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는 한국 전쟁 이후 북한에 납북된 가족들로 한 맺힌 삶을 사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소망은 북한에 납치된 가족들이 하루 속히 남한의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일입니다.
RFA 탐방, 오늘은 한국의 납북자가족협의회 이옥철 회장으로부터 이 단체의 활동을 알아봅니다.
문:
납북자가족협의회는 언제 어떤 목적으로 발족했습니까?
답:
2000년 6월에 납북자 가족 7명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저희 단체는 북한에 납북된 가족의 송환 운동을 펼치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문:
그동안 가족들 송환을 위한 어떤 운동을 펼쳤습니까?
답:
그동안 가족 송환운동을 펼쳐왔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시절인데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상봉하기도 했고, 남북정상회담에서 납북자 문제들이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포함해서 납북자 가족들이 만나는 부분도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더군다나 큰 문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에 비전향장기수 63명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돌려줬습니다. 예를 들면 납치자와 맞바꾸기를 하든지 했야 했었는데 조건 없이 비전향장기수를 돌려 준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했고 그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부와 투쟁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문:
북한에 납북된 어선들이 많습니다. 어떤 어선들이 얼마나 되고 납북된 어부들은 얼마나 됩니까?
답:
납북어선은 131척 정도 됩니다. 연도별로는 1955년부터 1987년까지 납북해 갔고 납북된 어선 외에도 해군 경비정, 해경 한 척 그리고 KAL기와 승무원 기타 국외에서 납치를 해 갔습니다.
문:
전해 주신 납북관련은 6.25전쟁 이후라고 설명하면 되겠습니까?
답:
전쟁 이후 납북자를 말하는 겁니다. 지금 한국에는 전시 납북자가 있고 전후 납북자가 있습니다.
문:
131척을 북한이 납치해 갔는데 특별히 이옥철 씨 가족과 관련된 오대양 61호와 62호에 관해 어떻게 납치되어 갔는지 설명해 주세요?
답:
오대양 61호 62호 선원들 가운데는 경남 거제도 용소마을의 사는 선원 16명이 북한에 납북됐습니다. 용소마을의 남은 가족들은 남편과 아들 형제들이 북한에 억류된 것도 기가 막힌 데 남한 정부당국이 납북자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기는커녕 남은 가족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심지어는 경찰 정보과 직원이 용소마을에 집을 마련해 가족들을 감시하는 연좌제를 적용했습니다. 저 또한 저희 집에 형사들이 찾아와서 이상한 사람이 오지 않았느냐 하면서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경찰에 신고하라고까지 했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직장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까지 감시를 한 것이 사실이고 남편을 잃은 일부 부인들은 재혼했었고 또 다른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잘 돌보면서 남편이 송환되기를 기다리면서 힘들게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문:
북한에 납북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지요. 그동안 아버지가 살아 계신지 생사확인은 되고 있습니까?
답:
우리 가족은 제가 장남입니다. 제 밑에 여동생이 둘 있고 아버지를 못 보고 태어난 유복자 남동생이 있습니다. 지금은 저를 비롯해서 동생들은 다 결혼했고 부유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사확인은 몇 년 전에 북한에서 입수한 사진에서 확인됐습니다. 아버지가 1972년에 북한에 납치됐는데 1974년 가을쯤에 북한 묘향산에서 납북자 30여 명이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그 사진에는 아버지가 김일성의 뺏지를 단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그래 이 사진에 아버지가 북한에 살아 있다고 확인된 만큼 저희 아버지를 송환요청해야 한다고 남한정부에 간청했지만 남한정부는 노력하겠다는 말뿐이지 아직 아무런 소식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답:
제가 9살 때 아버지가 북한에 납치되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건빵을 사다 주시던 추억, 아들에게 뽀뽀하면서 아버지가 수염을 깎지 않아서 좀 아프던 기억들, 밥을 먹으면서 아버지께 한글을 배우던 기억들이 많습니다만,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마는 제가 성장하고 결혼을 하면서 나이가 들다 보니까 정말 자식을 돌보고 키워야 될 아버지가 자식을 돌보지 못하고 북한에서 자식을 그리워하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라든지 또 아버지가 그곳에서 고통받고 살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면 정말 보고 싶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끝까지 아버지의 유해라도 남한 집에 모시고 와서 어머니 옆에 모시고 내가 평생 살아있는 동안에 제사도 지내면서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모시는 게 제 꿈이고 희망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런 자식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용기를 내시고 끝까지 건강하게 계시는 게 제 바람입니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이옥철 회장으로부터 납북자가족협의회의 활동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납북자 가족들의 바람은 무엇인지를 알아봅니다.
RFA 탐방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