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김정일 생일 나기] 실망 넘어 분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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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언제 열릴지 모르는 북중 국경, 경기 침체로 점점 바닥을 보이는 현금, 불안한 미래 등으로 김정은 북한 정권에 대한 민심은 실망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이런 가운데 부실한 특별공급, 각종 행사동원 탓에 광명성절 경축 분위기를 강조할수록 주민들의 불만은 더 커지는 분위기인데요. 심지어 기록 영화에서 백마를 탄 김정은 총비서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광명성절을 보낸 북한 주민의 민심을 살펴봤습니다.

기대 못 미친 특별공급에 북 주민들 "그럴 줄 알았다"

북한 평양을 제외한 지방 도시마다 광명성절 80주년(2월 16일)에 대한 특별공급이 기대 이하의 수준을 보이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 이후 북한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내심 주민들이 광명성절 특별공급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정작 형편없는 수준에 그치자 ‘그럼 그렇지’란 실망을 드러낸 겁니다.

그나마 공급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더 분통이 터집니다.

올 해는 기관, 기업소의 노동자들만 대상으로 특별공급을 주다 보니 노인, 장사하는 여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업소에 출근하지 못한 주민들은 제외됐습니다.

북한에 노모와 몸이 불편한 동생이 있는 탈북민 김혜영 씨(신변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도 RFA에 안타까움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김혜영 씨(가명)] 우리 가족은 기업소에 나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업소에 나오는 사람에게만 특별공급을 줬다고 하면, 가뜩이나 장사도 어렵고, 물가도 비싼데 우리 가족은 어떡하느냐는 속상함이 앞서는 거죠.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우니까 모든 주민에게 다 주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한 주민도 (2월 14일) ‘나라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도 안 했을 것’이라며 자조 섞인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RFA에 특별공급마저도 평양과 일부 계층에만 선택, 집중하는 김정은 정권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계속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만큼 민심도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장사도 안되고, 수입도 없는 때에 국가가 조금씩 배급을 주면 반가워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자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죠. 국가가 이번 명절에도 특별 공급이든, 뭐든 해주지 않을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됐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앞으로 채 두 달이 남지 않는 4월의 김일성 주석 생일에도 특별공급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풍족한 공급을 위해서는 중국으로부터 물건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데, 앞으로 북중 국경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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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6일,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광명성절 80주년을 축하하는 평양 시민들. / AFP

“백마 탄 김정은 모습에 기분 나빠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 해 광명성절 80주년, 태양절 110주년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큰 목표가 할아버지인 김일성, 아버지인 김정일의 위대성을 내세워 김 씨 통치 체제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거라고 분석합니다.

또 경제적 어려움에도 여러 축하 행사로 북한 주민들의 사상을 결속하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각종 위기를 돌파하는 데 주력하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학교 교수는 (2월 11일) RFA에 북한이 올해 광명성절과 태양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김일성, 김정일의 위대성을 많이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수록 북한 당국은 선전 매체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북한 당국으로서 지금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형 코로나 비루스 때문에 세계 어디나 모두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 사람들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당연한 일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선전, 언론 정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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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베트남을 방문했다는 노동신문 기사를 읽는 북한 주민들. / AFP

하지만 김정은 총비서에 관한 기록영화를 비롯해 북한 당국이 체제 선전을 강화할수록 민심은 더 악화하고 있다고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는 (2월 9일) 평가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올해 초에 김정은 총비서의 2021년 업적을 선전하는 기록 영화도 상영됐지만, 북한 시민들의 평가는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요즘 기록 영화는 전혀 감동 받을 수가 없고, (김 총비서가) 백마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나와도 기분만 나빠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북한 공식 매체가 경축 분위기를 강조할수록 북한 주민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는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마키노 기자는 이런 탓에 오히려 광명성절과 태양절에 대한 주민들의 부담과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올해는 김정일 탄생 80주년, 김일성 탄생 110주년이란 정주년이 겹치는 해라서 북한 주민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군사 퍼레이드는 4월에 열릴 예정이라고 저는 듣고 있고요. 이러한 행사에 일반 시민들이 동원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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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6일, 평양 시민들이 광명성절 80주년을 맞아 전시된 축하 포스터를 지나고 있다. / AFP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부실한 특별공급과 각종 강제 행사동원 등은 오히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중국과 철도 무역이 재개됐지만, 그 효과가 자신의 생활에 언제 영향이 있을런지 모르지 않습니까. 전체적으로 지금 북한 주민의 민심은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굶는 것에 대한 걱정, 정말 불안한 사회 분위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 국면의 장기화, 북중 국경 봉쇄, 물가 상승과 현금 수입의 감소 등이

북한 주민의 생활에 큰 타격을 주고, 이에 따른 피로도도 커진 상황에서 체제 선전만으로 민심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