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이장균): 자유아시아방송이 2011년 새해를 맞아 다섯 차례에 걸쳐 보내 드리고있는 특집방송 '북한에 부는 변화의 바람'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북한이 두려워하는 대북 심리전' 편을 보내드립니다. 지난해 3월 북한이 한국 해군 천안함을 폭침한 뒤 한국 정부가 취한 최우선적 대응 조치는 심리전이었습니다. 한국 군당국은 대북 방송을 시작했고 군사분계선 인근 최전방 지역 11곳에 심리전용 확성기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대북 삐라 120만장을 제작했습니다. 북한은 이에 대해 한 달이 멀다하고 남한에 대한 전면적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하겠다며 위협 수위를 높여 왔습니다. 북한 군부가 '선전포고'라고 까지 간주하고 있는 남한의 '심리전', 그 내용은 무엇이며 북한이 왜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전수일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이: 북한이 '선전포고' 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는 한국의 대북 심리전, 북한이 두려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 한마디로 사실과 진실이 북한 주민과 인민군에게 알려지게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신처럼 숭배하고 있는 '한없이 자애롭고 위대한 영도자'가 남의 부인을 가로채 동거하고 애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북침이라고 배운 한반도 전쟁은 김일성이 쏘련의 스딸린에게 남침 승인을 받아 일으켰다는 진실을 접하게 됩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 거지가 많다는 남조선은 북조선 인민보다 100배나 잘 살고 세계 12위 경제 강대국이란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고난의 행군으로 북조선 인민 수백만이 굶어 죽어도 '경애하는 장군님'과 그 측근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소식도 알게 됩니다. 60여년의 독재 통치하에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로 권력을 세습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북조선이 유일하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됩니다.
이: 그 어느 것 하나 북한의 권력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사실과 진실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전: 그렇습니다. 이런 사실과 진실들은 하늘처럼 떠 받들고 있는 수령의 유일통치체제의 근간을 좀 먹고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60년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의해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혔던 주민들이 남한의 방송과 삐라로 눈을 뜨게 되고 귀를 열게 되는 것이죠.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돼 왔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지도자에 대한 인민들의 절대복종과 숭배사상. 이념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북조선 정권과 체제가 급기야 붕괴로까지 발전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북한 정권으로서는 총탄 한 발 쏘지 않는 한국의 대북 '심리전'이 한미연합군의 서해바다 합동훈련보다 더 두려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 그렇게 심리전이 북한에 대해 위협적인 것이라면 왜 한국은 이를 이제껏 활용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청취자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전: 우선 한국의 심리전에 대한 근래 북조선 당국의 공식 반응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살펴 보면 그 이유가 나타납니다.
북조선 당국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심리전 재개 시도는 6.15 선언과 그에 기초한 북남 군사적 합의에 대한 노골적 파기행위로 우리의 존엄과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특대형 도발이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대응했습니다.
"북한은 각종 매체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악의적으로 비난하고 남한 사회 교란을 위해 허위 조작과 선전선동을 해왔다. 북한은 3월 26일 천안함을 폭침했고 11월 23일 연평도를 포격했다. 이는 유엔헌장의 위반이고 한반도 정전협정 위반이다. 남북 불가침과 상호 비방 중상을 금지한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를 깬 것이다."
북한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남한은 대북 방송과 대북 삐라를 살포했었습니다. 하지만 6.15 선언 이후 중단했습니다. 또 2003년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겠다면서 남측에도 상응한 조치를 요구해 남한은 전방 지역에 설치된 확성기를 철거했습니다. 이같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 심리전 중단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심리전FM방송이 즉각 재개됐고 전방지역에 확성기가 설치됐습니다.
이: 다시 말해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 한국의 대북방송 심리전을 재개한 계기가 됐다는 말이네요.
전: 그렇습니다. 삐라 역시 천안함 폭침 이후 준비만 해뒀었는데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자, 그날 저녁에 경기도 연천, 김포 그리고 강원도 철원 대마리 등 전방 지역 네 곳에서40만장을 살포했다는 것입니다. 삐라를 통한 심리전도 다시 시작된 것이죠.
