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동유럽 체제변혁 20년, 현장을 가다] ⑤ 루마니아 ‘민주혁명정신 계승’ 노력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1989년 구소련을 포함한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 20주년을 맞아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 변혁 현장을 둘러보는 특집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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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지막 시간으로, 루마니아의 정부와 민간분야가 함께 나선 혁명정신 계승 노력을 루마니아 현지에서 박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루마니아의 국립 보위부 기록 연구 위원회(CNSAS)는 공산당 아래서 자행된 보위부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사찰에 관해 기록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특별법에 따라 1999년 설립됐습니다. 보위부 기록 연구 위원회의 출범은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과거사 청산을 위한 본격적인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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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공산당 아래서 자행된 정보기관의 사찰 기록을 조사해 공개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보위부 기록 연구 위원회 청사 입구에 전시된 사찰 도구들. RFA PHOTO/ 박성우

국가기관인 이 위원회는 과거 공산주의를 유지하던 첨병이었던 보위부를 포함한 정보기관이 루마니아 국민에게 자행한 각종 미행과 사찰, 협박 등 억압과 관련한 광범위한 기록을 조사, 연구한 뒤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현지 시간) 부쿠레슈티 시내의 보위부 기록 연구 위원회 청사에서 만난 드라고스 페트레스쿠 위원은 190만 건에 이르는 정보기관의 사찰 기록을 통해 루마니아 공산주의의 부끄러웠던 과거가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페트레스쿠 위원: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찰에 협력했던 사람들의 기록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협력의 대가로 해외로 나가기도 하고 돈을 받은 예도 있습니다. 물론 협박 탓에 마지못해 협력해야 했던 사례도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제야 왜 그 많은 판사와 검사, 지식인, 심지어 성직자가 협력해야 했는지 진실이 밝혀지는 셈입니다.

위원회는 이 기록을 조사한 뒤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첨병이었던 보위부에 협력했던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사안이 심각할 경우 단순히 명단을 공개해 도덕적인 책임을 묻는데 그치지 않고 법적 책임을 묻기도 한다고 페트레스쿠 위원은 덧붙입니다.

페트레스쿠 위원: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을 경우, 또 공산당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거나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을 보위부에 밀고했을 경우 위원회는 해당 인물을 제소할 수 있습니다.

위원회는 사찰 관련 기록을 일반 시민과 학계, 그리고 언론 등도 열람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원회의 활동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1999년에 설립됐지만 2005년에야 관련 기록 대부분을 넘겨받았기 때문입니다. 루마니아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과거 공산주의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서라고 페트레스쿠 위원은 설명합니다.

페트레스쿠 위원: 보위부의 사찰 기록은 1989년 혁명 직후 군에 이관됐다 새로 설치된 정보기관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2005년까지만 해도 위원회가 넘겨 받은 자료는 1만 건에 불과했습니다. 2005년 말이 돼서야 190만 건에 이르는 광범위한 자료를 넘겨받았습니다.

2006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보위부 기록 연구 위원회가 루마니아 정부 차원의 공산주의 독재 청산을 위한 노력이라면 ‘12월21일 혁명협회’는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과거사 청산 활동에 나선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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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정부에 혁명 진압과 관련한 기록을 공개하라며 66일째(10월8일 현재) 단식 중인 ‘ 12월21일 혁명협회’ 마리스 회장. RFA PHOTO/ 박성우

지난 8일(현지 시간). 부쿠레슈티 시내의 혁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테오도르 마리스 회장은 1989년 혁명 당시 시민들에게 발포를 명령한 책임자를 포함해 진압군과 관련된 기록을 공개하라며 66일째 단식 중입니다.

1천500 명이 넘는 죄없는 시민이 죽었지만 아직 발포 책임자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차우셰스쿠뿐 아니라 차우셰스쿠의 뒤를 이은 이에스쿠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합니다.

혁명협회는 이를 위해 혁명 당시의 정부 기록 문서를 공개하라고 루마니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관련 기록을 공개하길 거부하고 있는 루마니아 정부를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소했습니다.

이미 10개월 전 유럽 인권 재판소는 정부가 혁명 직후 관련자 1만2천 명을 조사한 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루마니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리스 회장은 루마니아 정부가 발포 책임자 처벌을 위한 첫 단계인 관련 기록을 공개할 때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을 결심을 내비칩니다. 그는 군대와 정당 등 아직도 루마니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당시 공산당 관련 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민간단체뿐 아니라 루마니아 언론도 공산주의 과거사 청산에 나서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최대 일간지 중 하나인 ‘저널 내셔널’은 차우셰스쿠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다뉴브 강을 몰래 건너 외국으로 탈출하려다 사망한 루마니아인의 슬픈 사연을 2005년 이후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혹은 자유를 찾아 다뉴브 강을 헤엄쳐 이웃 세르비아로 탈출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숨져간 수 천 명의 루마니아인의 가슴아픈 사연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널 내셔널의 마리나 콘스탄티노위 부국장은 처음 현장 취재를 위해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국경 다뉴브 강변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수 천 개의 이름없는 묘지가 강 변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노위 부국장: 다뉴브 강에 얽힌 이런 비극을 알고는 있었지만 희생자의 숫자가 이처럼 많은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히더군요.

콘스탄티노위 부국장은 당시 남편을 운전기사로 데려갈 정도로 개인 차원의 조사와 취재였지만 일단 보도가 시작되자 뜨거운 독자들의 반응에 다시 놀랐다고 말합니다.

첫 기사가 나간 뒤 정부 관련 기관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반대로 독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특히 다뉴브 강을 건너 탈출을 시도했다는 사실만 알 뿐 그 이후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있던 가족들은 신문사로 직접 찾아온 경우도 많았어요.

반면 무사히 다뉴브 강을 헤엄쳐 건너 지금은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에 정착해 살고 있는 많은 루마니아인들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고 콘스탄티노위 부국장은 덧붙입니다.

콘스탄티노위 부국장은 당시 다뉴브 강을 건너려던 루마니아인들에게 총격을 가한 루마니아 국경 수비대의 근무 일지를 포함해서 희생자와 관련된 기록 등 앞으로 밝혀져야 할 진실이 많이 남았다고 말합니다. 희생자 가족에 대한 보상과 정부의 사과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합입니다.

지난해 루마니아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그건 그냥 말로만 하는 비난에 불과해요. 대통령 산하 위원회가 제출한 공산주의 시절의 잘못을 모은 기록에도 다뉴브 강을 건너 탈출하려다 숨진 희생자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저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죠.

콘스탄티노위 부국장은 당시 루마니아와 세르비아 국경 지역의 다뉴브 강변을 직접 취재해 기사를 연재한 뒤에도 매년 두세 차례 기사를 통해 진실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금껏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시민의 힘으로 권력에서 끌어 내린 1989년 12월의 루마니아 혁명. 시민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독재자를 처형한 루마니아는 정부와 민간단체 그리고 언론 등 너나할 것 없이 그 혁명 정신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정우 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