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엄니 저 해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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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 저 해군 갈 거예요.”

논마다 푸른 벼가 자라는 한국 충청남도 부여의 한 시골 마을.

논밭 사이로 드문드문 집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아들과 딸, 5남매를 둔 한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집 앞에는 토마토와 고추가 빨갛게 여물고, 처마 밑에는 수확한 마늘이 걸려 있습니다. 검은색 지붕의 닭장 안에는 스무 마리 정도의 닭이 모이를 쪼고 있는데,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윤청자] 내가 우리 큰딸을 10살 때 보냈어요. 저 냇물 있잖아요. 냇물에서 모래와 자갈 채취를 할 때 웅덩이를 파놨으면 메워야 하는데, 그걸 안 했어요. 우리 딸이 4학년 때 학교에 갔다 와서 거기서 익사했어요. 우리 평기가 뱃속에 여덟 달때 그렇게 큰애를 보냈어요. 얼마나 보고 싶은지 애가 타서 죽죠. 밥도 못 먹고, 맨날 울기만 하고, 학교 가면 있는 것 같아 학교도 찾아다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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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청자 여사의 큰딸 (오른쪽) 사진 / 윤청자 여사 제공

어머니는 지갑에서 흑백사진 한 장을 꺼냈습니다. 주름이 선명한 그 사진에는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윤청자] 내가 밥을 안 먹으니까 열 달이 돼도 애가 안 나오고, 열한 달이 되니까 병원에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내가 하도 말라서 죽게 생겨서 병원에 가니까 산모라도 살리자고 해서 “아니라고, 난 죽어도 싫다”고 그랬어요. “나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고. 그때는 병원도 없고 우유도 없을 때예요.

주변에서는 유산을 권유했지만, 아이를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는 열한 달이 다 되도록 미숙아인 아들을 지켜냈습니다.

[윤청자] 그런데 금방 태어난 것이 요만해서 장기가 다 보여. 고것이 죽을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그 애가 어떻게 깔짝깔짝 살아나더라고. 그리고 좀 몇 달 있으니 깔딱깔딱 웃고, 배가 고파서 맨날 우는 게 크지는 못해. 애가.

어머니는 그 작은 미숙아가 그렇게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합니다.거실 한쪽에 있는 서랍장에는 아들의 사진도 놓여 있습니다.

[윤청자] 동네 큰 애들이 우리 아들을 놀리고, 옛날에는 방공호라고 땅을 팠는데, 거기에 애를 넣으면 못 나오고. 그래서 오죽하면 껌이 굉장히 귀할 때인데, 내가 몇 통 사가지고 가서 “왜 쪼그만 애를 왜 놀리고 귀찮게 하냐. 이거 먹고 평기에게 잘해라. 나중에 또 사탕 사다 줄께” 그랬어요. 나중에는 (평기가) 똘똘해지더니 애들에게 안 지더라고요. 커서 공부도 잘하고, 아버지의 기대주였어요. 우리 집에서.

그렇게 엄마의 사랑을 먹고 착실하게 큰 막내아들은 어느덧 군대에 갈 나이가 됐습니다.

[윤청자] 여기 은산면에 데리고 와서 “군인 신청을 해라” 그랬더니, “엄니, 나 공군 갈 거예요” 하더라고. “야~, 공군은 하늘에서 떠돌아다니다가 공포증때문에 안 돼. 그냥 육군 갔다 오라”고 했더니, “어머니, 저도 생각이 있어요” 하더라고요. 공군 간다고 다 비행기 타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요. “그럼 그래라” 하고서 (면사무소에) 들어갔는데, 마침 어제까지 공군 지원이 끝났대요. 그리고 이제 뭐가 남았냐고 물어보니 해군은 내일까지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놈이 해군을 간다는 거예요.

해군에 지원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당시를 설명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어제 일처럼 떨리기 시작합니다.

[윤청자] 저는 딸을 물에서 보냈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고 그렇게 말렸더니, 내가 잠시 한눈파는 사이 이놈이 해군 신청을 한 거예요. 밖에서 “신청했냐”고 하니까 “네, 신청했어요” 하더라고요. 눈물이 쭉 나오더라고요. “야, 누나도 그렇게 물에 갔는데, 어째서 해군을 가려고 하느냐. 해군은 배 타고 물속에 있어야 하잖아” 그랬더니 “어머니, 남자는 뭐든지 다 경험을 쌓고 해야 앞으로 장래성이 있는 거예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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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 '문무대왕' 앞에서 경례를 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 AP (Oh Soo-hee/ASSOCIATED PRESS)

바다를 좋아한 미국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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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인 에드워드 머피(Edward Murphy·왼쪽 사진/National Archives) 중위에게 바다는 삶의 일부였습니다.

