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미얀마를 가다’ ] 2부:"미얀마 경제에 후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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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5월 16일은 한국과 버마, 그러니까 미얀마가 수교한 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를 계기로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미얀마가 201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개혁·개방 조치, 이로 인한 경제 발전, 그리고 미얀마에 불어 닥친 한류 열풍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로 미얀마의 개혁·개방 정책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얀마 양곤의 보족(Bogyoke) 거리. ‘양곤 종합병원’과 ‘보족 아웅산 시장’, 그리고 최신식 상업용 건물인 ‘사쿠라 타워’ 등이 위치한 번화가입니다. 이곳 보족 거리에는 ‘루비 마트’(Ruby Mart)라는 이름의 5층짜리 상가도 있습니다. 각 층마다 온갖 종류의 공산품이 가득합니다.

이 건물 꼭대기 층에는 ‘요리사’를 뜻하는 ‘미스터 쉐프’(Mr. Chef)라는 식당이 영업 중입니다. 오후 12시 30분. 잔뜩 멋을 부린 젊은이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 끼 가격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미얀마 돈으로 1,000짯에서 3,500짯 사이. 미국 돈으로 1달러에 조금 못 미치거나 3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미얀마 월 평균 임금이 100달러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끼 식사로는 비싼 편입니다.

그래도 이곳 ‘미스터 쉐프’ 식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는 판형 컴퓨터(태블릿PC)를 들여다보며 밥을 먹는 젊은이들도 눈에 띕니다. 최근 2~3년 사이 양곤에서는 이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고 현지인들인 말합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루비마트를 빠져나와 남동쪽으로 한 시간여 자동차로 달려 도착한 띨라와. 이곳은 미얀마 정부가 일본 자본의 도움을 받아 건설하고 있는 경제특구입니다. 공단으로 조성 중인 부지는 자동차로 한참을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습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특구 1단계 지역 내 여덟 개 공장이 이제 거의 완공됨에 따라 띨라와 경제특구는 6월 말이면 시범 가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양곤 남쪽 번화가에 위치한 ‘사쿠라 타워' 인근 도로가에서 10대 소년과 50대 여성이 타치폰(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시장개방과 더불어 미얀마에는 2~3년 전부터 휴대전화 열풍이 몰아쳤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한 반 학생 40여명 중 30여명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RFA PHOTO/ 박성우
양곤 남쪽 번화가에 위치한 ‘사쿠라 타워’ 인근 도로가에서 10대 소년과 50대 여성이 타치폰(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시장개방과 더불어 미얀마에는 2~3년 전부터 휴대전화 열풍이 몰아쳤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한 반 학생 40여명 중 30여명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RFA PHOTO/ 박성우

띨라와 특구의 전체 넓이는 2,400헥타르(726만평)이며, 이 중 1단계 지역은 400헥타르(121만평) 가량입니다. 띨라와 특구의 총면적은 당초 2,000만평 규모로 조성할 예정이었던 남북합작 경제특구인 개성공단의 3분의 1 크기이지만, 띨라와 특구 1단계 지역(Class A)의 면적은 현재 운영 중인 개성공단 1단계 지역보다 20만평 가량 더 넓습니다.

이곳 띨라와 경제특구 조성 공사는 2013년 11월 시작됐고, 이르면 2016년 완공하는 게 목표로 알려졌습니다. 미얀마 수출입 물동량의 85%를 차지하는 띨라와 항구가 위치한 이곳 경제특구에서는 미얀마 경제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미얀마의 정치가 바뀌니 이처럼 가장 크게 변화한 건 경제입니다.

1962년 군부 쿠데타로 ‘미얀마식 사회주의’가 시행된 이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0년까지만 해도 800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아시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했던 미얀마가 2011년 테인 세인 정부의 출범 이후부터 개혁과 개방 정책이 추진되자 나라의 살림살이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미얀마에서 20년째 살면서 스무 개 이상의 서구식 음식점을 운영해 현지 요식업계 ‘큰 손’으로 불리는 정주아 사장은 2011년 개혁·개방 정책이 추진되기 이전과 이후 외국인들의 미얀마 시장에 대한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정주아 사장: 달라지죠. 외국 기업인들이 미얀마에 투자를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그 척도가 뭐냐면 ‘미얀마 정부가 얼마나 안정적이냐’입니다. 우리 경제인들도 사업을 확장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정하게 된 계기가 2011년이었어요. 테인 세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미얀마 경제인들이 믿기 시작했죠. ‘이제 미얀마는 바뀌는구나’, ‘개방이 되는구나’, ‘우리 빨리 준비를 하자.’ 이런 전체적인 움직임 때문에 외국 기업인들도 계속 시장조사를 온 거죠. 제일 바빴던 때가 2012년과 2013년입니다. 정말 미얀마가 바빴죠.

2011년 이전에는 정주아 사장도 ‘문 베이커리’라는 이름의 음식점만 운영하다가 테인 세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2013년 4월에는 한국의 고기겹빵(햄버거) 전문 ‘롯데리아’를, 그리고 2015년 1월에는 불고기 전문 식당인 ‘불고기 브라더스’를 미얀마에 들여와 개점했습니다.

5월 13일 현재 미얀마에서 정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은 ‘문 베이커리’ 16개, ‘롯데리아’ 7개, 그리고 ‘불고기 브라더스’ 1개입니다.

정주아 사장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인들이 미얀마에서 사업을 시작하거나, 혹은 확장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미얀마 정권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이제는 투자해도 괜찮겠구나’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포드나 코카콜라 같은 외국 기업이 잇따라 진출합니다.

