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 4월 개최될 예정이었던 평양마라톤대회가 결국 취소됐습니다. 4년 연속 취소된 건데요, 대회가 언제쯤 다시 열릴지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과거 평양마라톤에 직접 참가했던 외국인 3명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폐쇄적인 국가에서 마라톤은 정말 이색적인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다시 참가할 거냐는 질문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고려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재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올해 4월 개최되기로 예정됐던 북한의 평양 마라톤대회가 4년째 취소됐습니다.
이 대회 공식 협력사인 ‘고려투어(Koryo Tours)’는 지난달 9일 대회 취소 소식을 알리며 "내년 4월 14일에 다시 개최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됐다"고 밝혔습니다.
평양 마라톤대회의 공식 명칭은 ‘만경대상 국제 마라톤’으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태양절(4월 15일) 즈음에 열리는 행사입니다.
1981년 처음 대회가 열렸고, 그간 내국인 참가만 허용하다 2014년부터 외국인의 출전을 허용해왔습니다.
김일성 경기장 또는 능라도 경기장에서 시작하는 평양 마라톤대회는 대동강을 따라 왕복하는 코스로 42km 풀 마라톤, 21km 하프마라톤, 10K 달리기, 5K 달리기로 나뉩니다.
평양 마라톤은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평양의 곳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세계 10대 이색 마라톤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진 리 AP 통신 초대 평양지국장은 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 정권이 평양을 자랑하고 선전하기 위해 마라톤 대회가 이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리 전 지국장 : 평양에서는 김일성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각종 행사들이 4월에 열립니다. 북한이 도시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관중들과 참가자들은 고도로 동원되고 조직화돼 있고, 북한은 이를(마라톤) 선전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광 산업은 대북제재 대상에서 예외여서 국제사회의 엄격한 대북제재 속에서도 2019년까지지 계속 열렸고, 이 때문에 북한이 국경을 개방한다면 평양 마라톤도 다시 재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독일인 더크 에센바허(Dirk Eschenbacher), 중국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영국인 알렉 애쉬(Alec Ash), 그리고 스위스 스키 대표선수인 미리암 예거(Mirjam Jaeger)로부터 평양마라톤 참가 경험을 들어봤습니다.
더크 :제 이름은 더크입니다. 중국에 살고 있고, 중국에서 여행사를 설립해 운영 중에 있습니다. 저는 2015년 평양에서 하프 마라톤을 뛰었는데 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알렉 :자유아시아방송에 직접 찾아뵙게되서 기쁩니다. 저는 중국에 관한 책과 기사를 쓰는 작가입니다. 저는 2016년 평양 풀 마라톤을 뛰기 위해 북한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미리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미리암 예거입니다. 저는 전 스위스 스키 대표 선수였습니다. 은퇴한지는 8년이 됐습니다. 2019년 올림픽 기록영화팀과 함께 평양으로 가서 10K 마라톤을 뛰었습니다.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이 어떨지 호기심에 의해 ‘평양 마라톤’ 참가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더크 : 저는 원래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 평양 마라톤 관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많은 친구들이 중국에서 합류했고, 우리는 베이징에서 함께 평양에 3일동안 하프 마라톤을 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알렉 : 제가 참여하게 된 동기는 순전히 호기심이었습니다. 저는 2012년에 북한 국경에 있는 중국 마을인 단둥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조중우의교(압록강철교) 바로 옆에서 쌍안경을 통해 건너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식료품을 들고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2016년 평양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북한으로 여행이 흥미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미리암의 경우 올림픽 채널의 평양 마라톤 기록영화 취재차 방문하게 됐는데, 그의 방문 계기는 갑작스러웠다고 했습니다.
미리암 : 제가 촬영했던 올림픽 채널에서 오랫동안 이 기록영화를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2017년 오토웜비어 사망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여행 허용되지 않게 되자 제작진은 곧 출연진과 제작진을 바꾸어야 했고, 순식간에 일어진 일입니다. 올림픽 채널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1주일 뒤에 북한에 갈수 있니?', '또 가게 된다면 마라톤을 뛸 수 있을까?' 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마라톤을 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가능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몰랐지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7년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미국으로 송환된 지 6일 만에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으로 당시 북한 여행을 금지했고, 이 때문에 미국인 대신 스위스인이었던 미리암이 기록영화 촬영차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이들이 뛰었던 거리는 다 달랐지만, 평양 마라톤 도전은 이색적인 경험의 연속이었습니다.

