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 북 여성들 “결혼∙출산으로 고생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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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젊은 북한 여성들이 외부 정보를 습득하고, 자본주의를 배우면서 ‘나의 행복’을 더 중요시하게 됐고, 결혼과 출산으로 고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뚜렷한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이미 북한 당국의 사상 교육과 단속, 정책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것이 탈북민과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국제부녀절’, 즉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북한의 저출산 현상에 나타난 여성들의 인식 변화를 서혜준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외부 정보와 자본주의에 눈 뜬 북 여성들 , 결혼과 출산 기피

[ 김정은 ] 출산율 감소를 막고 어린이 보육 교양을 잘하는 문제도 모두 어머니들과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우리들 모두 집안의 일입니다 .

2023년 12월 3일, 북한에서 열린 제 5차 전국 어머니대회.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11년만에 열린 이날 전국 어머니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데 이어 4일 폐막식에서는 ‘가정과 사회 앞에 지닌 어머니의 본분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 출산을 장려했습니다.

북한의 출산율이 김정은 총비서 집권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내부 취재협조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 어머니대회에서 한 김 총비서의 발언에 대해 북한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 이시마루 지로 ] 남자는 무조건 직장에 출근해야 하지 않습니까 . 출근했다고 해서 한 가정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배급도 안 주고 , 오히려 반대로 직장에서 필요하다며 ' 현금을 내라 ', 겨울에는 ' 땔감 좀 내라 ', ' 휘발유를 내라 ' 는 등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결국 , 여성이 밖에 나가서 장사를 하든 , 무언가 일을 해 벌어서 부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

사회주의식 복지가 보장되지 않고 배급 체계마저 무너지자 생활고에 견디지 못한 여성들이 결국 일터로 내몰렸고, 동시에 육아까지 떠맡으면서 저출산 문제가 시작됐다는 겁니다.

또 북한 여성들의 사회적,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한국 통계청의 집계에 따르면 2014년 1.88명이었던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1.79명으로 하락했습니다.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 전문가인 오은경 박사는 이처럼 북한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장마당을 통해 자본주의를 경험한 데 따른 인식의 변화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을 상담해온 오 박사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젊은 세대(MZ세대) 여성들은 정보 습득이 빠르고, 자본주의를 알게 되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고생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오은경 ] (MZ 세대는 ) 정보를 알게 되면 시야가 확대되니까 자신의 처지나 상황 판단이 매우 빨라서 기성세대 탈북민과는 조금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 알고 ( 한국에 ) 온 거예요 . 자본주의를 안다는 게 무슨 말이냐 하면 돈이 없을 때의 불편함 , 돈이 있을 때의 편리함을 명확히 알고 또 이를 통해 자유를 맛보았다는 거죠 . 그래서 결혼이나 출산 같은 것은 결국 , 자신의 삶을 옥죄고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보는 겁니다 .

또 오 박사는 북한에서 억압 당하고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는 상황 가운데 USB 등을 통해 접한 한국 드라마 속 상황들이 ‘이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식의 변화와 함께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고 저출산 현상을 분석했습니다.

[ 오은경 ] 실제 같이 농사짓던 탈북민이 한국에서 사회복지사가 됐다는 정보를 얻게 되니까 , 드라마에서 접한 내용이 탈북한 가족 또는 친척들을 통해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 한국에서 다르게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타난 인식의 변화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들로 발현돼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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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평양에서 개막한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참석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 연합뉴스

"' 엄마 ' 라는 이름보다 ' ' 로 살고 싶었어요 "

2017년까지 북한에 살았던 20대 탈북 여성 강주영(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실제 여성들이 장마당에 아이를 업고 나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강 씨는 엄마가 경제 활동과 함께 가사와 육아까지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 강주영 ( 가명 )] 저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결혼할 생각이 없었어요 .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혼을 안 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어요 . 불안함이 너무 싫은 거죠 . 내 인생도 있는데 , 결혼하게 되면 애 업고 일하고 , ' ' 라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오직 ' 엄마 ' 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싫은 거죠 .

자유아시아방송이 지난 1월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함경북도와 양강도에 거주하는 40대 여성 두 명과 30대 미혼 여성 한 명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이들은 모두 북한의 젊은 여성들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을 안 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특히 30대 초반의 여성은 여전히 결혼을 기피하고 있었습니다.

세 여성은 북한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생활고’를 꼽았습니다.

북한에서 여성들이 짊어져야 할 삶의 부담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오은경 박사도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엄마나 이웃 등 타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서와 행동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사회적 참조’라고 하는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이 경험한 생활고가 그들의 삶의 가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습니다.

[ 오은경 ] 요즘은 ' 장마당을 경험했느냐 , 안 했느냐 ' 로 세대를 구분할 수 있어요 . 장마당 세대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가 장마당에서 열심히 일을 했지만 여전히 굶주렸고 , 엄마의 힘든 노동에 대한 푸념을 계속 듣습니다 . ' 배급이 무너져서 나라에서 도움 주는 것도 없고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 .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니까 개인이 먹고 살아야 된다 .' 이런 것들을 발달 과정에서 습득하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성격과 삶의 방식 , 가치 , 기준들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겁니다 .

아울러 오 박사는 북한 당국이 아무리 사상 교육을 한다 해도 개인이 ‘자력갱생’ 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도움이 안 되는 나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북한 여성들이 더욱 출산을 망설이고, 내가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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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일, 한 손에는 금색 장난감 총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중국산 쇼핑백을 든 북한 소녀가 다른 여성들과 함께 북한 라선시의 라선 자유 무역 시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

결혼 출산 기피에 대한 심리적 분위기 팽배 바꾸기 쉽지 않아

이처럼 북한에서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여성이 증가하자 체제 유지에 위기를 느낀 김정은 정권이 사상 교육과 단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에 따르면 “오늘날 북한에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결혼 대신 동거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는데, 이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사회적 통제를 강화할수록 개인의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역효과만 불러올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 오은경 ] 북한에서 저출산 문제를 좀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 남녀들이 동거를 하면 노동 단련대에 보내거나 처벌하겠다 , 단속을 엄격히 하겠다 ' 와 같이 강요하고 억압하는 정책을 계속 펴고 있거든요 . 그런데 아무리 억압 정책을 강화해도 그들을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 오히려 반발이나 불신만 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북한 젊은 세대들을 과연 사상과 통제로 바꿀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고 , 사실 그러기도 어렵다고 봅니다 .

오 박사는 또 젊은 세대의 반발과 불신이 커지면서 이들의 탈북이 증가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이미 북한의 저출산 문제가 정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고까지 진단했습니다.

[ 안경수 ] 북한 여성들이 접하는 외부 문화 유입이나 주체성 상승 , 경제적 활동 , 사회성 각인이 깊어지면서 북한 체제도 정책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고 봅니다 . 지금은 ( 출산 기피에 대한 ) 심리적인 분위기가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이 흐름을 멈추거나 더 나아가 바꾸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

점점 개인주의화되고, 통제와 단속에 반발하는 북한의 젊은 세대들.

기성세대와 달리 ‘나의 행복’을 앞세우는 북한의 젊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계속 기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저출산 문제를 마주한 북한 당국의 고민도 점점 깊어질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