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맨해튼까지] ④ 탈북 남매의 실전 자본주의 생존기

워싱턴-박재우, 자민 앤더슨 parkja@rfa.org
2024.04.12
[평양서 맨해튼까지] ④ 탈북 남매의 실전 자본주의 생존기 타임스퀘어에 방문한 이현승, 이서현 탈북민 남매. 우산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RFA Photo

“우리가 벌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꽃샘추위가 찾아온 이달 초 미국 버지니아의 한 카페.

 

웬만해서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 리정호씨와 아내 김부경 씨를 만났습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자녀 현승, 서현 남매를 취재한다고 하자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는데요.

 

부모로서 자식을 위한 희생은 만국공통인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탈북에 대해 결심했을 때 김부경 씨는 자본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지가 걱정이었습니다.

 

그간 최고위층 간부의 가족으로 어려움 없는 생활을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그 때 어머니 김부경 씨를 안심시킨 건 두 남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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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서 취재진이 따로 만난 서현 현승씨의 아버지 리정호, 어머니 김부경씨./RFA Photo

 

[어머니 김부경] 내가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진짜 그래서 아니 꼭 그렇게 해야 되겠나 하는데 서현이나 아들이 ‘어머니 걱정 마세요’ 라고…

 

[아버지 리정호] 우리 집사람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가면 돈이 없잖아, 어떻게 살겠나그랬는데 이제 현승이하고 서현이가 우리가 가서 벌 테니까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

 

취재진은 4 5일 취재 기간 두 남매와 함께 뉴욕의 ‘옐로우 캡’을 타고 이동하면서 교통체증을 목격했습니다.

 

뉴욕시는 진입하는 승용차에 혼잡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요.

 

차 한 대 없는 한산한 평양 시내와는 달리 복잡한 뉴욕의 모습에 두 남매는 매번 놀라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교통체증 덕분에 택시 안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져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배웠을까? 북한에서 접한 자본주의 도시 ‘뉴욕’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현승] 선전 영상에서 뉴욕의 노숙자분들 또 뉴욕의 정화되지 않은 도시 모습만 보여주는 그런 작품들이 있어요. ‘썩고병든 자본주의’라고 그런 모습만 이제 저희한테 보여주고. 뉴욕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이제 저희가 불법으로 밀수로 들어온 미국 영화 아니면 작품들을 통해서 미국의 도시 이렇구나 하는 거를 좀 볼 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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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김정숙 제사공장 내부. 사회주의 승리를 다그치는 구호가 보인다. /AP

 

북한 상류층의 자본주의 적응기… ‘인종차별’ 경험도

 

남매의 첫 자본주의 경험은 북한에서 중국 유학을 떠나왔을 때였습니다.

 

[이현승] 제가 (처음) 중국에 기차를 타고 넘어갔어요. 일단은 외국에 나갈 때 강습을 받아요. 나가면 자본주의 사상에 물젖지 말아야 된다. 주입식 교육을 받죠. 나오자마자는 모든 게 적대감 있게 보이는 거예요. 좋은 것도 ‘썩고 병든 자본주의’다좋았던 점이 일단은 전기가 다 나오는 거였죠. 이 사회가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중국’에서의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과 각종 혜택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서현 씨는 한국 생활 당시 적응을 위해 유명 빵집에서 아르바이트(임시로 하는 일)를 했고, 어학원에서 중국어 강사일도 했습니다.

 

[이서현] (어학원 강사는) 오래 하지는 않았어요. 한번 해볼래? 해서 하긴 했었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가르치는 것도 경험이 필요하고 노하우도 필요하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아는 것과 전달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더라고요. 경험이었어요.

 

2016년 워싱턴포스트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북한 상위 1% 엘리트 계층’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한때 평양에서 1% 상류층으로 살았던 그들이지만 탈북 이후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 겁니다.

 

미국으로 넘어온 현승 씨는 배달 업체의 음식 배달원, 식당 종업원, 그리고 주차요원으로 일하며 최저임금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까지 당했습니다.

