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 기획 특집 (1) 내가 조총련을 떠난 이유

0:00 / 0:00

MC: 일본 내 재일동포들의 귀국사업과 생활 돕기, 전통문화 계승 등을 담당했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은 한때 많은 조직원과 자산, 동원력을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급격히 쇠락한 오늘날 조총련은 미래와 희망을 찾아볼 수 없고,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조직으로 전락했는데요, 그 배경에는 북한 정권이 지닌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신년 특집. <조총련의 몰락-북한 정권의 모순>

오늘 첫 번째 시간으로 <내가 조총련을 떠난 이유>, 보도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조총련 기획 특집 <1>, 내가 조총련을 떠난 이유!>
- 조총련 떠난 전직 중앙본부 간부
- 조총련의 성격과 의도 바뀌고, 낡은 체제에 부정부패까지
- 북한의 독재체제,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 모순에 직면
- 기대는 실망으로, 조총련 쇠퇴 속도 순식간
- 껍데기만 남은 조총련, 조직은 유지되겠지만, 미래와 희망은 없어


일본 제일의 상업도시, 오사카.

최근 자유아시아방송 기자가 찾은 오사카는 일본 고유의 전통 양식과 현대적 문화가 어우러진 모습인데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일본 내 조총련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내 소수민족으로서 권리를 옹호하고 문화를 계승하는 단체, 또 하나는 북한 노동당의 일본 지부라는 면모입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북한 독재체제의 모습의 부각되고 일본인 납치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조총련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나빠졌는데요, 실제로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도 많이 떠났습니다.

과거 조총련이 일본에서 최대의 동원력을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는데요, 갈수록 조총련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 도쿄와 오사카 현지의 분위기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기자는 오사카에서 과거 조총련 소속 간부, 김동호(가명)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기자가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전직 조총련 간부 김동호(가명)씨 -RFA PHOTO
자유아시아방송 기자가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 전직 조총련 간부 김동호(가명)씨 -RFA PHOTO (RFA PHOTO/노정민)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김동호 씨가 20대의 젊은 나이부터 조총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데에는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민족 고유의 소양을 계승하며 한반도의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사명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몸담은 조총련을 미련 없이 떠나게 된 이유는 북한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변질되고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데요, 김동호 씨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가명과 음성변조를 사용했습니다.)

[김동호] 조총련에 몸담으면서 '점점 조총련이라는 조직, 북한이라는 국가가 변절하고 있구나', 지난 시기의 이념은 어느새 사라지고 '결국 자기들이 먹고살기 위한 속물의 집단이 아닌가?'란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조총련이 재일동포 단체이고, 민간단체인데 어느새 색깔이 완전히 조선노동당의 세포조직, 그리고 재일 교포단체가 아닌 북한 노동당의 지시와 명령만 받고 그것으로 모든 판단 기준을 두고 활동하는 모습으로 변해갔죠.

무조건 노동당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고 이를 집행하는 가운데 일본의 현실과 재일동포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조총련의 모습에 동호 씨의 실망은 점점 커졌는데요, 조국과 민족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에도 갈등은 찾아왔습니다.

[김동호]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상 총화, 김일성의 교시 말씀을 인용해 자기 나름대로 사상과 생활을 돌이켜 보고 자신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이고, 극복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이런 것이 그 당시에 학습조라는 조선노동당의 세포조직이죠. 중앙 본부에서 한 달에 한 번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데, 매번 김일성의 말씀과 교시라는 기준에서 모든 것을 돌이켜보고 바로잡는 사고방식을 강요당하는 거죠. 처음에는 신선하고 나름대로 잘못된 것을 뉘우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지못해 할 수 없이 해야겠다는 식의 아주 지루한 시간과 공간으로 변해가죠.

그럼에도 조총련에 대한 동호 씨의 믿음은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1980~9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나 조총련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신뢰는 컸는데요,

하지만 동호 씨가 평양을 드나들며 접한 북한의 굶주린 현실, 그런 가운데 북한이 재일동포를 돈줄로만 보는 시각과 조총련 내 부정부패로 회의감만 쌓여갔습니다. 재일동포의 인권과 생활을 지키고 싶은 사명감에 조총련의 일을 시작했지만, 실제 활동은 점점 기대와 달라져 간 건데요,

[김동호] 조총련 조직 내의 민주주의, 예를 들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게 되는 민주주의의 공간이 80~90년에 들어갈수록 좁아졌어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간부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무언가 지난 시기의 조총련과 다른 분위기가 조성되고...,북한은 재일동포를 돈줄로만 보고 있구나, 그 부정부패에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초심에는 재일동포들의 인권과 생활을 지키기 위해 하려고 했는데,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동호 씨는 미련 없이 조총련을 떠났습니다. 이후 조총련을 바라보니 쇠퇴하는 속도가 참 빨랐는데요, 조총련 안에서는 잘 몰랐는데, 밖에서 느끼는 조총련의 몰락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만 해도 한 때 4만 명까지 출석했던 학생 수가 6천500여 명으로 떨어졌고, 학교가 폐교되거나 통폐합되는가 하면 조총련 사무실도 3개 사무실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또 조선학교의 교원이나 조총련 활동가들이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 기본적인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김동호] 떠나고 나니까 조총련이 쇠퇴 몰락하는 속도가 왜 이리 빠른지, 정말 놀랐어요. 북한의 현실과 조총련의 잘못이 표면화됐죠. 특히 2002년에 납치 문제가 밝혀졌고, 이후에도 북한의 체제 문제 등이 드러났는데, 조총련도 문제지만 북한체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2000년 이후에 떨어져 나간 조총련 동포들이 꽤 많다고 봐요. 특히 마음이...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조총련의 몰락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북한의 독재체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 북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두 개의 사건이 북한뿐 아니라 조총련 조직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는데요,

