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기획특집-4] 김정일 사후, 북한 한류 지속되나?

MC :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그 동안 주민 사이에 번져 가던 남한의 대중문화인 한류의 확산이 계속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장균 기자 함께 했습니다. 이장균 기자, 북한에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 노래 같은 이른바 한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전해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습니다만 김정일 위원장 자신이 남한이 가요나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었다고 하죠?

이장균 : 그렇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얘깁니다만 영화 외에도 남한의 가요나 드라마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죠. 김 위원장이 북한 영화 예술인들에게 남한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연기를 배우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가 전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는데요

김정일 위원장은 실제로 북한에서는 '꽃피는 마을'이나 '꽃파는 처녀' 등 네 변의 대작영화 제작을 주도했고 2007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한 여학생의 일기' 제작에도 관여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소장한 영화필름과 CD, 즉 알판만 해도 만 5천 개에 달할 정도였다고 하죠

이렇게 김정일 위원장의 영화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당시 '대장금'을 비롯해 '겨울연가' '디 워'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 DVD 150편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남한의 가요에도 관심이 많아 가수 김연자 씨를 초청해 2001년과 2002년 북한 공연을 갖도록 하고 직접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MC : 김정일 위원장은 스스로는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의 대중문화를 즐기면서도 북한 주민에게는 철저하게 차단시키지 않았습니까?

이장균 : 그렇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민이 외부 문화에 눈을 뜨게 되면 의식의 변화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독재 체제를 뒤흔들 위험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인데요 김 위원은 지난 8월 신의주를 시찰하면서 그런 불안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었죠. 김 위원장은 지난 8월 초에 신의주를 시찰하면서 주민들의 옷차림과 무질서 등을 보고 평안북도가 '자본주의의 날나리판'이 됐다고 비난하면서 철저한 속을 지시했었다고 알려졌는데요. 이 바람에 불법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고 특히 세관은 어느 때보다 검열 강도가 높아져 남한 드라마나 노래 CD 등을 갖고 들어가다 적발돼 현장에서 구속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간부들이 예전처럼 뇌물을 찔러줘도 이제는 받지 않는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하고 있는데요 당시 북한 관영매체들은 자본주의체제의 부르주아 양식을 비난하며 '북한식 사회주의'에 기초한 정신무장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MC : 그렇지만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는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제는 아무리 단속을 한다고 해도 주민들의 남한 대중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욕구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떻습니까?

이장균 : 그렇습니다. 북한에 번져 나가는 한류 바람에 대해 부인인 박정란 박사와 함께 책을 펴냈던 부산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이 체제를 다지기 위해 남한 대중문화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강경한 입장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단속이 심할수록 더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강교수의 얘기 한번 들어보죠

강동완 교수 : 후계자 세습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국경 경비라든지 또는 내부 단속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강화하면서 아무래도 확산 추세가 조금 주춤하겠지만요 그러나 이미 남한의 영상물이 시장을 통해 확산이 되고 있거든요, 이런 시장이라는 부분은 바로 북한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초기에는 단속이라든지 그런 부분을 통해 조금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남한 영상물의 확산 추세는 계속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요, 북한 당국의 통제 수준이 위로부터 압박이 가해지면 가해질수록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북한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 더 나아가 외부 정보에 대한 욕구는 더 확산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MC : 김정일 위원장의 뒤를 이어 3대 세습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김정은은 남한 용어로 얘기하면 신세대에 속하는 젊은 나이여서 체제가 안정되면 혹시 외부 문화에 대해 좀 융통성을 갖고 개방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이장균 : 네, 알려진 것처럼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의 공립학교에 '박운'이라는 가명으로 유학했던 김정은은 유학시절 미국 프로농구를 좋아하고 영어나 독일어 등 외국어도 제법 잘했다고 하죠. 평범한 10대와 마찬가지도 컴퓨터 게임, 유명 상표의 운동화, 그리고 액션 영화, 즉 활극 영화 등에 관심이 많았다고도 합니다. 남한의 여느 신세대 젊은이와 다를 바 없는 십대를 보냈기 때문에 강동완 교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김정은이 외부 문화에 좀 관대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강동완 : 김정은의 나이가 젊은 층에 속하고 무엇보다 외부 정보에 밝은 부분이 있는데요, 초기에는 분명히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권력 내부의 안정기에 접어들면 일정 부분 북한의 문화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한 개방의 속도도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에서 개방에 대한 기대도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스물 아홉의 나이에 덜컥 후계자 자리에 안게 된 김정은으로서는 체제 안정을 위한 내부 결속 다지기가 급선무이기 때문에 외부 문화 유입이나 개방에 관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신세대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김정은은 형제들 사이에서도 승부욕이 강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미지수인데요 11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김정은이 10대에도 술.담배를 하는 등 거침없는 성격에 승부욕 또한 남달랐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에 이어 3대 독재 체제를 굳히면서 주민을 더욱 옥죄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8월 조선 중앙 텔레비전이 러시아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김 위원장을 마중 나간 김정은이 고개도 숙이지 않고 한 손으로 악수하는 장면을 내보냈을 때 이미 3대 독재체제의 세습자로 자리를 공고히 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죠.