 

[이현승] 주차 알바 할 때 제가 실수를 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화를 내면서 인종차별이라고 해야 되나? 어떤 중국사람(Some Chinese Guy)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대요. 그런데 나는 그때 당시에 인종차별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다른 애들이 이제 그 옆에서 말리는 거예요. 인종차별이라고…. 그렇게 하면서 또 미국 사회에 대해서 배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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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현승 이서현씨./RFA Photo

 

‘썩고병든 자본주의’의 중심

 

게다가 뉴욕 맨해튼은 미국에서 가장 생활 물가가 비싼 지역입니다.

 

지난해 기준 맨해튼의 아파트 한 달 평균 주택 임대료는 55백 달러, 중간값은 44백 달러에 달한다고 합니다. 물가가 살벌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두 사람도 취재진과 동행하는 내내 가격을 확인하며 신중하게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컬럼비아 대학의 ‘북 스토어’ 즉 서점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 스토어는 교재, 각종 학용품은 물론 기념품까지 구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하늘색 문양의 컬럼비아 대학 표식이 그려진 컵, 티셔츠, 볼펜 등 각종 물품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상표만 붙어 있는데, 다른 상점들의 물건보다 2, 3배는 비싸보입니다.

 

[이현승] 보면은 학교마다 다양하게 있어요. 부모님들도 오시면 하나씩 사시는 것 같아요

 

[기자] 부모님 오시면 사시려구요?

 

[이현승] 졸업 때 오시는데, 오시면 같이 와서 사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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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 대학교 북스토어에는 다양한 모양의 대학 표식이 그려진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RFA Photo

 

 

학용품, 교재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두 사람의 학비가 궁금해지는데요.

 

사립학교인 컬럼비아 대학교의 대학원 학비는 1년에 약 7 6천 달러,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약 11만 달러가 든다고 합니다. 두 남매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탈북 남매가 미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국과 미국 곳곳에서 장학금을 건네 왔습니다.

 

[이현승] 저희는 이제 그래도 도움을 주신 분들도 계시고 장학금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생은 오토 웜비어 장학금을 해주셔서 받았고요. 그리고 링크라는 단체, 부시재단, 미래 한국재단, 원코리아 파운데이션 등에서 받았습니다.

 

서현 씨와 현승 씨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석방된 직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기리는 ‘웜비어 재단’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북한 사정을 알리는 강연 등 부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 은행에서 각각 학자금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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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하탄의 타임스퀘어 전경. /RFA Photo

 

구슬비가 내리는 3월의 어느 날. 두 남매는 우산을 쓰고 ‘타임스퀘어’로 향합니다.

 

저녁이지만 이곳은 반짝이는 옥외광고로 대낮처럼 밝습니다. 왜 ‘불야성의 거리’라고 불리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곳에선 다채로운 옥외광고에 넋을 잃기도 하지만, 자칫주머니를 털릴 수도 있습니다.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만화 캐릭터 복장을 한 이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한 뒤 돈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평양 지하철에 비해 뉴욕 지하철은 더럽고 때론 노숙자들과 쥐 떼들로 가득해 ‘썩고병든 자본주의’를 목격할 순 있지만, 이들에겐 일한 만큼 보상받는 ‘자본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보단 나았습니다.

 

[이서현] 개인의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꿈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화된 제도가 자본주의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사실 보면 북한에도 정말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많은데 자신의 재능을 깨달을 기회조차 없이 노예처럼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점인 것 같아요.

 

이들 남매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데요,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다른 탈북민들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학업의 길을 찾기를 추천했습니다.

 

[이서현] 제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책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친구들 학교를 통해서 배우는 계기도 많기 때문에 사실 학교만큼 배움의 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 교수님들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요. (다른 탈북민들도) 배움을 향한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자유와 기회의 도시 미국 뉴욕 맨해튼의 명문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중인 탈북민 남매가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은 4박 5일 동안 뉴욕을 방문해 이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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