2003 회계연도의 경우 미화로 1억 달러에도 못 미쳤던 미얀마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2010 회계연도에 사상 최대 액수인 2백억 달러를 기록했고, 이후 2012 회계연도의 경우 14억 달러까지 떨어지는 하락세를 보이다가 2013 회계연도에 41억 달러를 기록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의 질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2011년 이전에는 광산, 가스, 수력발전 등 미얀마 자원을 “뽑아가기 위한” 투자에 집중됐다면, 지금은 부동산 개발, 교통, 통신, 제조업 등으로 투자 대상이 다원화됐기 때문입니다.

외국 자본이 미얀마에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우수한 지정학적 입지 조건을 갖춘 미얀마가 이제는 개혁·개방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미얀마 무역관의 안재용 관장은 설명합니다.

안재용 관장: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지정학적 입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전 세계 3대 신흥 경제권으로 중국, 인도, 아세안을 들 수 있는데, 아세안의 모서리에 서서 중국 인도와 접경하고 있는 곳이 바로 미얀마이고요. 다시 말해서 미얀마는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출구이고, 인도가 아세안으로 진출하기 위한 입구죠. 이런 이유로 인해 미얀마가 굉장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죠. 더 큰 이유는 이런 나라가 그 동안은 폐쇄돼 있다가 경제 개방으로 인해 2~3년 전부터 모든 나라가 미얀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미얀마는 임금이 쌉니다. 초과근무 수당과 사회복지 비용을 다 포함해도 월 평균 임금은 미화로 100~110달러 정도라고 안재용 관장은 말합니다. 중국의 5분의 1, 베트남의 2분의 1 수준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화가 대거 미얀마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 경제는 당분간 호황을 누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미얀마 경제가 향후 10년간 연 7~8% 성장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3,000달러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얀마가 앞으로 수년간은 연평균 8.2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990~2010년 사이 미얀마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이 4.7%였음을 고려할 때, 2011년 경제개혁 이후 성장세가 2배 가량 높아진 겁니다.

그런데 부작용도 만만찮습니다. 우선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이 갑자기 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년여 기간 동안 일본의 미얀마 현지 상공회의소 회원사는 50여개에서 220여개로 4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 기업들의 직원과 임원이 근무하고 주거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진 겁니다.

안재용 관장: 외국인을 위한 주거용 빌딩은, 물론 외국인이 갑자기 많아지는데 주거용 주택은 아직 개발하는 중이라 시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긴 하지만, 방 3개짜리 외국인 전용 고급 아파트 단지의 월 임차료가 7,000~8,000불입니다. 3년 전 2,000불대에서 7,000~8,000불대로 늘어났기 때문에, 미국의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와 가격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미얀마 현지인들 역시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양곤 중심지의 경우, “1,000만짯이면 살 수 있던 80평짜리 부지가 2~3년 사이 억대로 가격이 뛰었다”고 미얀마 한인 소식지 ‘모닝 미얀마’의 권병탁 대표는 말합니다.

갑작스러운 땅값 상승은 미얀마 경제에 거품이 있음을 뜻합니다. 이 거품이 꺼지면 미얀마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도 상당히 클 수 있습니다.

도시 중산층과 시골 빈민층의 극심한 양극화도 큰 문제입니다. 5,200만으로 추산되는 미얀마 인구의 32% 가량이 빈곤선 아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CIA 2007년 추정치)

양곤 시내 길거리에서 파는 국수는 미얀마 돈으로 한 그릇에 400~500짯 정도입니다. 미국돈 1달러로 두 그릇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곤 번화가에 있는 ‘사쿠라 타워’ 꼭대기 층에 있는 고급 식당 ‘스카이 비스트로’(Sky Bistro)에서는 점심 한 끼 가격이 8,000~9,000짯, 그러니까 미화로 7~8달러입니다. 잘 사는 사람의 점심 한 끼 값이면 빈곤층 14~16명이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회 기반시설 개발도 더디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아직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어 밥 먹듯 정전이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얀마는 여전히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지난해 세계은행의 기업 환경 평가에서 미얀마는 189개 조사 대상국 중 177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현지에 진출한 기업인들은 미얀마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주아 사장: 예를 들어서, 우리는 지금 고속도로를 탄 거죠. 고속도로를 타고 지금 시속 20(km)으로 가고 있어요. 속도를 20으로 그냥 갈 것인지, 아니면 30으로 갈 것인지, 40으로 갈 것인지가 남아 있죠. 우리는 고속도로를 탔기 때문에 백(back)을 할 순 없어요. (기자: 뒤돌아 갈 수는 없다?) 없습니다. 100% 앞으로 나갑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도 미얀마의 미래는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향후 선거를 통해 미얀마에서 다시 한 번 성공적으로 정권 이양이 이뤄진다면 미국도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좀 더 완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미얀마 경제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현지 전문가들은 내다봤습니다.

안재용 관장: 올 연말에 총선과 대선이 이뤄지게 되는데요. 그 선거로 인해 아웅산 수치 여사와 현 군부 중심 정권 간의 알력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미얀마에, 미얀마가 기회의 땅인 것 같기는 한데, (투자를) 좀 조심하는 기업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사실은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면 대규모 소요사태나 큰 지각변동 보다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정권이 유지되면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되고 있고요. 그런 차원에서 결국은 새로운 정권이 나왔을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질 텐데,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잠자고 있던 미얀마의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얀마는 한반도의 3.5배에 달하는 국토를 가진 나라입니다. 인도와 중국 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3모작이 가능한 기후와 5,200만 내수시장, 그리고 원유, 천연가스, 아연, 텅스텐,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얀마 경제는 이제 정부 차원의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순풍에 돛을 단 듯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양곤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성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