가장 큰 버팀목인 아버지가 사라진 현실에서 김정은은 주민들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강성대국 진입'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돼 우선은 후계 체제 안정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선뜻 개방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MC : 북한 주민들은 이미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북한의 선전 영화나 선전 예술에는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북한 당국이 계속 그런 선전 선동 예술에 매달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장균 : 잘 아시다시피 북한에서의 문화예술은 혁명과 건설을 선전하는 한 수단으로서 정치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은 통치방식에 있어 선군정치를 내세웠습니다만 문화예술 분야도 이를 연결하는 선군문학예술을 등장시켰습니다.

2000년 말에 '선군혁명문학'이란 개념이 먼저 등장했고 이후 '선군미술' '선군음악' '선군영화' 등 다른 분야에 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선국문학예술'로 체계화 시켜갔죠

선군혁명문학은 그 뿌리가 김일성 시대의 '항일혁명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김정일은 이를 계승하면서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김정일 시대의 신개념으로 선군문학예술을 등장 시켰습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가장 대표성을 지니는 '선군문학예술' 작품은 2002년 첫 선을 보인 바 있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입니다. 이후 2005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리고 2011년 올해 등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계속 공연을 가진 이 '아리랑'은 북한에서 '선군문학예술'의 이정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외부적인 줄기는 민요'아리랑'을 매개로 한 민족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선군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를 그리고 있는 '선군역사실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이런 선전선동 예술에 신물이 났다는 것이죠. 이미 북한 내부에서는 요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움트고 있는데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구태의연한 선전 선동 예술이 잘 먹혀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서울 지국 문성휘 기자의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북한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는데 정작 북한에서 새로 나온 노래나 영화들은 잘 모른다고 하죠. 자금 부족으로 영화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다 그나마 나오는 텔레비전 극, 즉 드라마나 음악들도 모두 김일성 가문에 대한 찬양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내용들로 돼 있어 주민들과 특히 청소년들 속에서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그런 보도였습니다.

강동완 교수는 이제 북한도 대중에게 무시 당하는 문화 예술 정책 전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있을 때가 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동완 교수 :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전에 북한 내부에서 보면 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보는 드라마나 영화 이런 부분들이 상당히 과거와는 좀 다른 모습들이 보여지긴 했었거든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에서 이런 영화나 선전선동을 통해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세뇌시키는 그런 역할들을 하는데요 이것이 이제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 잘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내용 나아가 김정은의 후계 체제 과정에서 아무래도 충성심이라든지 체제 결속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런 선전 선동을 통한 어떤 세뇌교육이 필요한데요, 이미 북한 주민들이 여기에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거죠. 그래서 만약 북한 당국이 과거와 같이 선전 선동의 수단으로 북한문화나 이런 부분들을 이용한다면 결국은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런 점에서 북한 정권의 문화정책이 바뀌어질 가능성도 점쳐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북한 정권이 처한 딜레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과연 자신들이 체제 결속을 위한 북한 문화나 예술 이런 부분들과 북한 주민들이 아래로부터 보여지고 있는 외부정보의 결합 이런 부분들이 어떤 변화의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 주목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MC : 강동완 교수 얘기는 일단 북한의 선전 선동식 예술, 문화는 더 이상 주민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하고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외부 문화 , 특히 남한의 드라마나 영화 같은 한류의 확산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얘기가 되겠군요

이장균 : 그렇습니다. 일단 세습체제를 굳혀야 하는 김정은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이어 받아 그에 따른 선전 선동식 문화 예술 정책을 답습하겠지만 이미 그런 선동선전에 흥미를 잃은 북한 주민들의 남한 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꺾을 수는 없을 거라는 얘기가 되겠고요, 더 나아가 북한 주민들이 외부 문화에 점점 더 깊이 접하게 되면 생각과 의식이 달라지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북한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것이 강동완 교수의 전망입니다.

강동완 교수 : 무엇보다 일반주민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의 변화가 있는데요, 이런 외부 정보에 이미 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단기간에 통제하거나 막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이 단순하게 정보의 확산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북한 주민들이 외부정보와 접촉을 하고 어떤 사회변화라든지 또는 체제 변화까지도 추동할 수 있는 요인들과 결합이 되면 북한 정권의 위협 요인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네 결국 북한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남한 대중문화의 확산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북한 주민의 생각이 바뀌고 그것이 체제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까 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어쩌면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아들 김정은 손바닥 위에 넘겨준 가장 뜨거운 감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MC : 네, 지금까지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에 번지고 있는 한류.. 어떻게 될 것인지 이장균 기자와 함께 살펴 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