넌 두만강. 탈북자들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중국에서 배고픈 고생은 면할 수 있어도 삶을 펼 수 있는 안전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중국을 벗어나기 위한 탈중(脫中)을 감행합니다. 이 가운데는 한국에 가는 탈북자도 있고, 미국행을 택하는 탈북자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철전지 원수'의 나라로 알았던 미국을 탈북자들이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와 미국행을 시도했던 여러 탈북자들, 그리고 그들을 도왔던 미국 정부 산하 난민처리 실무 관계자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서부에 위치한 버지니아 주의 어느 한 도시. 이곳에 살고 있는 김금화(50대 여성)씨는 2년 전 두 딸과 함께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그가 미국에 대한 정보를 얻은 도문감옥은 중국 공안이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기 전에 구금하는 곳입니다. 김 씨는 거기서 함께 수감됐던 동료 탈북자로부터 미국정부가 탈북자들을 받아들인다는 정보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김금화

: 그때 우리가 처음부터 여기로 오기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때는 미국에서 탈북자들을 받는다는 법(북한인권법)이 나오기 전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가 북송되었어요. 그러다가 세 번째 중국 도문 변방 감옥에 붙잡혔을 때 미국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때 같이 갇혀있던 한 아주머니가 ‘미국 정부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받는다, 새벽 2시에 비밀 방송이 나오는데 자기 이력을 쭉 쓰고 팩스로 보내라, 그러면 도와준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 씨는 한국에 가려던 당초 계획을 바꾸고 감옥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 선교사에게 이 정보를 알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중국 감옥에서 석방되어 미국에 돌아온 뒤, 미국정부에 그들 모녀의 희망을 전했고, 중국에 있는 유엔난민기구에서 김 씨네 가족을 돕도록 힘써주었습니다. 중국 모처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산하 비밀 아지트에서 약 1년간의 심사를 마친 뒤, 김 씨는 두 딸과 함께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태국 주재 미국대사관이 주선하는 보호시설에서 미국행을 기다리는 탈북자 김철민 씨도 이왕 고향을 떠난 몸인데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싶다고 말합니다.

김철민

: 정확히 말해서 미국 가면 정착금도 없다. 한국 통역원이 말해주는 게 ‘당신들은 한국에 가면 더 좋겠는데 왜 미국에 가려고 하는가’라고 계속 물어보는 거지요. 그래서 난 ‘이왕 같은 고생을 할 바에는 미국 땅에 가서 벌고 싶다. 사람이 생각이 중요하지 않는가, 우리가 말도 모르는 중국에서도 살아왔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미국에 가서도 살겠다’라고 하니까, 오케이, 하면서 면담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태국에서 3년 동안 미국행을 시도하다 결국 포기하고 현재 서울시 노원구에 정착한 박건하(40대)씨는 중국에서 미국의 대북방송을 듣고 미국행 정보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박건하

: 중국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말하더라고요. 우리가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다르고 그러다보니까, 미국에 대한 공경심이 생겼습니다. (미국에 대한 정보는)기본적으로 라디오를 통해서 많이 들었어요.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서 들었어요. 동북지방에 자유아시아방송이 잘 들립니다. 새벽에 두 시간인가...

중국 연길에 살던 박 씨 가족은 일단 미국행을 결심하고 중국에 있는 미국공관을 찾아 떠났습니다. 중국 천진을 거쳐 상해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을 찾아갔지만, 경비가 심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박건하

: 미국에 가겠다고 떠난 것이 2003년 4월이었습니다. 처음에 중국 천진에 갔다가, 없어서 상해에 갔습니다. 며칠을 고생해서 미국 총영사관을 찾았습니다. 그때 당시 이라크 전쟁 때였고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되어서 영사관은 2m이상 되는 담장 위에 참대를 4m정도를 보강해서 담장 높이가 거의 6m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높이 쌓은 담장에 철갑모를 쓴 무장경찰대가 서있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렇게 미국 영사관 진입에 실패한 박 씨 부부는 제3국을 거쳐 미국에 갈 수도 있다는 정보를 얻고 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아내를 끌고 라오스 국경을 넘는 과정은 한편의 소설과 같았습니다.