[Ishimaru Jiro] 냉전 시대 이후 북한 독재체제의 정체가 드러나고 2002년에 김정일이 납치 문제를 인정하면서 이미지가 많이 나빠졌죠. 이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한 실망,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나라가 많이 무너지면서, 일당 독재식 사회주의가 부정됐다는 것이 있고, 북한의 폐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체제가 조금씩 드러나면서(빈곤․인권 탄압이라든지),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죠. 세 번째는 너무 비민주적인 조직 운영, 다시 말해 조총련도 완전히 독재거든요. 민주주의는 없어요. 네 번째는 재정문제죠. 일본이 경제적으로 불경기가 지속하면서 조직이 많이 줄어들고 이전처럼 여유가 없어요. 조총련 직원들의 월급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이고, 조선학교 교원의 대우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거든요.

동호 씨는 비록 조총련을 떠났지만, 조직에 대한 관심까지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또 동호 씨뿐만 아니라 조총련을 중심으로 각 지역 재일동포들의 유대감과 학교를 통한 민족 교육 등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조총련이 원래의 취지를 회복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동호 씨는 지적합니다.

또 조총련 스스로 내부개혁을 통해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일본의 현실과 재일동포들의 요구에 맞춰 원칙을 세워야 하지만, 스스로 변화할 수 없는 조총련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동호] 전향은 북한과 조총련이 했죠. 그래서 재일동포들이 이 조직과 나라는 못 따라가겠다고 한 거죠. 도중에 저버리고 간 것이 북한과 조총련이라고 봐요. 나도 그렇고, 재일동포들도 전혀 변절하지 않고 있어요. 조총련이 원래는 재일동포 단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원점으로 돌아서야죠. 그리고 북에 대해서는 '좋은 것은 좋다, 하지만 안 되는 것을 안 된다'라는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니고 재일동포 단체로서 활동원칙이나 내용, 방향 등을 세우지 않으면 미래나 희망은 없습니다.

[Ishimaru Jiro] 조총련 자체가 비민주적인 조직이라, 자기 변화, 자기 개혁을 못합니다. 스스로 변할 수 없는 낡은 조직이다 보니, 핵심 부분은 무너지지 않아요. 계속해서 약화하고 사람들이 떠나고, 축소될 겁니다.

일본 내 조총련의 세력이 크게 약화하고 있지만, 조총련의 완전한 소멸을 전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북한이 존재하고 조직의 틀이 남아있는 한 조총련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다만, 새로운 세대들에게 점점 외면 받을 뿐인데요,

[김동호] 새 세대들이 자라고 있는데, 과거 1세대에서는 '남이냐? 북이냐?, 민단이냐?, 조총련이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등 양자택일만 강조되는 사회였지만, 지금은 흑백논리나 양자택일만 강조하는 시기가 아니니까, 조총련에서 활동하는 세대가 지난 세대와 다른 판단과 가치관을 갖고 활동한다면 조금씩 변하리라 생각해요.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들이 새로운 시대의 감각과 가치관, 판단기준으로 개혁을 해주면 좋겠다면 바람이죠.

[Ishimaru Jiro] 저의 친구나 같은 세대 지인들도 조총련계에 많았지만,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본국(북한)에서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3대 세습이 됐잖아요. 이 비민주적인 조직은 안 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느끼면서 균형이 기울고 있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희망이라고 할까요? 일본에 사는 40만 명의 조선인도 분열됐습니다. 북한의 상황에 바로 반영되거든요. 북한이 평화롭고 민주적이 사회가 되고, 통일을 바라보는 시기가 되면 일본 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조총련에서 히로시마 지방 선전간부를 지낸 고충희 씨가 조총련 집행부에 대북 종속관계를 끊을 것을 촉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충의 씨는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산하 상공회 70주년 기념행사 당시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전원을 돌려보내줄 것과 모든 시설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제언서를 배포했는데요,

이 밖에도 고 씨는 조총련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조총련 간부가 조선노동당의 당적이 이탈해야 하며, 사라진 조총련 자산의 행방과 책임을 분명히 할 것도 요구했습니다.

고 씨는 이같은 주장을 편 이유에 대해 "젊었을 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납치 피해자에 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모순을 느꼈다"며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설명했는데요, 젊었을 때 가진 의문을 70세가 돼서야 행동으로 옮긴 겁니다.

일본 사회에서 바라보는 조총련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심지어 일본 측 단체 인사들도 조총련과 접촉을 피하고, 일본 정부와 사회의 탄압․차별도 눈에 띕니다.

또 지난해 10월, 조총련 의장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상납할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했는데요,

일본 내 동포들의 권리와 문화, 민족정신을 지켜주길 기대했던 조총련. 하지만 오늘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버린 조직의 운명은 북한과 재일동포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미운오리새끼의 신세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