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포탄소리 못 듣는 장애딸 다행”

워싱턴, 서울, 타이페이 - 특별취재팀 nohj@rfa.org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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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끝나지 않은 전쟁] “포탄소리 못 듣는 장애딸 다행” 2022년 4월 5일, 우크라이나 보로디안카에서 한 주민이 교전 중 파괴된 아파트 잔해에서 소지품을 찾고 있다. / AP
/ AP

딸의 청각 장애가 다행이라 느껴졌어요.”

 

2022 2 23.

 

[안 엘레나] 새벽 4시쯤 폭탄 소리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폭탄이 아니라, 어디에서 뭔가가 터지는 소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총소리와 포탄 소리가 들려서 그때야 전쟁이 시작됐구나라고 이해했습니다. 집에서 나와 22일 동안 지하실에서 대피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지하실이 없었는데,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그 사람의 집 지하실에서 같이 피신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의 시골 마을에서 아버지, 어머니, 딸과 함께 살았던 안 엘레나 씨의 집은 직접 폭격을 맞았습니다.

 

[안 엘레나] 처음에는 내일이나 모레쯤 전쟁이 끝날 거라는 희망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지 않고 매일 시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겁니다. 피신해 있는 동안 물도, 전기도 없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서는 사람들에게 빨리 대피할 것을 알려왔습니다. 지하에 피신해 있을 때도 집 다락이 무너지면서, 그 순간에는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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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으로 무너진 안 엘레나 씨 집 안의 모습 / 안 엘레나 씨 제공

 

안 씨의 휴대전화에는 폭격으로 무너진 집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창문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튤립꽃이 가득했던 화단도 짓밟혔습니다.

 

그녀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자 옆에 앉은 딸이 엄마의 손을 잡아줍니다.

 

[안 엘레나] 포탄 소리에 정말 아주 무서웠습니다. 제 딸이 (청각 장애로) 잘 듣지 못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딸이 그 포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 무서워했을 겁니다. 저와 딸은 서로 안아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줬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많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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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안 엘레나 씨(왼쪽)와 아버지(가운데), 딸. / RFA photo

 

한국 전라남도 광주.

방 하나에 거실, 부엌이 딸린 작은 연립주택이 안 씨의 새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안 엘레나] 피난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우리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서 자기는 못 갈 것 같다며 저와 제 딸 이렇게 두 명만 가라고 했는데, 우리 딸이 할머니 없이는 안 간다고 해서 겨우 모시고 같이 왔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혼한 이후 돈을 벌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딸을 많이 돌봐줬습니다.

 

옆에 있던 그녀의 아버지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며 눈물을 훔칩니다.

 

[안 알렉산더] 내가 좀 더 젊었으면 계획을 세울 텐데, 나이가 곧 칠십이고 건강도 좋지 않은데다 시력도 나빠서 엘레나에게 모든 것을 기대고 있습니다. 전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전쟁이 아니었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내 일을 하면서 끝까지 살았을 겁니다.

 

안 씨가 과일을 깎아 아버지에게 건네보지만, 아버지는 입에 대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댄서가 꿈이었던 안 씨의 딸이 휴대전화로 자신의 공연 동영상을 보여주지만, 엄마와 할아버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합니다.  

 

 

비행기 소리에 깜짝 놀라요

 

한국 광주광역시 고려인 마을의 청소년문화센터에 학교 수업을 마친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30여 명이 모인 합창 시간에 4명의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김혜숙 음악 선생님은 입만 겨우 벌리는 아이들 앞에서 몸짓과 목소리를 더 크게 해봅니다. 몇몇 아이들은 웃기도 하고, 옆 친구와 장난도 칩니다.   

 

[김혜숙] 아이들이 맨 처음에 왔을 때 참 예뻤어요. 모습은 참 예쁜데 너무 우울했습니다. 또 그쪽에서 아빠는 전쟁터에 나가 있고, 할아버지 역시 전쟁터에 나가 있는 데다 한국말은 하나도 못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굉장히 우울해했습니다.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신조야 종합지원센터장은 이날도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신조야] 여기서 비행기가 낮게 날아가면 소리가 큽니다. 그럴 때마다 (어린애들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서 숨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충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비행기가 날아가도 머리가 아프대요. 그래서 우리가 돌봐주고, 치료해주고, 정신과까지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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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시간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 / RFA photo

 

방과 후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술래잡기도 하며 자유 시간을 보냅니다.  