박건하

: 우리가 라오스 국경까지 가는데 5시간 갈 거리를 5일 동안 걸어갔습니다. 그때 사스 때문에 국경 도로에 초소가 3개씩이나 생겨 걸어서 5일 동안 갔습니다. 라오스에서 걸어 태국 치앙콩까지 보름을 걸었어요.

당시 태국과 베트남 등지에 사스가 발생해 중국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에 박 씨 부부는 근 20여 일 동안 깊은 산속을 헤치며 걸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태국 방콕까지 도착한 이들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찾아가 미국에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박 씨의 안내를 맡았던 미국 국방부 소속 난민지원본부의 루실 리 씨는 미국행을 원하는 탈북자 심사는 대략 세 가지 단계에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루실 리

: 모두 세단계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일 먼저 한국 대사관에서 직접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탈북자들을 직접 심사하던 분들이어서 잘 압니다. 그리고 그걸 통과하면 두 번째로 미 국방부 소속 OPE(난민지원센터)라는 곳에서 인터뷰를 합니다. 북한에서 나온 이유가 뭔지, 모든 가족관계들을 적고요, 세 번째로 모든 문건이 정리되면 미국 이민국에서 나온 담당관이 난민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루실 리 씨는 탈북자가 미국에 가기를 원한다고 해서 다 수락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미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대상은 테러분자나, 스파이 목적을 가지고 입국하는 위장 난민이라고 루실 리 씨는 말합니다.

루실 리

: 미국에서는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하지 않나요. 우선 이분이 스파이 목적을 가지고 오는지, 테러를 하려고 오는 사람인지를 가려내는 것이지요.

한편, 한국에 먼저 정착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재탈북하는 탈북자들도 있어 이런 사람들을 갈라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루실 리

: 그리고 한국에 먼저 들어왔다가 다시 미국에 들어오려고 하는지를 갈라내야 합니다. 한국에 한번 들어왔으면 난민 지위가 그만인데 다시 북한에서 나온 것처럼 가장하고 다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대사관에 의뢰를 합니다.

미국정부는 탈북자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한국정부에 신원조회를 의뢰하고 1차 면접을 한국 대사관 심의관들이 진행하도록 합니다. 1대 1 면접을 통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이 최종 확인되면 탈북자들은 미국 난민절차를 밟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 난민심사는 빠르면 1년, 어떤 경우에는 3년 이상 걸립니다. 심사 기간이 길기 때문에 미국행을 택했던 탈북자들은 중도에서 포기하고 한국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미국행을 접고 한국에 입국한 박 씨 아내의 말입니다.

박 씨 아내

: 2004년 9월 인터뷰를 같이 했어요. 그때 유엔난민수용소에서 한국 신문을 봤는데, ‘북한인권법’이 나오려면 3~5년 동안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난민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 봤는데, 용돈도 없고 제가 너무 어려운 것이에요. 그래서 난 못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우리 신랑은 미국에 가겠다고 죽어도 가겠다고 고집 썼어요. 그래도 나는 한국에 왔습니다.

미국 난민심사 기간 탈북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습니다. 탈북자들은 미국정부가 제공하는 시설에서 난민 구제금으로 조달되는 비용으로 숙식을 해결하게 됩니다.

태국 방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들어갔던 김철민 씨도 미국에 가겠다고 의사를 밝히자, 미국 대사관으로 신병이 넘어가 거기서 제공하는 시설에서 생활했습니다.

김철민

: 내가 제일 처음 태국 방콕에 가서 뛰어 들어간 곳은 유엔 기구였습니다.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미국에 가겠다고 하니까, 미국 대사관에서 인계받았습니다. ‘난 더 갈 데도 없고, 그래서 미국에 가려고 한다’고 하니까, 호텔에 데려 갔습니다. 그 다음부터 호텔 생활했지요, 거기서 1년 7개월 동안 숙식 다 보장해주었습니다.

미국행에 대한 탈북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브로커들도 있습니다.

김철민

: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대부분에 와서 브로커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미국에 가려면 100만원(한화)을 달라, 그러면 미국에 보내주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데 돈이 전혀 드는 게 없고요.

대신 미국으로 오는 항공료는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난민 심사기관에서는 탈북자들에게 항공료를 할부, 즉 기간을 나눠 갚아야 한다는 서류에 서명하게 한 다음 난민심사를 마칩니다.

미국에 도착한 탈북자들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하며, 보통 1년이 지나면 미국 영주권을 발급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