이: 삐라 얘기가 나왔으니 말입니다만, 한국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삐라 심리전이 재개됐다고 할 수 있지만 민간단체들은 몇 년 전부터 이미 지속적으로 대북 삐라를 날려오지 않았습니까?
전: 그렇습니다. 6.25전쟁을 전후해 남한으로 피난간 실향민들의 단체와 납북된 가족들의 단체, 또 북한인권 개선운동을 펴고 있는 단체나 반공 시민단체 등이 대북 삐라를 날리고 있지만 1년에 한 두 번 정도로 규모가 작습니다. 가장 적극적이고 수시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삐라 날리기를 주도하고 있는 단체는 탈북자 단체들입니다. 이들은 북한의 참담한 실상을 잘 알고 있고 또 북한 당국의 거짓 선전 선동을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북 삐라 날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죠.
이 :민간단체의 삐라 날리기로는 탈북자 이민복 씨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죠?
전: 맞습니다. 대북 삐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죠. '대북풍선단'과 '기독북한인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 2001년부터 대북 삐라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소형 라지오나 구호물자 디브이디씨디알을 함께 보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고안한 대형풍선 하나에 5만장 정도의 삐라를 매달아 풍선 너 댓 개 혹은 예닐곱개 정도를 띄웁니다. 삐라 2십만장에서 4십만장 정도가 살포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지난 10년동안 북에 살포한 삐라가 무려 2억장을 넘는다고 합니다.
이: 이민복 씨는 북조선과학원의 농업과학자였다죠? 1995년 한국에 입국한 뒤 기독교 신학대학교를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전: 그렇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 뒤 삐라날리기와 대북방송이 중단되는 것을 보고 북한에 삐라를 날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자신도 철원에 출장 갔다가 남조선 삐라를 보고 탈북 결심을 굳힌 사람입니다. 6.25가 북침이 아니라 남침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삐라였다고 합니다. 이 씨는 북한 체제 유지의 세 가지 핵심인 수령우상화, 혁명주의, 선군주의를 공략하는데 삐라 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민복 씨 얘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이민복: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무너뜨리는 게 의뢰로 쉽습니다. 왜냐면 그것들은 거짓 역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실을 투입하면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북한도 그걸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의 최선 최후의 통치수법은 폐쇄입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북의 폐쇄를 뚫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뚫어가지고는 수령우상화, 혁명주의, 선군주의 세 가지를 쳐야 합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풍선입니다. 풍선은 삐라만 보내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구는 라지오와 구제물자도 달 수있는 북한의 폐쇄를 뚫을 수 있는 종합적인 수단입니다. 이건 레이다나, 육안으로도 확인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정치적 의지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주민들에게 직접 들어가고 값싸고 안전하고 또 가장 평화적인 수단입니다.
지금도 이민복 씨는 북쪽으로 바람만 부는 날이면 비무장지대로 삐라 차량을 몰고 갑니다. 강원도 경기도 강화도 백령도 등 장소를 정하지 않고 풍향에 따라 거의 매일 삐라 날리기를 하는 게 일이라고 합니다.
이: 북한이 관련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삐라 날리기를 하는 다른 탈북자 단체도 있죠?
전: 네. 탈북자 박상학 씨가 이끄는 자유북한운동연합입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인 박 씨는 김책공대를 졸업하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산하 속도전 지도총국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일했었고 1999년 8월 탈북해2000년 2월 한국에 가족과 함께 입국했습니다. 박 씨 역시 1993년 원산의 친구 만나러 갔다가 한국에서 보낸 삐라에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훗날 북한 탈출 가능성을 마음에 간직하게 됐다고 합니다. 박씨는 2004년부터 주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과 강화도에서 대북 삐라를 날리고 있습니다. 한 두 달에 한 번, 그리고 한 번에 10만장에서 20만장 정도입니다.
이: 매년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때와 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삐라를 날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삐라와 함께 북한 원화나 중국 위안화, 또 미국 달러도 보내고 있다죠?