 

유난히 서로 얼싸안으며 장난을 치는 최 즐라타 양과 유가이 아나스타시아 양은 올해 11살 동갑내기로, 각각 지난 4월과 5월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유가이 아나스타시아]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봤지만, 무섭진 않았어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몰도바 국경까지 차를 타고 가다가 너무 길이 막혀서 걸어갔어요. 몰도바에서 한 달 반 정도 살다가 버스를 타고 루마니아까지 갔어요. 3주 동안 루마니아에서 지내다가 엄마, 친언니, 이모와 함께 한국에 오게 됐어요.

 

[최 즐라타] 폭탄 소리를 들었어요. 먼저 친척이 사는 시골로 갔다가 버스와 차를 타고 루마니아까지 간 뒤 두 달 동안 그곳에서 살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동생과 같이 왔는데, 아빠가 아직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어요.

 

전쟁 이야기를 하자 두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집니다.

 

[최 즐라타] 아빠와 동영상으로 연락해요. 아빠가 계신 곳은 조용한 것 같아서 좋았어요. 아빠가 그쪽 소식을 전해줘요. 옛날에는 아빠랑 한국에도 왔었는데, 전쟁이 난 후에는 비자를 못 만들어서 함께 못 나왔어요.

 

아빠 이야기에 최 양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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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수업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 최 즐라타 양(가운데)과 유가이 아나스타시아 양(오른쪽)은 전쟁을 피해 지난 4월과 5월에 한국에 입국했다. / RFA photo

 

청소년센터의 교사로 재직 중인 박 빅토리아 씨는 어린이들도 나이에 따라 전쟁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른 것 같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어린이는 전쟁에 관해 별로 말을 하지 않거나, 대답도 또는 아니오등 단답형입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죽음’, ‘이별등의 현실을 조금 더 정확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박 빅토리아] 나이가 좀 많은 학생들, 특히 중학생, 고등학생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죠. 왜냐하면 죽은 사람을 봤거나, 또 어떤 학생들은 여기에 어머니만 같이 오고 아버지는 그쪽에 남았거든요.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남자는 병역의 의무 때문에 못 나옵니다. 그래서 전쟁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이 너무 큰 피해를 입고 있어요.

 

전쟁이 발발하고, 지난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우크라이나를 취재했던 일본인 와타이 타케하루 기자는 일상이 파괴된 현장을 지옥으로 비유합니다.

 

[와타이 타케하루]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많은 건물이 붕괴했고,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처형이나 고문 등 많은 전쟁 범죄가 벌어진 것을 목격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시체도 봤고요. 러시아 군인들의 시신도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매우 끔찍하고 그 참상을 목격하는 것도 힘듭니다. 또 현재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도 어렵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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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의 폭격으로 불타고 무너져버린 건물 / Watai  Takeharu 제공 

 

신 센터장은 전쟁으로 삶의 터전과 일상을 빼앗기는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신조야] 누가 이렇게 시작하는 건지, 왜 이렇게 하는지, 왜 이렇게 불쌍한 국민들이 다 죽고, 이렇게 고생하는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쟁 난다고 하면 국민들이 다 죽어요.

 

어느 날 갑자기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기다림은 이제 시작입니다.  

 

[신조야] (고향에) 못 가요. 왜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때까지 우크라이나에서 20년 넘게 살았어요. 20년 동안 농사짓고, 돈 조금씩 벌어서 시골에 집 하나 사 놓고 그 집을 꾸려 놨는데, 살자니까 집에 폭탄이 터졌는데 어떻게 돌아가요. 돌아간다고 해도 어디에서 살 수 있겠어요. 집도 없는데….

 

1950년 한국전쟁과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분쟁의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RFA는 망각(忘却) 대신 ‘기억의 지속’을 통해 이들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취재: 노정민, 천소람, 박수영, Monique Mai, Lauren Kim

촬영: 이은규, Lauren Kim, Paul Lee

에디터: Nadia Tsao, 박봉현, H. Léo Kim, 박정우, Beryl Huang, Tina Hsu, Brian Tian

그래픽, 웹페이지 제작: 김태이

내레이션: 양윤정

더빙: 서혜준, 박재우

번역: 뢰소영

참고 자료: KBS, SBS, YTN, AP

제작: RFA 

 

  • 취재에 응해주신 우크라이나 난민 안 엘레나 씨 가족과 광주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 관계자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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