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유럽 체제변혁 20년, 현장을 가다]④ 죽음 재촉한 차우셰스쿠의 ‘김일성 따라하기’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1989년 구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 20주년을 맞아 동유럽 국가의 체제변혁 현장을 둘러보는 특집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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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국가의 공산주의 독재 청산과 자본주의, 민주주의 안착을 위한 20년간 노력의 현장,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시민 혁명을 부른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김일성 따라하기를 루마니아 현지에서 박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지난 8일(현지 시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1983년 북한의 주석궁을 본떠 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건물입니다. 높이만 85 미터에 가로, 세로가 각각 270 미터, 240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가 시야를 압도합니다.

관광 안내인을 따라 계단을 오르자 차우셰스쿠가 손님을 맞기 위해 만든 대형 연회장이 나타납니다. 루마니아산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을 따라 역시 루마니아산 흰색 대리석 계단이 연회장 양쪽 끝에서 서로 마주보며 서 있습니다. 오른쪽 계단은 차우셰스쿠, 왼쪽 계단은 그의 아내인 엘레나의 전용으로 설계됐습니다. 차우셰스쿠 부부에게 가장 적합한 높이를 맞추느라 수 차례 계단을 만들었다 부수기를 반복했다고 관광 안내인은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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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가 북한의 주석궁을 본따 짓기 시작했다는 인민문화궁전. RFA PHOTO/ 박정우

차우셰스쿠만 사용하도록 설계됐다는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다른 넓은 연회장이 나타납니다. 이 곳은 천장의 무늬가 대리석 바닥에 그대로 반사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천장에 그려진 문양을 색색의 천연 대리석을 이용해 바닥에 똑같이 새겨 넣었기 때문입니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건물 안에서 작업해야 했다고 안내인은 말합니다. 너무 크고 무거워 바깥에서 만들어 옮겨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우셰스쿠는 이 화려한 궁전에서 살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건물이 채 완공되기도 전에 권력에서 쫒겨났기 때문입니다. 1시간 가까이 건물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건물 전체의 5%도 채 못 본 셈이라고 안내원이 설명합니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북한의 김일성이 도입한 공산주의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독재자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대니얼 시롯 교수는 이를 ‘공산주의 아닌 공산주의’라고 설명합니다.

시롯 교수: 루마니아와 북한의 현실은 레닌, 스탈린 등이 주창한 공산주의식 이상주의와 거리가 먼 데요,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은 한 가족에 권력을 집중적으로 부여했고 군주주의식 공산주의를 도입하려 했 습니다.

시롯 교수는 국민의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외부의 위협을 이유로 철권통치를 강화한 점도 두 독재자의 공통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시롯 교수는 차우셰스쿠가 김일성을 따라 배우려 시도한 점도 루마니아와 북한이 많은 공통점을 가진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시롯 교수: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습니다. 당시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이 수천, 수만 명을 동원해 벌인 집단 체조 등을 통해 북한의 질서, 깨끗함, 일사분란함 등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북한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죠.

흥미로운 점은 당시 루마니아 공산당의 개혁파 지도자로 차우셰스쿠와 매우 가까웠던 당시 이온 일리에스쿠 정치국 후보위원이 차우셰스쿠의 ‘북한 배우기’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상 실각하는 운명에 처한 사실입니다.

시롯 교수: 일리에스쿠는 당시 차우셰스쿠의 부인 엘레나와 함께 루마니아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루마니아는 북한과 역사나 문화도 다르고 해서 북한 방식을 도입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해서 엘레나의 질책을 받았죠. 물론 다른 이견도 있고 해서, 이후 일리에스쿠는 점차 권력에서 멀어집니다.

차우셰스쿠의 북한 따라하기에 반대했던 일리에스쿠는 차우셰스쿠가 권력에서 축출된 뒤 루마니아의 대통령에 오릅니다.

반면, 북한식 주체사상을 내세워 루마니아를 24년 간 통치했던 차우셰스쿠는 1989년 루마니아 국민의 전면적인 저항에 맞딱뜨립니다. 자유를 억압당하고 굶주려야 했던 루마니아 국민은 그해 말 혁명을 통해 독재자 부부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처형합니다.

부쿠레슈티 도심은 아직 당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구 공산당 당사 바로 옆 당시 비밀 경찰 본부가 있던 건물 외벽엔 아직도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거리에서 당시 혁명에 직접 참여했던 시민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23살 젊은 나이에 거리에서 온몸으로 혁명을 이뤄 낸 한 40대 남성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합니다.

40대 남성: 전 비록 어렸지만 혁명에 직접 참가했습니다. 당시 바로 저 앞에 탱크가 있었고 시민을 향해 총을 쐈습니다.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바로 이 곳에서도 시민들이 총에 맞았습니다. 맞은 편 건물에 총탄 자국이 보이죠?