“2010년대 북한 1990년대 중국 같아”
2015년 역대 두번째로 열렸던 평양 마라톤에 참석했던 더크는 북한의 회색 도시는 마치 중국의 90년대를 보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더크: 시작 전 경기장은 꽉 찼습니다. 외국인들은 무엇을 기대해야 할수 있을지 모르는 일종의 불확실성이 있었고, 관중석에는 흥분한 북한 관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뛰었습니다. 하프 마라톤은 10K를 두 번 뛰는 코스였는데 당시 주변의 모든 것이 놀랍긴 했습니다. 봄이었지만 녹색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은 회색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국과 2010년대의 북한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시간 초과 평양 시민들에 낙오자로 찍혀”
물론 당혹스러운 경험도 있었는데요. 알렉은 시간을 초과한 낙오자로 평양 시민들 앞에서야했습니다.

알렉 : 저는 마라톤 경험 자체가 제가 북한 관광 중에 본 것 중에 가장 진짜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관광 동안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데리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양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관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이는 난공불락의 나라에 대한 작은 일탈이었습니다. 42킬로미터 마라톤은 능라도 경기장을 시작으로 평양 중심부를 10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강을 건너 우정의 탑까지 달려가서 개선문을 통해 경기장으로 돌아갔습니다. 10K 경로이기 때문에 4번이나 뛰었습니다. 평양 마라톤은 풀 마라톤 코스에 4시간 제한 시간을 뒀습니다.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저는 4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지 못했습니다. 4시간 13분을 기록했죠. 그래서 당시에 제가 능라도 경기장에 들어왔을 때 주최측은 입구를 닫아놨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늦게 도착한 참가자들은 뒤쪽에 아직 닫히지 않은 문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문을 통해 그냥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들어갔을 당시는 우승자들에게 메달이 수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능라도 경기장에 꽉찬 관중들이 우리 낙오자들을 바라봤고 이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간신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되려 궁금증만 늘어”
미리암은 북한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찾아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궁금증만 더 가지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미리암 : 사실 북한에 가기 전에 좀 겁을 먹긴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분홍색 머리를 하고 몸에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북한에서는 염색과 문신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입국을 허용해주지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로 그 나라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처음 그렇게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갔습니다. 도착 후엔 모든게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우리는 여행 기간 동안 한정된 공간에 있었고, 제가 만난 이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분명히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봤던 것이 모두 사실인지 더 많은 궁금증을 갖고 돌아오게 됐습니다. 물론 마라톤은 굉장했습니다. 평양 주민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들은 우리만큼이나 흥분해 있었습니다. 달리면서 아이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구요. 다만 관중들은 동원됐고, 리허설을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올림픽 게임에 참여하는 것처럼 상당히 응원을 전문적으로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북한 사람들 다르지 않아…같은 사람일 뿐”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에 살고 있지만, 이들은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이들은 회고했습니다.
알렉 : 평양을 달려보니 마라톤 경로에 줄을 서거나 아파트에서 지켜보는 평범한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사탕을 먹고 있고, 할머니들은 흐뭇한 표정을 짓는 등 이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향해 하이파이브를 했고, 몇 명의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100미터를 달리기도 했고요.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든, 42km를 4시간 동안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가치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크 :마라톤 경주나 그 거리 장면은 아마도 저희 여행 동안 가장 '대본'이 없었던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수천 명의 북한 사람들이 응원을 하러 나왔고 꽤 많은 아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함께 뛰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는 결국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음 마라톤 참여는 개인적으로 쉽겠지만…”
마지막으로 내년이나 다음 번에 평양마라톤이 열리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다시 한번 참가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쉽게 참여하겠지만 고려해야할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알렉 : 스포츠 경기가 오랫동안 북한을 위한 선전의 한 형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방송되는 모습을 통해 북한이 세계적인 국가라는 것을 알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선전에 활용됐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게만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그것이 아무리 가짜일지라도 북한에 가서 아주 독특한 마라톤을 뛰고 북한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소중했습니다.
미리암 : 네, 단지 그 나라를 여행하고 그것을 내부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 때문에 저는 분명히 다시 갈 수 있으면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북한에 관심이 있다면, 저는 추천할 수 있고 저도 다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국제대회 개최와 관련해서는 과거에는 스포츠선수로서 스포츠와 정치를 불리시키는 것의 저의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리 전 지국장도 이들과 비슷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리 전 지국장 :북한이 평양 마라톤을 계속 개최한다면 북한 관광을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의 상당 부분이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핵 프로그램에 투입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북한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고려해야 할 질문입니다. 비록 사람들 간 접촉하는 것에 확실히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한편, 미 정부는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귀환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17년 9월 1일 처음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린뒤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기자 박재우,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 영상 유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