전: 그렇습니다. 주로 미국 돈 1달러 짜리 지폐를 풍선 한 번 날릴 때1000장 정도 넣어서 보내고 있습니다. 2009년 11월 말 북한의 화폐교환 조치 후 북한 돈 5천원 짜리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돈 말고도 작년부터는 북한 관련 사건 진상에 관한 뉴스보도와 동영상이 담긴 디브이디씨디알도 포함시키고 소형 라지오도 보내는 때가 많습니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의 뇌졸중 타격, 2009년 11월 서해교전, 같은 달 북한의 화폐교환조치,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북한 주민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삐라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 18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탈북자 단체로는 처음으로 연평도에서 삐라를 날린 박상학 씨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박상학: 북한이 이제까지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 우리민족끼리라는 거짓과 위선을 내걸고 끊임없이 우리 민족에 대한 도발과 테러를 감행한 사실과 진실을 대북 전단에 실었고, 또 천안함 폭침에 이어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6.25 이후 첫 우리 영토에 대한 포격행위에 대해 적었습니다. 학교에서 불과 10여미터에 있는 포탄 피해 현장에 부모님이 새로 사줬을 학생 자전거가 포탄에 맞아 휘어진 광경, 이런 걸 보고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내용을 대북 전단에 모두 적었습니다. 우리민족끼리의 화합을 내세우면서 등 뒤에서 칼을 박는 김정일의 세습독재에 반대해 이를 타도하기 위해 북 주민들도 들고 일어나 싸우라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삐라와 함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관한 자료와 뉴스를 모아 만든 씨디 5백장하고 1달러 짜리 미화 1,000장을 넣어 보냈습니다.
이: 박상학 씨가 삐라에서 지적하는 북한의 거짓과 위선에 관한 세부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전: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부자에 의한 조작된 역사, 또 선군정치의 진실, 그리고 북조선과 한국의 경제,사회,졍치적 차이 등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작된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부분에서는 '북조선 정부는 쏘련에 의해 세워진 괴뢰정부'였음을 지적합니다. 그 근거로 1945년 9월 20일 스딸린 수상이 연해주 군사평의회 등에 보낸 극비명령서에 '북조선에 민주주의를 가장한 프로레탈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합니다.
또 6.25 전쟁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스딸린에게 1년 3개월 동안48번이나 비밀전문을 보내 공산체제 통일을 위해 남침 허가를 요청했고 1950년 2월에 어렵게 승인을 받아 6월 25일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고 기술합니다.
그리고 남북 간의 차이에 대해서는 한국이 1960년대부터 추진한 개혁 개방으로 현재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이 됐다는 점과 한국의 국민소득과 해외수출 산업생산 전력생산 등의 통계를 인용해 북조선 경제의 100배 이상을 성취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특히 이 삐라에는 김정일에 대한 거짓 기록과 복잡한 사생활을 폭로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 그렇습니다. 요약하면 김정일이 태어난 곳은 백두산 밀영이 아니라 쏘련 하바롭스크 주 쏘련군 야전병원이라는 것, 또 그의 처는 공식 비공식 합쳐 9명이고 그밖에도 동거했거나 첩으로 뒀던 여성이 수십 명 된다는 점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맏아들 김정남은 유부녀 영화배우 성혜림을 데리고 살다 낳았고, 그 다음에는 무용배우 고영희와 눈이 맞아 성혜림을 모스크바로 쫓아 보낸 뒤 낳은 아들이 정철과 정은이고 -정은은 현재 김정일의 후계자가 됐죠- 그리고 지금은 40대 중반의 여비서 김옥을 내연의 처로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매한 공산주의 풍모와 고상한 인격, 순결하고 소박한 자애로운 인민의 지도자'가 할 짓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삐라 마지막 부분에는 김정일의 처 아홉명과 낳은 자식들을 도표로 그린 가계도가 인쇄돼 있습니다.
이: 대북 삐라를 비롯한 심리전의 효과는 실제 얼마나 될 지 궁금합니다.
전: 계량적으로 측정하긴 어렵지만 북한 당국의 반응이나 탈북자들의 체험을 근거로 볼 때 그 효과는 상당하다고 판단됩니다. 우선남한의 대북 심리전에 대한 북한 당국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원색적이고 극히 공격적입니다. 그만큼 심리전은 북한에 위협이 된다는 방증입니다.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의 공식 반응을 보기로 하죠.