[에드워드 머피] 전 바다를 잘 알았어요. 바다와 가까이 살기도 했고, 바다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바다를 항해할 때 바람이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머피 씨는 지금도 바다와 가까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습니다. 백발에 흰 수염을 기른 그는 바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에드워드 머피] 바다를 떠다닐 때, 그리고 바다를 건널 때, 내 발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할 수 있잖아요. 배를 처음 몰 때만 해도 당시 선원들은 별자리를 보고 바닷길을 찾아갔어요. 얼마나 멋집니까. 바다로 가는 것은 저에게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정말 즐거웠고요.

대학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한 머피 중위는 새 정찰 임무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임신 7개월이었고, 두 살배기 아들도 있었습니다.

[캐롤 머피] 우리는 이 임무를 받게 돼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새 선함의 책임자로 발령받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임무를 하게 된 것에 크게 흥분됐습니다. 이것이 훌륭한 것이라 생각했고, 가기로 계획했습니다.

출항 후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에드워드 머피] 우리는 두 척의 어선을 만났고, 그들은 우리 주변을 바짝 따라 항해했습니다. 어선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나중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USS 푸에블로호를 찍기 위해 수많은 촬영 기사들을 대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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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아들

어머니는 해군 군복을 아들의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착실한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윤청자] 입대 후 아들이 대전에서 행정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배를 많이 타야 진급이 되더라고요. 어느 날 “그만 이제 제대하고 학교 다녀라”라고 했더니 “어머니, 군인 가서도 어느 정도 진급하면 석사, 박사 공부도 할 수 있어요. 대학교도 다닐 수 있으니까 걱정 마셔요”. 그렇게 믿고 있었더니, 얘가 제대를 안 해요. “너 진급 한다더니 진급도 안 하고 왜 그렇게 군대에 오래 있냐”고 했더니 “엄니, 저 중사 땄어요” 그러더라고요. “어머나, 너 그런 경사를 왜 엄마 아빠에게 얘기 안 했냐”고 했더니 “그게 뭐 큰 진급이라고요. 저는 큰 기대를 갖고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더라고요. 아버지가 최고로 예뻐했어요. 공부도 잘해서.

아들 자랑에 표정이 밝아진 어머니는 처음으로 살짝 웃기도 합니다.

[윤청자] 우리 아들이 효자였지. (시집와서) 제가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살림을 많이 이뤄놨어요. 우리 애들이 다 효자고 착해요. 이놈이 군인 가서도 휴가를 자주 오더라고요. 본부가 대전이잖아요. 오면 돈을 줘요. 돈을 줘가며 “엄마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엄마 인생도 좀 사시라”고, 돈을 주고 가요. 애들이 다 그래요.

이 아들의 이름은 민평기. 평평할 ‘평(平)’에 터 ‘기(基)’자.

평화통일의 기초를 닦으라는 뜻에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함께 숨진 46용사 중 한 명입니다.

[기억의 지속] (1) 윤청자 여사 인터뷰 - 아픈 기억을 놓지 않는 사람들 윤청자 여사 인터뷰 - 아픈 기억을 놓지 않는 사람들
1950년 한국전쟁과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분쟁의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RFA는 망각(忘却) 대신 ‘기억의 지속’을 통해 이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취재: 노정민, 천소람, 박수영, Monique Mai, Lauren Kim 촬영: 이은규, Lauren Kim, Paul Lee 에디터: Nadia Tsao, 박봉현, H. Léo Kim, 박정우, 이현주, Beryl Huang, Tina Hsu, Brian Tian 그래픽 제작, 웹페이지 제작: 김태이 번역: 뢰소영 나래이션: 양윤정 더빙: 이진서, 홍알벗, 한덕인, 김효선 참고 자료: KBS, YTN, AP 제작: RFA 취재에 응해주신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여사와 푸에블로호 부함장 Edward. Murphy 씨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