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온 북한 주민들이 올 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80주년 생일을 맞아 특별공급에 큰 기대를 했지만, 열악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마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평양과 달리 지방에는 자체적으로 특별공급을 해결하라는 지시가 내려질 만큼 올해 북한이 광명성절과 태양절을 자축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는 지적입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방에서도 특별공급 못 받은 주민 많아
북한 양강도 혜산 주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을 앞두고 (2월 10일) RFA에 전한 현지 분위기는 북한 당국의 선전내용과 사뭇 달랐습니다.

대규모 기념 보고대회와 음악회, 예술공연 등이 예고됐거나 진행됐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이 가장 기대했던 특별 공급은 실망스러울 정도였다고 이 주민은 털어놨습니다.
RFA가 일본의 ‘아시아프레스’를 통해 접촉한 이 북한 주민은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국가 차원의 공급이 전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기관, 기업소별 자체 공급도 명절공급이라기엔 초라한 수준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그는 ‘이번 태양절에 큰 행사를 많이 한다고 한다’며 올 해 광명성절과 태양절 특별 공급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특히 북중 국경이 봉쇄된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주민들이 광명성절을 맞아 국가에서 주는 배급과 선물 등에 관심이 컸다고 털어놨습니다.
반면, 광명성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진짜 그날을 좋아하기보다 선물도 주고 공급도 있고 쉬니까 좋아한다’며 ‘지금도 애국심 같은 것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죠’라고 답했습니다.
오히려 행사에 따른 특별경비주간 때문에 귀찮다며 ‘위에서 시키면 따라다니는 것뿐’이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실제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올해 광명성절에 즈음한 지방 도시의 특별공급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함경북도에서는 기관과 기업소마다 국영상점을 통해 간장, 된장, 비누, 치약 등이 공급됐으며, 옥수수는 이틀치 분량이 전부였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옥수수로 만든 사탕이 배급됐는데, 이마저도 함경북도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이었습니다.
양강도에서도 국가 차원의 공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기관과 기업소별로 간장, 된장 등 기초식품을 나눠줬지만, 모든 주민이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2월 15일) RFA에 김정은 정권이 처음부터 지방마다 특별 공급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탓에 지방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이번 특별공급에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북한 당국이 이전부터 지방 도시의 당 기관, 행정기관에 '이번 명절의 특별 공급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거죠. 한 마디로 국가적인 재정투입은 없지만, (광명성절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민족의 명절이기 때문에 반드시 (특별 공급은) 해야 하는데, 국가가 도와주지 못하니까 지방에서 해결하라는 일방적인 지시였다고 볼 수 있죠.
최근 (2월 14일) 북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소식을 들은 탈북민 김혜영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도 RFA에 ‘광명성절을 맞아 가족이 특별공급을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니 돈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김혜영 씨(가명)] 특별공급을 받았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돈을 보내 달라고 하는데, 중간 브로커가 제시한 수수료가 52%였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요. 지금 국경지역 주민들도 장사가 매우 힘들고 물가와 송금 수수료가 너무 높다고 합니다.
모든 주민이 특별공급을 받지 못한 이유는 지방에서도 기업소의 노동자들에게만 나눠줬기 때문입니다.
장사나 다른 이유로 기업소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급에서 제외됐는데, 김 씨의 가족도 기업소에 나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그 만큼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기업소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사에 종사하는 사람들, 퇴직한 세대들에는 전혀 특별공급이 없었다는 거죠. 반면, 기업소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은 북한 당국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만 특별공급을 준다는 것은 북한의 전통적인 통치 수단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의지를 느끼고요.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탓 , 특별공급도 평양에만 집중
한편, 이번 광명성절 특별공급은 평양과 지방의 차이가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양 시민들에는 꽤 푸짐한 명절 공급이 이뤄졌는데, 지난 1월 화물열차를 통해 들어 온 중국산 물품이 평양 시민들에게 우선 분배되고 지방에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2월 15일) RFA에 식량 부족, 코로나 방역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탓에 모든 북한 주민이 광명성절을 축하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특사] 올해 광명성절은 김정은 총비서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찬양함으로써 지도자의 정통성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날이지만, 식량 부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내부 문제 때문에 광명성절을 축하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닙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이 명절을 즐길 만큼 식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벤자민 카제프 실버스타인 미국 스팀슨센터 객원연구원도 (2월 10일) RFA에
어려운 경제 상황이 광명성절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최근 화물 열차 운행 재개로 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물품이 많아졌겠지만, 주민들의 생활에 실제로 큰 도움을 줬을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김정은 정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광명성절 특별공급도 체제의 핵심 기반인 평양에 집중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 지방에서는 사람들에게 '이번에는 국가의 지원이 없다'는 사전 통보가 있었다고 하고, 지난 1월 신의주를 통해 들어온 중국 상품도 모두 평양 시민들의 특별 공급으로 주게 돼 있고, 지방에는 오지 않는다는 간부들의 설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민족 최대 명절에 최소한 평양 시민에는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서 김정은 정권의 통치 기반이자 핵심 도시인 평양 사람들에게 많이 주자고 결단했다고 봅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학교 교수도 (2월 11일) RFA에 코로나 방역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김정은 총비서가 바라는 만큼 광명성절 80주년, 태양절 110주년을 기념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트로이 스탠가론 미국 한미경제연구소 선임국장은 북한 주민들이 태양절을 맞아 북중 국경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지만, 북중 국경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기에는 두 나라 모두 코로나 방역에 관한 기준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