-5월 24일 인민군 전선중부지구사령관이 발표한 공개 경고장 내용에 " [남한이] 심리전 수단을 새로 설치할 경우[확성기를 뜻하죠] 그것을 없애버리기 위한 직접 조준 격파 사격이 개시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무력행사 위협은 다섯 달이 지난 뒤에도 거듭됐습니다.
-지난 10월 중순 남북 장성급회담의 북조선측 단장이 남측에 보낸 통지문입니다.
"남측이 대북 심리전 방송과 반공화국 삐라 살포행위를 중지시키지 않으면 방송수단과 삐라 살포 지점에 대한 우리[북조선]군대의 물리적 타격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6월 12일에는 북조선 인민군 총참모부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면전쟁까지도 하겠다는 이른바 '중대포고' 에서 다음과 같이 위협했습니다.
"반공화국 심리전 재개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 군사적 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며 "타격은 비례적 원칙에 따른 1대1 대응이 아니라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 본 무자비한 군사적 타격이 될 것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면 이것은 전면전을 불사한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5월 26일 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단장은 대남 통지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협박했습니다.
"[한국군의 심리전 방송 재개될 경우] 서해지구 북남관리구역에서 남측 인원, 차량에 대한 전면 차단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그러니까 파탄 난 북한경제의 유일한 젖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성공단마저 폐쇄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처럼 남한의 대북심리전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그야말로 '필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러니까 남한의 심리전에 대해 북한의 결사적인 반응을 보면 그 심리전의 효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겠죠?
전: 그렇습니다. 지난 달 21일에는 한국 군 당국이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을 맞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김포시 가금리에 있는 애기봉에 높이 30미터의 등탑을 점등했습니다.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2004년에 중단됐던 것을 재개한 것인데요. 군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은 애기봉 등탑이 인민군이나 주민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등탑 점등은 [그] 상징성이나 담긴 메시지[의도]가 적지 않다." 심리전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한국군 당국자가 확인한 것이죠.
이: 북한도 남한에 대해 삐라나 방송으로 대북 심리전에 대응하면 될 텐데 무력행사나 전면전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 한 마디로 북한은 대남 심리전의 효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1950년대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습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남북의 경제 상황은 엇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사회주의 경제개발정책이 계속 실패했고 91년 말 구쏘련이 붕괴하면서 동구권이 몰락해 외부 원조와 교류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현재 남북한의 경제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납니다. 한국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10위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도 80년대 군사 독재를 마감하고 문민 정부가 집권한 이래 자유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지 20년이 다 돼 갑니다. 특히 지난 10여년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을 위해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꾸준히 북한에 식량과 비료와 의류와 의약품 등을 지원해 왔습니다. 60, 70년대 처럼 북한이 낙원이니, 한국에는 굶주린 거지가 많다느니 하는 선전선동이 한국인들에게 먹혀들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북한으로서 남한의 심리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핵을 비롯해 남한보다 월등한 재래식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도발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아까 탈북자들의 체험을 볼 때에도 대북 심리전의 효과가 크다고 하셨는데요.
전: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심리전 방송과 대북 삐라가 북한 정권에 가장 위협적인 수단이라고 지적합니다. 2008년 12월한국의 한 방송사가 탈북자 320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사의 대북 방송을 청취했던 사람 가운데 10명중 7명 꼴로 '방송 청취가 북한이탈 결심에 도움 됐다'고 응답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북삐라 날리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민복 씨나 박상학 씨 모두 북한에 있을 때 한국의 삐라를 보고 북한의 거짓선전을 알았고 탈북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몇년 동안 중국 국경을 통해 북한에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담긴 씨디알이 북한 사회에 퍼지면서 한국의 대중문화 이른바 한류가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해 지고 있고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체제 불만이 늘어나고 있어 한국의 심리전이 잘 먹혀들 토양이 북한 사회에 마련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북조선 작가동맹 소속 시인이었던 탈북자 도명학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도명학: 옛날에 (대북심리전) 방송을 그만두기 이전의 북한사람들 정신 상태하고 지금 상태가 다르고, 옛날엔 한류랑 이런게 들어가지 않았을 때니깐 저쪽에서 나오는거 다 '개소리다' 이렇게 선전해도 먹혀들어 갔거든. 지금이야 특히 휴전선 일대 군인들 구성을 놓고 보면 옛날의 군인들과 달리 지금 있는 사병들이나 하급 장교들 경우에는 거의나 90년대 굶어 죽을 뻔 하다가 나온 애들이거든. 그니까 군인 기본 성분이 달라졌지 않아? 다 혼쌀나고, 부모가 굶어죽은 것도 있고 형제 죽은 것도 있고 속에 불만이 가뜩한 애들이야 그게.