역시 거리에서 만난 스또얀 아우구스틴 씨. 당시 36살이었던 스또얀 아우구스틴 씨는 긴 독재가 루마니아 국민을 거리로 내몰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아우구스틴 씨: 혁명은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신물이 난 시민들이 한꺼번에 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혁명의 막이 올랐죠.

이미 쉰을 훌쩍 넘긴 아우구스틴 씨는 혁명이 피로 물든 당시를 회상하면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아우구스틴 씨: 어느 순간 거리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시위대의 가장 앞 쪽에는 어린이가 있었는데 이들이 혁명의 첫번째 희생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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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레슈티 도심에 있는 혁명 영웅의 묘역에서 이름없는 희생자의 묘지를 돌보고 있는 70대 노파. RFA PHOTO/ 박정우

차우셰스쿠를 몰아낸 시민혁명의 중심지였던 구 루마니아 공산당 당사 앞 혁명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혁명의 희생자들이 잠든 희생자 묘역이 있습니다.

‘혁명 영웅의 묘역’으로 명명된 묘지에 들어서자 묘지 관리인이 친절하게 “현재 277명의 희생자가 이 곳에 잠들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관리인은 요즘은 외국 관광객이 더 많다고 덧붙입니다.

관리인: 한국, 일본 등 외국 관광객이 이 곳을 많이 다녀갑니다. 이 곳이 부쿠레슈티의 명소이기 때문이죠. 혁명 당시 정부군의 발포로 숨진 희생자는 생후 한 달짜리 갓난 아기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여기 묻힌 희생자는 대부분 20대 초반, 22, 23살 나이의 젊은이입니다.

관리인은 생후 한 달 만에 세상을 뜬, 가장 어린 ‘혁명의 영웅’이 잠든 곳으로 기자를 안내합니다. “외국 관광객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 흰 대리석으로 된 묘비에 걸린 사진 속에서 강보에 싸인 갓난 아기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묘지 한 켠에서 70대 노파와 마주칩니다. “희생자가 누구냐”고 묻자 노파는 이름없는 묘비를 가리킵니다.

노파: 묘지 건너편에 사는 데, 모든 희생자들이 묻히는 광경을 지켜봤죠. 그런데 희생자 8명이 신원을 찾지 못하고 여기 묻혔어요. 그래서 그 중 한 명의 묘지를 내가 돌보고 있어요. 희생자는 나이가 30살도 채 안된 젊은이라고 들었어요. 여기 묻힌 희생자 대부분이 젊은이예요.

노파는 이 날도 묘지를 둘러 보러 나왔다고 말합니다. 20년 가까이 이름없는 혁명의 영웅을 돌보는 노파의 포근한 마음이 묘지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을 따라 전해져 옵니다.

혁명의 영웅을 뒤로 하고 부쿠레슈티 시 외곽의 겐차 공동묘지로 향합니다. 1989년 국민의 손에 권좌에서 끌어내려져 처형당한 차우셰스쿠 부부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묘지를 가로질러 난 길을 따라 쭉 걸어 들어가니 바로 길 왼편에 묘지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다른 묘지와 달리 돌로 만든 덮개가 없이 묘지가 그냥 흙으로만 덮여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묘비를 보니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눈에 들어 옵니다.

묘지 관리인은 몇몇 소수의 차우셰스쿠 지지자만 가끔 이 곳을 찾는다고 말합니다.

묘지 관리인: 은퇴한 사람들로 이뤄진, ‘노동자 당’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그 단체에 소속된 차우셰스쿠의 지지자가 일주일에 두세 차례씩 이곳을 찾아 꽃을 두고 가곤 하죠. 하지만 관광객이 대부분이에요.

차우셰스쿠의 자녀들이 묘지를 옮기려고 했지만 허용되지 않았다고 관리인은 덧붙입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죽어서 함께 묻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부인 엘레나의 묘지는 길 건너편에 있습니다. 묘지 덮개는 물론 차우셰스쿠의 묘지에는 있는 돌로 된 묘비도 없어 더 초라해 보입니다. 묘지 관리인은 “엘레나가 차우셰스쿠보다 더 고약했다”고 나름의 이유를 듭니다.

시 외곽 공동묘지 한 켠에 들어선 차우셰스쿠 부부의 초라한 묘지에 독재자 부부가 북한의 주석궁을 본 떠 지었던 인민궁전이 투영됩니다. 북한의 김일성을 따라 배우려 했던 루마니아의 독재자 부부는 화려한 인민궁전 대신 초라한 공동 묘지에 갇혀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정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