이: 과거 삐라는 종이에 인쇄된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근래에는 얇은 비닐이 사용되고 있다죠?
전: 그렇습니다. 제가 이민복 씨가 집에서 직접 삐라 포장하는 것을 봤습니다. 노동신문 크기만 한 흰 비닐에 작은 글씨로 많은 양의 정보와 사실을 인쇄해 넣은 것입니다. 비닐삐라는 가볍기 때문에 몇 만 장을 대형풍선 하나에 매달 수 있습니다. 또 비닐이라서 물에 젖어도 찢기질 않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 삐라를 월동용 창문막이로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지난해 초부터는 이 삐라와 함께 디브이디 씨디알을 보내고 있는데요, 심리전에도 첨단 전자기기 활용이 시작됐다는 말이겠죠?
전: 그렇습니다. 앞서 탈북자 박상학 씨도 연평도 포격에 관한 사실을 담은 디브이디 씨디알 500장을 삐라와 함께 날렸다고 언급했었는데요, 이 씨디 알을 제작하는 사람이 탈북자 김승철 씨입니다. 이민복 씨가 날리는 삐라에도 김승철 씨가 제작한 씨디알이 같이 묶여 살포되고 있습니다. 김 씨는 북조선에서는 수력발전소 설계기 설계원이었고 1991년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갔다가 1993년 탈출해 1994년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대북방송인 '북한개혁방송'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2009년 11월 서해교전과 관련한 진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해 씨디알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승철: 올 2월부터 4월, 5월 초까지 보낸 것은 서해 무장충돌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1999년, 2002년, 작년 등 세차례에 걸친 서해교전 사건을 담았습니다. 충돌의 원인과 결과를 구체적으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해군기지도 구글 위성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 등을 담아서 46분짜리로 만들어 북한에 보냈습니다.
전: 김승철 씨는 또5월 20일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조사단의 공식조사결과 발표가 나온 뒤 모든 관련 영상 보도를 모아 새 씨디알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승철: 저희는 이걸 설명 하기보다는 시간대별로 쫙 짜서 사건의 추이를 그대로 보여주면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어떻게 공격을 당했고, 공격어뢰는 북한 것이고 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남한과 함께 얼마나 분노하고 또 북한에 제재를 가하려 하는지, 그리고 중국은 김정일 뒤를 어떻게 봐주고 있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려고 3월 26일부터 5월31일까지 관련 티비 뉴스만 날짜별로 쫙 모아서 보냈습니다. 분량은 3시간 23분 정도 됩니다.
이: 그러니까 삐라로는 신문지 두 페이지 분량의 문자만 전달할 수 있지만 디브이디씨디알 한 장에는 두 달 치 텔레비전 방송보도 영상을 담을 수 있다는 말이군요.
엄청난 분량의 생생한 현장 동화상과 음성을 북한 주민들이 보고 들을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전자삐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 그렇습니다. 북한 인민 사이에서도 씨디알판이나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젊은층에서 한국과 외부세계의 정보와 소식에 대한 동경과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대북 심리전 수단은 삐라나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전자기기를 이용한 매체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게 김승철 씨의 주장입니다.
이: 네, 지금까지 작년 3월 북한이 한국 해군 천안함을 폭침한 뒤 한국 정부가 취한 대북 심리전과 관련해 북한이 군사적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수일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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